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를 넘어서는 해방촌의 해방일지

이상현 2022. 7. 9.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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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필국 앵커 ▶

8.15광복과 함께 생긴 실향민 마을, 서울 용산의 해방촌이 최근 몇년 사이 크게 달라지면서 젊은이들의 해방구가 되고 있다고 합니다.

◀ 차미연 앵커 ▶

네, 새로 생긴 용산 역사박물관에도 해방촌의 역사와 문화를 조명하는 공간이 별도로 마련돼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는데요.

그 현장을 이상현 기자가 찾아가봤습니다.

◀ 리포트 ▶

빌딩숲으로 빠르게 변하고 있는 서울의 중심 용산.

그 한복판에, 1928년 건립돼 100년 가까이 된 근대식 건축물 하나가 꿋꿋이 버티고 있습니다.

철도 종사원과 여행객들을 대상으로 운영됐던 철도병원 건물로, 이후 대학병원으로 활용되다 최근 리모델링을 거쳐 지역의 역사박물관으로 새롭게 탄생했습니다.

조선시대, 그리고 근현대를 거치며 그 어느 지역보다 다사다난했던 용산의 기록들.

[한영실/서울 관악구] "여기가 원래는 병원건물이었는데 박물관으로 만들었으니까 하나쯤은 그렇게 병원의 느낌을 남겨놓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 한켠에 해방촌이라 씌어진 특별한 공간이 눈에 띄었습니다.

1945년 8.15해방과 함께 북에서 내려온 실향민들이 하꼬방으라 불린 판잣집으로 터를 잡으며 해방촌으로 불렸고, 이후 각종 소설과 영화 등에서 서울의 대표적 서민촌으로 묘사되기도 했던 가파른 비탈길의 달동네.

"어딜 가시죠?" "해방촌.."

[조은비/용산역사박물관 학예사] "70년도에 서울시에서 도시재개발 사업을 추진을 하면서 (해방촌은) 사실 강제철거 대상 지역이었어요. 그런데 공동체를 유지하고자한 지역민들의 강한 반발로 1973년 자력재개발 사업 구역으로 선정이 되면서 지금까지 유지보존이 되고 있습니다."

그 해방촌으로 향해봤습니다.

[이상현 기자/통일전망대] "제 옆으로 서울의 상징 남산타워가 보이시죠? 이렇게 남산 바로 아래에 형성된 첫 마을, 지금은 용산2가동이 된 해방촌입니다. 해방 이후 월남인들이 살기 시작했고 지난 70여년간 많은 변화가 있었다는데요 어떻게 변했는지 지금부터 함께 살펴보시죠."

우선 후암동쪽에서 올라가는 108개의 계단.

1943년 일제가 전사자 추모를 위해 세운 경성호국신사의 진입로로 만들어진 이른바 108계단으로, 광복 직후 그 신사 자리를 차지하게 된 해방촌 주민들의 힘겨운 통행로였는데요.

2018년 경사형 승강기가 계단 중앙에 설치돼 지금은 백발의 노인이 된 해방촌 원주민들에겐 큰 힘이 돼주고 있었습니다.

[윤주병/해방촌 경로당 회장] "그때만 해도 나 올라올때만 해도 여기 다 하꼬방집(판잣집)이었어요 하꼬방집. 나도 하꼬방집에서 남 월세로 살고 했는데 이렇게 많이 발전하다보니까 아시다시피 용산이 서울의 중심이고"

과거 미군기지와의 경계였던 담벼락과 판잣집에서 양옥으로 바뀐 주택가의 골목을 따라 걷다보면 해방촌의 중심, 오거리가 나타나는데요.

그 아래쪽에서 해방촌의 명과 암을 같이 해온 재래시장, 신흥시장을 만나게 됩니다.

[박일성/해방촌 신흥시장 상인회장] "후암동 이태원 거기 사람들이 다 여기와서 장보고 갔었지. 사람들이 줄 서고 돌아다녔어요 여기서. 막말로 쓰리꾼(소매치기)까지 있었다니까"

1950년대엔 담배 제조, 60년대부터는 스웨터 제조로 전성기를 구가했지만 90년대 들어 니트산업이 사양길로 접어들면서 시장도 함께 침체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김종호/해방촌 니트패션협동조합 이사장] "거의 집집마다 (니트 제조) 하다시피 했는데 그렇게 많았는데 이젠 다 떠났어요. 그리고 기술 배우는 사람 없고"

하지만 10년쯤 전부터는 젊은 상인들과 예술인들이 그 빈 자리를 채우며 다시금 활기를 찾게 됐는데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동서양의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지역인만큼 우선 그 특색을 살린 여러 공방과 카페, 레스토랑 등이 하나둘 들어섰고, 젊은 층 사이에서는 이른바 핫플, 명소가 된 맛집들도 많아졌습니다.

[고태원/아케디뜨 대표] "(어렸을때) 유럽에서 저는 살았는데 해방촌 여기 신흥시장 처음에 왔을때 이 스케일 자체가 너무 유럽같은 분위기도 나고 그리고 이 건물들을 사용하면 분명히 하나의 서울의 콘텐츠가 되겠다라는 생각이 좀 강했어요."

또 서울의 전경이 조망되는 남산자락의 지리적 특성을 살려 특별한 공연 등을 펼치며 해방촌만이 가질 수 있는 독특한 루프탑, 옥상 문화를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이세원/ 용산정책연구소 대표] "신흥시장의 틀은 남아있지만 안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바뀌다보니까 판매되는 제품들도 전부 다 바뀌었거든요. 이게 어떻게 보면 대한민국의 역사처럼 쭉 가는 것이 아닌가"

지난 봄엔 낡은 지붕과 바닥 교체공사를 마무리하며 또한번 새로운 변신을 도모하고 있는 해방촌.

[박희영/용산구청장] "옛날의 역사성을 갖고있는데다가 현재의 멀티걸쳐같은 그런 분위기, 옛것과 미래의 것이 잘 어울릴 수 있는..복합적인 문화관광벨트를 형성해볼까 그런 생각도 구상을 하고 있고요."

살기 위해 내려왔던 실향민들의 힘겹던 보금자리, 그 해방촌에서 이젠 젊은이들이 미래의 꿈과 희망을 품고 또하나의 해방일지를 써내려가고 있습니다.

통일전망대 이상현입니다.

기사 원문 - https://imnews.imbc.com/replay/unity/6386473_2911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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