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스럽지 않은 '사랑벌레'는 왜 도시로 왔을까 [이한호의 시사잡경]
편집자주
무심코 지나치다 눈에 띈 어떤 장면을 통해 우리 사회의 다양한 사연들을 소개하려 합니다. 시선을 사로잡는 이 광경, '이한호의 시사잡경'이 생각할 거리를 담은 사진으로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세상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 밤새 집 안으로 기어들어 오는 파리 떼를 쫓느라 밤잠을 설친 박종분(74)씨에게 ‘러브버그’는 전혀 사랑스럽지 않은 벌레다. 박씨가 38년을 내리 산 보금자리는 하루아침에 파리지옥으로 변했다. 박씨는 지난 5일 서울 은평구 자신의 집 앞에 수북하게 쌓인 러브버그 사체 더미를 가리키며 “자다가도 벌레가 떨어져 깨고, 말하다가도 입에 (벌레가) 들어간다”며 진저리를 쳤다.
갈현동에서 횟집을 운영하는 A씨는 직접 뜰채로 수조에서 털파리를 건져내며 “어떻게 닫힌 수조에까지 기어들어 왔는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처음 보는 광경에 당황한 것은 둘째고, "손님 상차림에 벌레가 떨어질까 주말 내내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고 했다.
지난 2주간 서울 은평구와 경기 고양시 덕양구를 중심으로 러브버그가 대규모로 출몰해 주민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기자가 현장 취재를 위해 은평구를 찾은 4, 5일에는 그나마 활동 중인 벌레 수가 현저히 줄어 있었지만, 한바탕 대란이 있었음을 짐작하게 하는 러브버그의 사체 더미는 곳곳에 널려 있었다.
올해 기승을 부린 러브버그는 한국과 일본에서 자생하는 ‘계피우단털파리(Penthetria japonica)’가 아닌 우단털파리(Plecia)속에 속하는 국내 미보고종으로 나타났다. 러브버그라는 이명을 처음 받은 아메리카 대륙의 ‘우단털파리(Plecia nearctica)’와 같은 속으로 정확한 분석을 위해 타국의 털파리와 대조 중이다. 유전자 분석을 주도한 국립생물자원관에 따르면 털파리류는 습성이 서로 비슷하고, '원조' 러브버그와 같은 속인 만큼 습성은 기존에 알려진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미국 플로리다주 걸프만 일대에서 주로 서식하는 러브버그는 이 지역의 대표적인 골칫거리다. 원래 플로리다주의 자생종이 아니라, 1949년경 중미 지역으로부터 유입됐다. 비행 능력이 약하고 수명도 짧지만 자연 상태의 천적이 없다는 점이 문제다. 즉, 태생적인 한계 때문에 번식기만 지나면 사라지지만, 개체 수가 폭증할 경우 통제하기 어렵다.
플로리다에서도 1970년대 러브버그 개체 수가 폭증해 주정부가 퇴치 연구 예산까지 편성했지만 자연적으로 개체 수가 감소할 때까지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개체 수가 어느 정도 감소하자 주정부는 더 해로운 곤충 방제를 위해 예산을 거둬들였다. 병원성 곰팡이 몇 종이 러브버그에게 치명적인 것으로 추정되지만 명확한 연구 결과는 없다. 현재도 주기적으로 '러브버그 대란'이 발생하지만, 당시에 비하면 '플로리다 생태계'가 어느 정도 적응한 것이다.
그런데 이번 은평구 일대의 러브버그 대란에는 특이한 점이 하나 있다. 지역 주민들은 벌레가 유독 밤에 기승을 부린다고 증언했지만 우단털파리는 사실 주행성 곤충이다. 주간에 짝과 먹이를 찾아 활동하고 밤에는 식물 이파리 등에 붙어 휴식을 취한다. 우단털파리는 빛과 온도를 활동 기준으로 삼기 때문이다.
통상 우단털파리의 주된 활동기는 5월 말. 아직 열대야가 시작되지 않은 시기이므로 기온이 떨어지는 밤에는 활동하지 않는다. 밤 기온이 높더라도 자연상태에서는 야간에 빛이 없으니 활동이 더디다. 그런데 올해에는 장마 등으로 우화 시기가 한 달가량 늦어진 데다 때 이른 폭염까지 겹쳐 한밤중에도 30도를 웃도는 환경이 조성됐다. 여기에 밤새 불빛이 환하게 켜진 도시가 지척이라 파리 떼는 쉬지 않고 출몰했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밤에도 따뜻한 기온이 유지되자 어두운 산속에서 밝은 도심으로 내려온 것으로 추정한다. 여기에 주민들이 귀가해 있거나 장사가 가장 활발할 시간까지도 떼로 출몰하다 보니 시민 불편은 더욱 부각됐다.
자연에서는 오로지 익충의 면모만 지녀 왔을 ‘사랑벌레’가 기후변화 및 도시화와 맞물려 순식간에 해충이라는 오해를 받은 것이다.
이한호 기자 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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