[ESC] 호기심의 돛대 달고 쿠바 '최초의 도시'를 항해하다
유럽 열강 신대륙 찾아 나선 15세기
콜럼버스가 도착한 쿠바 바라코아
침략자들에 의해 학대받은 선주민
물질적 욕망 만든 폭력 역사 떠올려
20세기 초까지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다’는 표현이 통용되었다. 그를 영웅으로 묘사한 워싱턴 어빙의 영향이 컸다. 20세기 중반으로 접어들며 ‘신대륙 발견’이란 말에 거부감을 갖는 이가 늘어났다. 1만2천년 전부터 아메리카엔 인류가 살았으니까. 콜럼버스의 위상은 ‘아메리카에 닿은 최초의 유럽인’ 정도로 내려앉았고, 20세기 말엔 이마저 거둬들여야 할 지경이 되었다. 캐나다에서 바이킹의 흔적과 11세기 은화가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바이킹이 ‘콜럼버스의 항해’ 소식을 들었다면 이렇게 비웃었을는지도 모르겠다. “아이슬란드를 거치면 얼마 되지도 않는 거리를 그 녀석은 왜 7천㎞나 둘러서 갔대?”
물론 콜럼버스의 목적지는 아메리카가 아니라 아시아였다. 그는 ‘아랍마일’과 ‘로마마일’을 착각하는 등 지구를 훨씬 작게 여겼다. ‘지팡구(일본)까지 4400㎞(실제론 그것의 4배 넘는 거리다), 조금 남쪽으로 향하면 인도에 닿을 수 있어!’ 1492년 8월 그는 이사벨 여왕의 지원을 받아 항구를 떠났다. 서쪽으로 5천㎞를 항해해도 육지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생각했다. ‘지구는 옆으로 눕힌 조롱박 모양 아닐까?’ 운은 좋았던지 70일 만에 바하마제도에 도착했다. 섬 주민에게 ‘금붙이를 어디서 났냐?’고 다그쳤고 ‘서쪽 땅에서 가져왔다’는 답을 얻어냈다. 콜럼버스는 더 서쪽으로 향했고 본토라고 여긴 쿠바에 닻을 내렸다. ‘바다 옆’을 뜻하는 바라코아(Baracoa)가 그곳이다.
바라코아로 가는 여행자는 드물다. 아바나에서 동쪽으로 1천㎞ 떨어진 도시는 산타클라라, 산티아고데쿠바 같은 주요 도시도 아니고 트리니다드, 비냘레스 같은 관광도시도 아니다. 쿠바의 끝을 핥고 싶은 자들만이 ‘최초의 도시’(바라코아의 별명)를 찾는다.
열대림으로 둘러싸인 바라코아
아바나에서 몇개 도시를 지나 동쪽 끝 관타나모주로 들어섰다. ‘관타나모’란 지명은 톰 크루즈 주연의 <어 퓨 굿맨>을 통해 처음 알았다. 미 해군기지를 배경으로 한 영화였다. 근데 어떻게 미 해군기지가 쿠바에 있지? 요약하자면, 19세기 말 미국은 ‘스페인령 쿠바’를 사고 싶었다. 스페인은 쿠바를 팔지 않았다. 스페인으로부터 해방을 부르짖는 독립전쟁이 발발했다. 미국은 쿠바 내 미국인을 보호하겠다며 군함을 보냈다. 쿠바 앞바다에서 군함이 침몰했다. 미국은 스페인의 소행이라며 전쟁을 선포했고, 승리했다. 쿠바를 독립시키면서 미국은 관타나모만을 조차지로 삼았다. 임대 면적은 서울의 6분의 1, 임대료는 매년 500만원쯤, 임대 기간은 영구히!
남쪽 해안을 따라가던 차가 북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뱃길뿐이던 바라코아에 외부를 잇는 도로가 생긴 건 쿠바 혁명 이후다. 고갯마루에 올라선 차량이 헐떡이며 정차했다. 차량의 연식은 1946년식 포드 슈퍼 디럭스, 이미 칠순이 넘은 상태였다.
