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後스토리]'고독한 천재 편견' 깨는 필즈상의 기적..허준이의 '말·말·말'

김승준 기자 2022. 7. 9.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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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연구에서 소통의 중요성 강조
시행착오 겪은 허준이 교수.."마음을 여유롭게..스스로에게 친절하길"
'수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을 수상한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학교 교수(한국 고등과학원 석학교수)가 8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해 아들과 기쁨을 나누고 있다. '필즈상'(Fields Medal)은 국제수학연맹(IMU)이 4년마다 개최하는 세계수학자대회(ICM)에서 만 40세 미만의 수학자에게 수여하는 수학계 최고의 상이다. 2022.7.8/뉴스1 © News1 유승관 기자

(서울=뉴스1) 김승준 기자 = "제가 영웅으로 생각하는 친구들과 선생님들의 이름, 그리고 그분들한테서 배우고 싶은 점들을 적어놓은 작은 수첩이 있는데 저에게는 다 롤모델입니다."

재능이 있어 소위 '천재'라고 불리는 수학·과학 분야 사람들에게는 흔히 '고독한'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필즈상을 수상한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 대학교 교수(한국 고등과학원 석학교수)는 '고독한 천재'라는 환상을 깨주는 발언을 이어왔다.

시인을 꿈꿨던 '늦깎이 수학자' 허준이 교수의 공개석상 발언을 재구성했다.

◇수학을 잘하는 것이란?…"소통 능력을 갖춘 사람…소통으로 아이디어 끌어내는 것 소중해"

흔히 '천재'라고 불리는 캐릭터를 다루는 창작물에서, 천재는 외롭고, 이해받지 못해 고립되고, 범인은 이해할 수 없는 괴짜 기질이 있거나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다. 반면 허준이 교수는 공개석상에서 기회가 될 때마다 '동료와 친구'의 중요성에 대해서 말해왔다.

8일 허 교수는 한국에 돌아온 후 가진 첫 인터뷰에서 소감을 묻는 질문에 "저랑 함께 열심히 연구한 동료들을 대표해서 큰 상을 받게 되어 기쁘다"며 "제가 살면서 항상 배워야 하는 것들이 있을 때 그것을 딱 가르쳐 줄 수 있는 사람들을 딱 필요한 때에 만났던 것 같다"고 말했다.

앞서 열린 온라인 기자 간담회에서도 그는 수학의 매력을 소개하며 '동료에 대한 애정'과 '소통의 소중함'에 대해서 말했다.

그는 "제 대부분의 연구가 공동 연구로 진행된다. 연구 하나하나마다 돌이켜보면 추억 속의 앨범을 보는 것처럼 소통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이끌어내는 게 하나하나 소중한 경험"이라며 "그러한 과정을 경험하는 게 개인적으로 굉장한 만족감을 주기 때문에 끊을 수 없는 중독성이 있어서 수확의 매력에 빠진 이후로 나오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소통을 강조한 허 교수는 카오스 재단과의 인터뷰에서도 '수학을 잘한다'를 이렇게 정의했다.

그는 "사람 성격만큼이나 다양한 방식으로 수학에 기여하는 것 같아서, 콕 짚어서 말하기는 힘들지만, 누구는 수학을 잘한다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성질이 있다"며 "수학을 정말 재미있어한다. 그리고 모호한 것에 대해서 정확하고 명확하게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다. 모르는 것에 대해서도 질문의 말꼬리를 틀 수 있을지 알고, 자기가 모호하게 알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두루뭉술하게 시작해서 대화를 거치며 명확하게 할 수 있는 소통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현대 수학 연구는 공동연구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수학과 대학원에서는 외부의 학자들과 여는 각종 학술 행사가 연구자의 역량을 높이는 주요한 통로가 되어준다.

'수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을 수상한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학교 교수(한국 고등과학원 석학교수)가 8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해 아들과 기쁨을 나누고 있다. '필즈상'(Fields Medal)은 국제수학연맹(IMU)이 4년마다 개최하는 세계수학자대회(ICM)에서 만 40세 미만의 수학자에게 수여하는 수학계 최고의 상이다. 2022.7.8/뉴스1 © News1 유승관 기자

◇"영웅으로 생각하는 친구들과 선생님들…모두 나의 롤모델"

허준이 교수의 수상이 발표되고, 많은 사람이 한국 수학 교육과 허준이 교수를 이어 생각해보려고 시도했다. 허준이 교수는 미국 국적을 가지고 있지만, 한국에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석사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허준이 교수가 한국 수학·교육의 성과라고 하는 한편, 반대쪽에서는 그의 고등학교 자퇴를 언급하며 '특이 사례'일뿐 이라고 반박했다.

