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놀이와 썰매에는 ○○이 필요해
하늘과 한강을 보면서 아파트를 향해 헤엄쳐보다
서울 ‘한강공원 수영장’(이하 한강 수영장)이 3년 만에 문을 열었다. 서울시 한강사업본부는 뚝섬·광나루·여의도·잠원 4곳의 한강 수영장과 양화·난지의 물놀이장 2곳을 열었다. 2022년 6월24일, 낮이 제일 긴 하지(6월21)로부터 사흘이 지난 날이었다. 코로나19 유행 이전에는 6월 말 7월 초의 해수욕장·수영장 개장은 일상적 뉴스였다. 3년 만에 열린 수영장은 달랐다. 물 안에서 마스크를 벗을 수 있다는 것이 감격스러웠다. 주말에는 사람도 몰렸다. 접촉 금지였던 사람들이 무장해제돼 물속으로 들어갔다. 도시 곳곳에서 멈췄던 분수도 다시 물줄기를 뿜었다. 물방울 사이로 뛰어다니는 아이들이 보인다. 한강 수영장은 8월21일까지 연다.
“나는 여기서 자연인”
장마가 멈춘 7월 첫 주 평일 서울 한강 수영장(뚝섬 수영장)을 찾았다. 33℃의 날씨, 오전에 방문한 수영장에 사람이 얼마 없었다. 넓은 공간이 좋았다. 내 땅도 네 땅도 아닌 그냥 넓은 땅을 밟는 느낌이었다. 여자 탈의실과 남자 탈의실 등을 안내하는 문구의 폰트 크기가 정말 ‘컸다’. 눈에 확 들어왔다. 분위기 대신 정보가 있었다. 바깥이랑 어우러진 산, 물, 대기 냄새가 괜찮았다. 탈의실 안에 “사물함과 바구니만 덩그러니 있다”는 어느 블로그의 글대로, ‘덩그러니’라는 표현이 적절했다. 호텔 수영장에 가면 만나는 수영장 안내 표시 등 각종 디테일하게 꾸민 것들과 달랐다.
한강 수영장은 ‘많은 사람이 공평하게 이용하는’ 호방함이 투박하게 있었다. 한강 수영장은 일단 입장료가 저렴하다. 성인 5천원, 청소년 4천원, 어린이 3천원이다. 양화, 난지의 물놀이장은 1천원씩 더 싸다. 대신 바지런함이 필수다. 코로나19로 일상화된 예약제가 아니라 현장형이다. 주말에는 아침 일찍 가서 줄을 서야 한다. 그래야 좋은 자리에 앉아 물 바깥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특별한 기대에 반응할 야심이 없는 수영장은 자연스러웠다. 하늘이 잘 보였다. 하늘이 나를 보는 느낌이었다. 시야가 트였다. 아, 이게 한강이구나 싶었다. 배경음악 소리가 없어서 호젓했다. 수영장 물풀의 구조가 눈에 잘 들어왔다. 아이들도 신나고 어른도 재미나 보였다.
코로나19 이전 한강 수영장에 가곤 했다는 김보미씨는 “이만한 데가 없다”면서 “나는 여기서 자연인”이라고 말했다. 수영을 잘하든 못하든 상관없고, 마음이 편해진다고 했다. 한강 수영장은 수영장에 갔을 뿐인데 한강에 간 듯한 착각이 든다. 몇 해 전 서울시청 앞에 겨울에는 스케이트장, 여름에는 물풀장이 있어 아이랑 갔는데 그 투박한 불친절함이 어색하게 좋았다. 실내 스케이트장이 풍기는 인공미와 다른 야생적인 맛이랄까. 2018년 여름, 서울시청 앞마당에 큰 풍선으로 된 간이수영장이 있었고 그곳에서 지나가는 자동차들을 보며 아이들이 놀았다.
