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러운 최대주주 부재.. 아베 사망 후 일본의 향방은
그의 부재가 향후 일본 정치를 어떤 영향을 미칠 지에 주목하는 건 그래서다. 헌법 개정과 군사력 강화, 경제정책 기조 등 굵직한 현안들에 적지않은 변화를 예상하는 목소리가 높다.
◆헌법 개정…미묘한 차이
헌법 개정은 아베 전 총리 스스로 ‘필생의 업’으로 꼽아왔던 사안이다.
그는 2012년말 2차 집권을 시작하면서 “처음 해야 할 것은 (헌법) 96조의 개정”이라고 선언했다. 개헌안 국민투표 발의 요건을 ‘중의원, 참의원 각각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규정하고 있는 96조를 ‘각각 과반수 찬성’으로 바꾸자고 주장했다. 개헌을 쉽게 해야 ‘군대 보유와 전쟁 금지’를 규정한 헌법 9조를 개정할 수 있어서였다. 이후엔 자위대의 헌법 명기를 주장하고 나섰다. 하지만 야당의 강력한 반발, 국민들의 반대 여론에 재임 당시 국회에 헌법 개정이 가능한 세력이 만들어졌음에도 발의조차 할 수 없었다.
그는 최근의 상황을 개헌의 적기로 봤다. 북한의 잦고, 강해진 핵·미사일 도발, 중국의 군사적 팽창,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민들의 안보의식이 어느때보다 첨예해졌기 때문이다. 국민총생산(GDP)의 1% 수준인 방위비를 2%로 올리는 데도 주력했다. 그는 참의원 선거유세에서 “자위대를 헌법에 명기해 자위대 위헌논쟁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전쟁을 멈출 수 있는 억지력을 확실하게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기시다 총리도 동의하는 바이고, 자민당의 공약에도 반영된 사안이지만 둘 간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이토 아츠오 정치저널리스트는 온라인매체 아에라닷컴과의 인터뷰에서 “기시다 총리는 방위비 증액, 개헌 등을 두고 개헌 세력이 국회의 3분의 2를 차지해도 단숨에 추진할 지에 대해선 애매한 입장을 취했다”고 지적했다. 요미우리 신문은 9일 보도에서 “(아베 전 총리와 기시다 총리 사이에) 노선의 차이가 있다고 해도 아베 전 총리가 있었기 때문에 억제될 수 있었는데, 이제 당내가 혼란스러워질 수 있다”는 자민당 간부의 전망을 전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6월 기시다 내각이 결정한 ‘경제재정운영의 기본 방침’에서 2025년에 재정 흑자를 이루겠다는 목표를 내건 걸 삭제시키도록 압력을 넣어 뜻을 이뤘다. 금융완화, 적극적 재정지출을 핵심으로 하는 이른바 ‘아베노믹스’를 부정하는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마이니치 신문은 이에 대해 “아베 전 총리는 기시다 정권이 아베노믹스의 수정에 나서지 않도록 주시해 왔다”고 밝혔다.
아베 전 총리는 자민당 내 재정확대파를 이끌며 기시다 총리를 필두로 하는 재정건전파와 갈등을 벌였다. 내년도 방위비 예산을 7조엔 가까이 증액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기시다 총리가 명확한 방침을 표시하지 않으면서 집권세력 내부에서는 둘 간의 갈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이와 관련해 주목되는 것은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의 후임이다. 구로다 총재는 아베 전 총리가 2013년 임명한 인물이다. 그가 이끌고 있는 금융완화 정책이 일본 경제에 큰 부담을 주고 있는 엔저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비판이 커지만 좀체 고집을 꺾지 않고 있다. 내년 4월 구로다 총재의 임기가 만료됨에 따라 기시다 총리가 어떤 인물을 후임으로 앉힐 지에 벌써부터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지난해 10월 기시다 정권이 출범한 뒤에도 아베 전 총리의 위상은 건재했고, 기시다 총리도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아베 전 총리의 부재에 따라 기시다 총리가 어떻게 정권을 이끌어 갈 지가 관심사가 됐다. 이런 상황을 두고 1980년대 나카소네 야스히로와 다나카 가쿠에이의 관계를 떠올리는 이들이 많다. 나카소네는 자민당내 최대파벌인 다나카파의 지원으로 집권할 수 있었다. 부채가 큰 만큼 나카소네는 다나카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다나카·소네 내각’이라는 빈정거림이 나왔다. 그러나 다나카가 뇌경색으로 쓰러지자 나카소네는 자기 색깔을 내기 시작했다.
기시다 총리는 자신이 이끈 지난해 중의원 선거에서 승리했다. 이번 참의원 선거도 압승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이후 3년간은 큰 선거가 없어 ‘황금의 시절’을 맞을 것이란 예상이 작지 않다.
기시다 총리의 자세를 가늠할 수 있는 건 참의원 선거 후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내각 및 자민당 인사다. 지금까지는 자신이 이끄는 기시다파, 최대 파벌인 아베파 외에 모테기파, 아소파를 배려한 인사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이토 정치저널리스트는 “어떤 인물들이 내각, 자민당을 채울 지가 새로운 당내 역학 관계를 볼 수 있는 가늠자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도쿄=강구열 특파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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