한숨 돌린 뒤 험준한 산악과 열대림으로 둘러싸인 바라코아에 닿았다. 예약한 민박집에 배낭을 내려놓고 산책을 나섰다. 방파제 앞 도로는 뜯겨 맨흙이 드러났다. 해변에 ‘마르코 폴로’라는 식당이 있었다. 콜럼버스로 하여금 아시아행을 꿈꾸게 한 책이 <동방견문록>이었다던가? 창가에 자리를 잡고 메뉴판을 펼쳤다. 바닷가재 요리가 1만원이 되지 않았다.
“새 해안도로를 놓는 중이니?” 주문하며 종업원에게 물었다. “부서져서 복구 중이야. 쿠바는 허리케인이 지나는 경로거든. 허리케인 아이크 땐 시속 200㎞ 넘는 바람이 불고 7m 넘는 해일에 도심까지 잠겼어. 쿠바에서만 7명이 사망했지.” 미국에선 100명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던데 허술할 것 같은 쿠바에서 피해가 더 적었다니! 종업원이 해명했다. “허리케인 대피 프로그램이 있어. 허리케인이 다가오면 안전지대에 의료진과 식량을 갖추고, 시민들로 구성된 민방위대가 대피를 도와. 매년 훈련하는데 수십만명이 참가해.” 복구는 더디고 매년 허리케인이 오지만, 쿠바인은 공동의 위기를 공동의 노력으로 이겨내고 있었다.
다음날 ‘엘윤케’가 보이는 해변으로 갔다. 야자나무 너머 독특한 모양의 산이 있었다. 1492년 11월27일 콜럼버스는 항해일지에 썼다. “큰 만… 섬처럼 보이는 높고 네모난 산….” 바라코아의 랜드마크가 될 ‘엘윤케’였다. 해발 575m, 길이 1125m, 대장장이가 사용하는 ‘모루’를 닮아서 붙은 이름이었다. 콜럼버스는 나흘 뒤 해변에 십자가를 세웠고 바라코아는 쿠바 최초의 스페인 정착촌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 학대받던 선주민과 추장 아투에이는 저항했고, 침략자는 폭력으로 진압했다.
1978년 쿠바는 바라코아를 국가기념물로 지정했다. ‘콜럼버스의 도착’과 ‘쿠바 최초의 도시’라는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혁명정부는 말했다. “기억합시다, 히스패닉 정착지를 건설하면서 스페인인이 사용한 노동력, 즉 우리 원주민들을! 바라코아의 역사는 스페인인의 도착과 함께 시작된 게 아닙니다. 바라코아의 기원은 어둡고 가련한 시대에 사라졌습니다. 이곳은 독립을 위해 싸워온 역사적 상징입니다. 아투에이의 희생을 기억합시다. 이곳에서 그는 죽을 때까지 적과 싸우는 전통을 확립했습니다.” 해변에 콜럼버스 동상이 세워져 있었지만 그를 올려다보는 어떤 이도 발견할 수 없었다.
“나의 천문대이자 우주선이야!”
바라코아는 관광객에게 이제 막 알려지기 시작한 도시였다. 조약돌 깔린 골목길, 벗겨진 페인트, 풍화된 지붕 타일, 야자수 그늘 아래서 해수욕하는 아이들. 주말 시장이 선 공터를 지나 골목으로 들어섰다. 테라스 앞 테이블에 망원경을 늘어놓은 노인을 만났다. 파는 물건 같진 않았다. “뭐 하세요?” “망원경 렌즈를 닦아.” “무엇을 보죠?” “별을 봐야지!” 대답하며 노인이 지붕을 가리켰다. 이상한 장치들이 있었다. 바람개비 풍향계, 낡은 나무 의자, 구겨진 우산. “나의 천문대이자 우주선이야! 오늘 밤 구름 한점 없는 하늘이 열릴 거야! 뭘 발견하게 될지 심장이 두근거려.” 그의 눈동자 안에서 별이 반짝였다.