서울시에서 내놓은 보도자료를 참고해, 네 곳의 수영장을 잠시 살펴보자. 먼저 여의도 수영장은 성인풀, 청소년풀, 어린이풀이 따로 있고 태닝존도 있다. 잠원 수영장은 시원한 그늘에 쉬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풀장 둘레에 그늘막이 많이 설치돼 있다. 잠실 수영장은 롯데월드타워, 고층 아파트들을 보며 수영할 수 있다. 풀장 안팎에는 파도슬라이드, 어린이보트존 등 이른바 워터파크에서 운영하는 ‘어드벤처’ ‘체험’형 시설이 마련됐다. 뚝섬 수영장은 4m 아쿠아링이 ‘시원한 물줄기’를 쏟아낸다.
나와 너 대신 한강과 수영장의 물
한강 수영장은 체육관 등 실내수영장이나 호텔 수영장, 캐리비안베이 같은 워터파크와 무엇이 다를까. 비교 대상이 가진 특수성을 잠시 잊어버리고 한강 수영장을 주인공으로 말해보자. 일단 한강 수영장은 뭐든 큼직큼직하다. 어묵, 소떡소떡, 회오리감자, 마약핫도그 등 간식을 파는 안내 문구도 크다. 그리고 많다. 파라솔 수도 많다. 주말에는 물 반, 사람 반이라고들 한다. 내가 갔던 평일은 달랐다. 빈자리가 많았던 파라솔. 다른 승객 없이 나 혼자 타고 멀리까지 가는 공공버스 같다.
평일 방문한 수영장에서 느낀 큰 차이는 스마트폰과 관련 있다. 스마트폰으로 사진 찍는 사람이 현저히 적었다. 근래 우연히 방문한 한 호텔 수영장에서 많은 사람이 사진을 찍는 것에 놀랐다. 그다지 럭셔리 수영장도 아니었는데 창으로 볕이 잘 들어오고 에메랄드빛 물 색깔에 조도가 좋았던 것 같다. 한강 수영장은 수영장 물이나 하늘을 향해 사진을 찍는 이가 많았다. 한강 수영장에 온 나, 그런 나를 보는 네가 아니라 한강과 수영장의 물을 보러 온 사람이 꽤 많았다.
여름이면 수영장에 가는 건 어느 나라 풍습일까. 과도한 꾸밈 없는 한강 수영장에는 다양한 세대가 모인다. 꼭 아이 있는 3·4인 가족 중심인 것만도 아니다. 아침에 온 근처 사는 70대 노인, 한강 스포츠를 즐기는 20·30대 젊은이도 있었다. 한강 수영장은 실외 환경과 수영장이라는 인공 환경이 겹쳐져 있다. 한강 수영장의 또 다른 차이라면 과도한 서비스의 부재다. 선베드 뒤에 가져온 돗자리를 펴거나, 색색의 다양한 모양 튜브를 사용하는 등 묘한 자율성이 있다. 호텔 수영장이나 체육관 수영장에는 가져온 돗자리와 간식을 펼쳐놓을 수 없지 않은가. 한강 수영장에서 돗자리라는 사물을 펴서 임시적인 ‘자기 자리’를 만드는 행위는 통제되지 않는다. 한마디로 ‘여기서 왜 이러세요?’ 이런 기분이 안 든다.
모든 순간이 돈이 되는 관광지와 달리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없는 수많은 사람이 한강 수영장에 있다. 소비자 통계, 구글 지도 동선으로 모든 것이 촘촘하게 기록되는 시대에 한강 수영장은 소비 행태에서 살짝 비켜난 듯하다. 나는 2022년 5월 개장한 강원도 춘천 레고랜드에 갔다가 모든 것이 ‘돈’의 동선으로 짜인 공간에 순진하게 대실망하고 말았다. 레고랜드에선 주차장 가격부터 들고 나는 모든 순간이 돈을 써야지만 움직일 수 있었다.
