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서해 사건 발표 3주..진실은 아득하고, 정치는 난무하고

김태훈 국방전문기자 2022. 7. 9.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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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6일 국방부와 해경이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최종 수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최종 수사 결과 발표, 즉 더 이상 살필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발표 이후 3주가 지나 잠잠해질 만도 한데 사건은 몸집을 키우며 어디인지 모를 결론을 향해 굴러가고 있습니다.

검찰의 본격 참전 이전 국면에서 감사원과 국정원이 초반 칼잡이를 자처했습니다. 전격적인 감사 착수와 전 국정원장들 고발을 신속하게 공포했습니다. 두 기관이 일찍이 보여준 적 없는 초식이라 참 어색합니다. 정권과 여당의 정치에 편승하려는 분위기가 역력합니다.

국방부는 정보 삭제 의혹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습니다. 삭제가 아니라 정보 전파의 통제라는데 국방부는 그냥 삭제로 비쳐지기를 바라는 양 적극적으로 해명하지 않습니다. 역시 정치적 의도를 의심받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정보 삭제가 아니라 정보 전파 통제라는데…

서욱 전 국방부 장관 (사진=연합뉴스)

2020년 9월 22일 밤 해수부 공무원 이대준 씨가 북한군에 피격된 뒤 시신이 소각당한 정황이 우리 군에 포착됐습니다. 다음 날 새벽 1시 청와대는 관계부처 장관회의를 소집해 대책을 논의했고, 직후 서욱 국방장관이 군사정보통합체계(MIMS·밈스)의 정보 전파 제한을 국방정보본부에 지시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당시 안보라인 핵심 관계자는 SBS와 통화에서 "국방장관이 시신 소각 등 예민한 정보들을 꼭 필요한 부서와 부대에만 전파하도록 지침을 내렸다"고 밝혔습니다.

이 관계자는 "정보 수신 부서와 부대는 정보본부에서 선별했다", "정보의 삭제가 아니라 정보 전파의 통제로, 관련 훈령에 근거한 조치"라고 설명했습니다. 국방부에 따르면 밈스의 보안 지침서와 특수정보(SI) 보안 훈령 등에 정보 통제의 근거가 있습니다. 밈스 보안 지침서는 정보의 수신처를 유사시 조정할 수 있도록, 보안 훈령은 비밀 취급 인가자라도 관련 없는 부서 소속이라면 특정 정보에 접근할 수 없도록 각각 규정했습니다.

관련 규정에 의거해 사건과 무관한 부서와 부대에 해당 정보들을 공유하지 않았을 뿐 삭제는 없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수색 및 구조 작전과 관련이 있는 부대들은 시신 소각 등 예민한 정보를 정상적으로 수신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정보 삭제 없이 민감한 정보들을 꼭 필요한 부서와 부대로 전파했다면 문제없는 절차입니다. 일반 회사에서도 그렇게 일합니다.

우리 군 최고지휘부인 이종섭 국방장관과 김승겸 합참의장

국방부와 합참의 공식 입장은 "정보의 원본은 삭제되지 않았다", "밈스에 탑재된 민감한 정보가 직접적인 업무와 관계없는 부대까지 전파되지 않도록 필요한 조치를 했다"입니다. 국방부와 합참이 진정 이렇게 파악했다면 군 신뢰 보전과 혼란 진정을 위해 삭제 운운하는 주장에 적극 대응해야 합니다. 하지만 기자들 질문에 소극적 답변이 전부입니다. 권력 눈치 보는 것 같습니다.
 

엉성한 몸짓의 국정원과 감사원

박지원, 서훈의 고발을 대대적으로 공개한 국정원과 변경된 원훈

국정원은 지난달 24일 원훈을 교체했습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한 한없는 충성과 헌신'에서 초대 원훈인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로 돌려놨습니다. 음지에서 일하겠다고 다짐한 지 2주 만인 지난 6일 국정원은 박지원, 서훈 두 전직 원장 고발을 만천하에 공개했습니다. 국정원이 누군가를 검찰에 고발하면서 이렇게 떠들썩하게 언론 입장문을 낸 적이 있었는지 의문입니다. 음지에서 일하겠다는 선언이 무색합니다.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감사에 전례가 드문 속도로 착수한 감사원


감사원도 국정원에 뒤지지 않습니다. 국방부와 해경의 최종 수사 결과 발표 다음 날인 지난달 17일 감사원은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과 관련해 해경과 국방부에 대한 감수에 착수한다"는 제법 장문의 입장문을 냈습니다. 감사 착수 속도도 이례적이고, 감사 사실 사전 공포도 이례적입니다. 감사원이 이전에도 공직 사회의 부조리에 이처럼 의욕적으로 달려들었다면 대한민국은 벌써 공정과 정의가 넘치는 나라가 됐을 것입니다.

국정원과 감사원이 거창하게 칼을 뽑았으니 반드시 성과를 낼 터. 하지만 두 기관의 몸짓이 워낙 정치적이고 엉성해서 결과가 어떻든 상대가 수긍할리 만무합니다. 진실은 아득하고, 정치만 난무합니다.

김태훈 국방전문기자oneway@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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