아바나로 돌아가던 날 오후, 합승택시가 숙소 앞에 섰다. ‘문신’한 청년과 ‘금목걸이’ 찬 청년이 운전사였다. 번갈아 운전하면 내일 아침 아바나에 닿는다며 자신만만했다. 불량할 정도는 아니지만 정신 사나운 인상이었다. 나는 보조석에 앉았다. 뒷좌석도 찼다. 출발은 했는데 올 때 그 길이 아니었다. “어느 방향으로 가니?” “모아를 지나갈 거야!” 바라코아에서 모아 사이의 내륙은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은 열대우림 중 하나였다. ‘알렉산더 폰 훔볼트’의 이름을 딴 국립공원이 있었다.
훔볼트는 남아메리카에서 가장 유명한 과학자이자 탐험가였다. 훔볼트오징어, 훔볼트펭귄, 훔볼트해류 등. 갓 서른의 청년은 1799년부터 5년간 중남미 3만㎞를 탐험했다. 금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연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식물학, 광물학, 지리학, 해양학 등에 관한 그의 질문과 실험과 기록은 인류 과학을 발전시킬 초석이 되었다. 말년까지 집필했던 책은 <코스모스>. ‘우주의 질서’를 뜻하는 희랍어를 근대과학의 장으로 불러냈고, 20세기의 칼 세이건은 인류의 호기심을 우주로 확장시킨 천체물리학 서적을 펴냈다. 같은 제목 <코스모스>.
훔볼트 국립공원을 옆에 끼고 달리는 동안 날이 저물었다. 달리던 차가 갑자기 섰다. 풀숲밖에 보이지 않았다. 금목걸이가 차문을 열고 튀어나갔다. 뒷좌석의 미국인들이 떨리는 영어로 내게 물었다. “여기가 어디지?” 금목걸이가 손전등을 비췄다. 문신이 불빛을 향해 차를 몰았다. 녀석들은 풀숲에 쟁여둔 드럼통을 열더니 차량에 기름을 채우기 시작했다. 주유소가 아니었다. 시큼한 불법의 냄새가 났다. 미국인들은 안심했다. ‘납치된 건 아니구나.’ 두 녀석이 기름을 넣는 동안 나는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지붕 위 천문대에서 별을 보고 있을 노인이 떠올랐다.
미지에 대한 호기심과 물질적 욕망
누리호 성공과 더불어 미디어에선 ‘우주 항해 시대’를 얘기한다. 달궤도선과 달착륙선을 거론하며 헬륨-3, 희토류 등 광물과 국가 간 경쟁 그리고 우주산업이 가져다줄 재화를 강조하면서. 왠지 ‘훔볼트의 가슴’이나 ‘칼 세이건의 눈’이 아니라 ‘콜럼버스적 욕망’으로 이끄는 듯한 느낌이다. 우주 항해 시대의 주역이 될 지금과 미래의 아이들에게 ‘미지에 대한 호기심’과 ‘물질적 욕망’, 무엇을 먼저 얘기해야 할까? 궁금해질 때면 쿠바 노인의 눈동자가 나를 본다.
“지구는 우주라는 거대한 극장의 아주 작은 무대다. 그 모든 장군과 황제들이 아주 잠시 동안 저 점의 일부분을 지배하려 한 탓에 흘렀던 수많은 피의 강들을 생각해보라… 우리의 만용, 우리의 자만심, 우리가 우주 속의 특별한 존재라는 착각에 대해, 저 희미하게 빛나는 점은 이의를 제기한다… 코스모스를 정관하노라면 깊은 울림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다… 그 울림, 그 느낌, 그 감정이야말로 인간이라면 그 누구나 하게 되는 당연한 반응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칼 세이건의 <창백한 푸른 점>과 <코스모스>에서 발췌)
노동효 <남미 히피 로드> 저자·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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