한강 수영장은 역사 속에 있다. 1989년 8월1일 한강시민공원 뚝섬, 잠원 수영장이 처음 개장했다. 1989년 7월26일치 <한겨레신문>은 “한강 야외수영장은 봄가을에는 롤러스케이트장으로, 그리고 겨울에는 빙상스케이트장으로 활용된다”고 썼다. 같은 해 8월1일치 <동아일보>는 서울시가 총공사비 35억5400만원을 들여 만든 뚝섬지구 5818평, 잠원지구 7055평 규모의 흑백 수영장 사진을 실었다. 1991년엔 서울 당인리 화력발전소 폐열을 이용해 ‘온수 수영장’(여의도·이촌)을 열어 10월 말까지 운영했다. 1991년 10월 말 날씨는 어땠을까? 당인리 화력발전소의 폐열로 데운 온수 안에 들어가보고 싶다.
수영장과 더불어 이번주 동네 목욕탕 세 곳을 탐방했다. 목욕탕마다 규정이 다르고, 안내하는 사람의 어법이 다르고, 여하튼 이미 정해진 무엇이 많다. 동네 목욕탕이나 작은 수영장만 가도 거기 주인인 듯한 사람이 있다. 이와 달리 한강 수영장은 새로운 사람들이 매번 주인되는 공공시설물이다.
그래서 이 공공의 수영장이 다시 문을 연 것은 상징적이다. 한강 수영장은 입장료가 저렴하다. 서울시가 관리한다. 한강 수영장이 지닌 ‘공공성’은 공공의 장소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준다. 수영장 안의 물을 갈듯이, 새로운 사람들이 파라솔의 주인이 된다. 눈이 쌓인 몇 해 전 겨울, 언덕은 미끄러지기 안성맞춤이었다. 그런데 썰매가 없었다. 흰 언덕을 내려다보던 여섯 살 아이가 “공공 썰매 어디 없나?”라고 말했다. 공공 썰매? 처음 들어보는 단어였다. 그즈음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공공버스’라는 글자가 쓰인 큰 버스를 자주 봤다. 아이 덕분에 ‘공공 썰매’가 있어서 갑자기 썰매가 필요할 때 빌릴 수 있으면 어떨까 생각했다.
동네에 분수 하나 있어서 참 다행
물론 동주민센터마다 공구 대여도 가능하고, 빌릴 수 있는 곳은 많다. 그런데 놀이와 연관된 ‘공공’이 주는 느낌은 또 다르다. 동네에서 만나는 분수도 일종의 공공 놀이시설이다. 분수에 뛰어들어서 노는 아이들을 보면 이 분수 하나가 있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도시에 수영장이 왜 필요한가를 생각해보면, 단순히 ‘기쁨’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재밌으니까. ‘돈 낸 만큼 놀았다’가 아니라, ‘거기까지 가서 놀았다’, 그리고 한강 수영장이라니, 누군가에겐 복고적이기도 하고 누군가에겐 다른 도시로의 여행이다. 땡볕에서 고생한 기분이 들긴 하지만 말이다. 아직 코로나19가 아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언제 수영장이 문 닫을지 모른다. 카페에도 갈 수 없었던 때가 있지 않았는가. 여름=수영장, 이라는 공식이 3년 만에 나타났다. 초여름, 한여름의 감각. 수영장에서 되찾을 수 있을까!
현시원 독립큐레이터·시청각 랩 대표
가기 전 확인하자
수영장과 물놀이장마다 특색이 다르니 본인이 선호하는 위 치와 환경을 체크할 필요가 있다. 한강사업본부 누리집에서 시설 현황 등을 확인할 수 있다. (QR코드 참조)
한강 수영장은 음식 반입이 가능한 곳도 있으니, 수영장마다 음식 반입 여부를 확인하자.
수영장마다 규정이 있다. 그에 따라 준비물도 다르다. 서울시 누리집에 올라온 준비물은 다음과 같다. “그늘막 텐트(뚝섬 간이텐트만 가능, 여의도·잠원·난지 가능), 돗자리, 여벌의 옷, 수영도구(물안경·수영복·수영모), 햇빛 가릴 모자, 샤워도구, 생수 2리터(얼린 것), 맛있는 간식과 도시락”
참고 : 스토리인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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