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면에서 열세, 민심이 유일한 승리 요인이었죠"
인지도와 선거조직 등 열세, '민심의 승리' 평가
"당선되어줘서 고맙다"며 눈시울 붉히는 주민들
"주민은 분열에서 화합으로, 군청은 일하는 조직으로"
"경북 군위는 전형적인 보수 지역인데다 투표율 전국 최고라서 보수당 공천받으면 당선은 따 놓은 당상 아닌가?"
모르고 하는 소리다. 공천이 영향은 있겠지만 승리를 담보하는 절대적 요건은 아니다. 군의원 선거를 봐도 이번 6.1 지방선거에서 군위 '가'와 '나' 선거구 중 '가' 선거구 득표율 1위가 무소속이었다. 인구 2만 남짓한 지역의 특성상 보수 강세로 거론되는 지역임에도 '인지도'의 영향이 정당의 색깔까지 무색하게 만든다. 첫 도전보다는 재선이, 재선보다는 3선이 더 유리할 수밖에 없다.
"김진열이 누구요?"
이번 6.1 지방선거에서도 3선에 도전했던 김영만 전 군수는 국민의 힘 공천을 받지 못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했지만 만만찮은 전력을 과시했다. 통합신공항 추진 등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지지세력과 8년 동안 쌓은 인지도로 ‘난공불락’의 아성을 형성했던 까닭이었다. 3선 도전 후보라는 바위에 도전장을 내밀었던 김진열 당시 군위축협조합장은 국민의 힘 공천을 받았음에도 말 그대로 돌에 달려든 '계란'이었다. 개표 당일에도 몇 번이나 엎치락 뒤치락 하면서 피 말리는 접전을 치렀고, 109표라는 근소한 차이로 승리를 따냈다.
관건은 인지도 올리기였다. 김 군수는 축산인들 사이에서는 너무도 잘 알려진 인물이었다. 43세에 군위축협 조합장에 당선된 후 20년 동안 군위 축협을 이끌면서 농협중앙회가 매년 실시하는 종합경영평가에서 2021년까지 14년 연속 1등급을 획득했고, 대구경북 농축협 최초로 10년 연속 클린뱅크에 선정되는 성과를 냈다. 무엇보다 IMF 구제금융의 여파로 신사업 개발이 절실하던 시기에 육우라는 틈새 시장을 개척해 10여년 만에 군위 지역 육우 생산 비중을 대한민국 전체 생상량의 12%까지 끌어올리는 성과를 내 전국의 축산인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문제는 축산계 바깥에서는 생소하게 여기는 사람이 많다는 점이었다. 심지어 유세 중에 "김진열이 누구요?"하는 질문을 던지는 유권자도 있었다. 김진열 군수는 "잠을 아끼고, 부지런히 다니며 진심을 전하고, 목소리를 높이고 또 높이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고 고백했다. 선거운동 내내 하루 3시간 이상 잠을 청하지 못했다. 그야말로 강행군이었다.
지지 의사도 마음껏 드러내지 못 했던 '샤이 지지자'들
김영만 전 군수의 인지도가 워낙 높았다. 그에게서 돌아선 이들도 이를 공공연하게 드러내지 못했다. 분위기에 억눌려 김 군수에 대한 지지 의사를 공개적으로 표명하지는 못하고 은근한 신호를 보냈다. 이를테면, 그저 악수할 때 손에 힘을 꼭 주거나 눈을 맞추며 고개를 작게 끄덕이는 식이었다. 김 군수를 응원하는 주민 대부분이 '샤이 지지자'들이었다.
하루 아침에 마음이 돌변하는 유권자들도 있었다. 어느 마을의 노인정에서는 첫날은 반갑게 맞아주었는데 며칠 후에는 차갑게 얼굴을 돌렸다. 상대측 후보의 지지자들이 다녀간 뒤였다. 늘 얼굴을 맞대고 사는 사람들의 말에 간단하게 설득을 당했던 것이었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인지도를 쌓아 올렸다.
유권자들이 대개 한동네 사람, 같은 지역, 수십 년 동안 함께 살아온 사람들인 만큼 사실과 다른 말도 쉽게 퍼졌다. 김 군수를 비방하는 유인물이 배포되기도 했다. 경찰이 수사에 나서기까지 했으나 그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유언비어에 대해 해명하고 사실과 다른 이야기들에 진실로 맞서느라 숱한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했다. 인지도와 인적 자원 모두에서 불리했던 상황에서 기댈 데라곤 지지자들이 보여주는 열정과 궁하면 통한다는 평소의 신념뿐이었다.
김 군수는 "선거 전략과 전술보다 진심으로 다가가자는 생각뿐이었다"면서 "내가 사심이 없고, 진정으로 다가간다면 언젠가는 마음을 열어줄 것이라는 신념으로 버텼다"고 밝혔다.
"나이가 팔십이지만 우리도 귀가 있고 눈이 있다네!"
변화는 서서히 찾아왔다. 어느 어르신은 김 군수에게 귓속말로 “나이가 칠십 팔십이지만 우리도 듣는 귀가 있고 보는 눈이 있다”는 말로 격려했다. ‘샤이 지지층’이 두터워지고 있다는 신호였다.
그럼에도 마지막까지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다. 오히려 상대 후보가 승리를 확신하는 분위기였다. 읍내에서 마지막 유세 연설을 할 때 상대 후보를 태운 유세차량이 군중 한가운데를 유유히 지나갔다. 개선장군 같은 모습이었다. 길가에 늘어서 있던 김 군수의 지지자들 사이에서 야유가 터져 나왔다. 결과적으로 이 해프닝 덕분에 김 군수 측 지지자들이 더 강하게 결속했다. 적잖은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선거가 끝난 뒤에 남녀 할 것 없이 제 손을 붙잡고 우는 분들이 많았어요. '당선돼 줘서 고맙다'고요. 분열에서 화합으로, 비정상에서 정상으로, 줄 서는 조직에서 일하는 조직으로, 축소지향적 군정을 극복하고 보다 큰 군위, 자랑스러운 군위로 나아가겠습니다. 그것이 인지도, 선거조직 등 모든 부분에서 열세였음에도 저를 과감하게 선택해주신 군위의 민심이 저에게 맡긴 책무이자 염원이라고 생각합니다!"
김광원 기자 jang75010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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