막상 허준이 교수에게 한국 교육에 대한 질문을 던졌을 때 돌아온 답은 의외였다.

허 교수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때는 다양한 종류의 친구들과 한 반에 40~50명씩 모여서 하루 종일 생활을 같이하면서 이제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 있었다"며 "지나고 돌이켜 보면은 그때만 할 수 있었던 제가 지금의 저로 성장하는 데 있어서 자양분에 대한 수많은 경험을 제공해 준 소중한 시기였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허준이 교수는 '롤 모델' 같은 질문에 특정 인물을 답하지 않았다. 모두가 소중하기 때문이다.

그는 "삶을 살아오면서 어려움을 만났을 때 딱 필요한 때에 필요한 것들을 가르쳐줄 수 있는 선생님과 친구들을 너무너무 반복해서 잘 만났다"며 "항상 정리하는 작은 수첩이 있는데 개인적으로 영웅으로 생각하는 친구들과 선생님들의 이름, 제가 배우고 싶은 점들을 적는다. 그분들이 저한테는 다 롤 모델"이라고 말했다.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학교 교수가 6일 서울 강남구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허준이 교수 '2022 필즈상' 수상기념 기자브리핑에 핀란드에서 화상으로 참석해 수상 소감을 밝히고 있다. 허준이 교수는 5일 핀란드 헬싱키 알토대학교에서 열린 필즈상 시상식에서 수학계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을 수상했다. 2022.7.6/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허준이 교수, '영재의 신화'에 균열…"마음을 여유롭게…스스로에게 친절하길"

허준이 교수의 시행착오를 겪은 삶은 '영재의 신화'와 거리가 있다. 훌륭한 성과를 내는 사람은 어릴 적부터 두각을 드러내고, 그에게 투자를 집중해야 하고, 영재는 삶의 여정에서 빠르게 무언가를 성취해낸다는 '영재의 신화'와 달리, 오히려 그는 청년에게는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자신의 길을 뚜벅뚜벅 걷는 것을, 후배 수학자에게는 '여유'를 이야기했다.

허 교수는 필즈상 수상식에서도 영상을 통해 원래는 시인을 꿈꿨다는 점을 말하는 것처럼 자신의 삶의 시행착오를 지속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는 어릴적에는 구구단을 어려워해 부모님이 걱정한 일, 원래는 시인을 꿈꿨지만 '밥벌이'를 위해 고민하다 과학기자를 지망했다는 에피소드를 여러 인터뷰에서 털어놨다.

8일 반바지에 푸른 셔츠 차림으로 인천 국제 공항에 도착한 그는 "많은 10대, 20대분들처럼 저도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겪어 왔다고 말할 수 있다"며 "지금 다 돌아와서 생각해 보니까 제가 걸어온 길이 구불구불하기는 했지만 저한테는 가장 좋고 빠르고 최적화된 길이었던 것 같다. 마음을 여유롭게 가지시고 천천히 차근차근 한 발짝, 한 발짝 걸어 나가시면 좋은 결과 있을 거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물론 수학은 꾸준히 진득하게 붙잡고 앉아서 10년이고 20년이고 계속하는 게 흔히들 강조돼 왔다.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제가 개인적으로 느낀 것을 당부로 드리고 싶다면 가끔 가다가는 적당할 때 포기할 줄 아는 마음이 되게 중요한 것 같다"며 이어 그는 "집착하기보다는 마음을 조금 더 편안하게 하고 스스로에게 친절하면서 본인의 마음이 가고 재밌는 그런 방향으로 공부하고 연구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스스로에게 친절하면서 공부하고 연구하자는 그의 이러한 지론은 일상생활에서도 드러난다.

허준이 교수는 "하루에 4시간 정도 연구에 집중하고 있고, 그 이외의 시간에는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다"며 "첫째 아이가 이제 7살 초등학교 1학년 막 마쳤고 둘째 아이는 이제 1살에서 2살로 가고 있는 중인데 여러 가지 집안일 할 것도 많고 아이들 공부 봐줄 것도 있다. 청소도 하고 그러면서 머리를 식히고 또 그다음 날에 새로운 마음으로 집중해서 공부할 수 있는 준비도 되고 그렇게 매일매일 똑같은 일상을 지내고 있다"고 밝혔다.

허준이 교수는 13일 서울에 위치한 고등과학원에서 수상 기념 강연을 한 뒤, 부모님을 모시고 제주도로 가족여행을 갈 예정이다.

seungjun241@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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