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물가 껑충..식량위기 탈출구를 찾아라

안광호 기자 2022. 7. 9.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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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제외한 곡물 97% 수입 의존 "식량안보, 위험한 수준"
윤 정부, 민간 주도의 해외 공급망 구축 추진
우크라이나 소도시 보로디안카에서 러시아군 폭격으로 부서진 건물 사이로 우크라이나 국기가 보인다. / AFP|연합뉴스

기후변화, 코로나19, 전쟁…. 전 세계 식량위기를 불러온 요인들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불에 기름을 부은 격으로 식량위기를 키웠다. 곡물 수급이 불안해지자 주요 곡물 생산·수출국들이 빗장을 걸어 잠갔다. 이는 다시 곡물 가격 상승을 부추기고 식량위기를 확산시키고 있다. 한국은 쌀을 제외한 곡물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한다. 곡물 가격이 뛰면 밥상물가도 급등한다. 식량위기 경고음이 나온 게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정부 대응은 효과적이지 않다. 안정적인 해외 공급망을 확보할 수 있도록 민간기업의 진출을 돕는 정책과 지원이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6월 7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식량위기 대응과 관련해 세계무역기구(WTO) 차원에서 논의 예정인 각료 선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협력하겠다”고 말했다. / 기획재정부



■곡물가격 급등과 수출제한

글로벌 곡물 공급망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이전부터 불안했다. 기후변화로 미국 등 주요 곡물 생산·수출국의 작황 부진이 심했다. 미·중 무역 갈등과 코로나19 대유행은 공급 상황을 악화시켰다. 2020년 하반기부터 밀과 옥수수, 콩 등 국제 곡물 가격이 본격적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지난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식량위기를 전 세계로 확산시킨 방아쇠가 됐다.

전쟁 이후 곡물 가격은 얼마나 뛰었을까. 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시카고상품거래소(CBOT)에서 거래된 밀의 선물가격(올 6월 14일 기준)은 t당 387.36달러다. 1년 전 247.65달러에 비해 56.4% 상승했다. 같은 기준 옥수수는 t당 301.86달러로 15.7%, 콩(대두)은 626.75달러로 15.9% 각각 상승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매월 발표하는 세계식량가격지수(2014~2016년 평균=100)는 157.4포인트(올 5월 기준)로 1년 전보다 22.9% 상승했다. 연간 밀 수출 규모로 보면 러시아는 세계 1위(3730만t·2020년 기준), 우크라이나는 세계 5위(1810만t)다. 세계 1위와 5위 밀 수출국 간에 전쟁이 터지자 전 세계 밀 공급이 심각한 차질을 빚으면서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여기에 세계 제2의 밀 생산국인 인도도 자국 사정을 이유로 밀 수출을 금지했다.

전쟁은 장기화 조짐이다. 외신에 따르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의 동부 루한스크 지역을 장악한 직후인 지난 7월 4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에서 공세를 계속하라고 지시했다. 미국과 유럽 국가들의 반발도 커진다. 이들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항구를 틀어막고 흑해에 기뢰를 설치하는 등 우크라이나산 곡물의 수출을 막아 의도적으로 식량위기를 부채질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실제 러시아는 침공 직후 우크라이나의 흑해 항구를 봉쇄하고 농업 시설을 파괴했으며, 농지를 빼앗고 이미 수확한 곡물을 훔치는 등 최대 식량 수출국 중 하나인 우크라이나를 국제시장에서 단절시키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푸틴 대통령이 전 세계를 상대로 ‘식량 인질극’을 벌이고 있다”고 했다.

당장 전쟁이 중단되더라도 원상복구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릴 전망이다. AFP통신은 지난 6월 13일(현지시간) 보도에서 “우크라이나의 경작지 면적은 남한 전체 면적의 약 3배에 해당하는 30만㎢ 정도인데, 러시아 침공 이후 7만5000㎢가량을 못 쓰게 된 것으로 우크라이나 당국은 추정했다”고 전했다. 올해 곡물 수확량은 지난해의 60%에 머물 전망이다. 우크라이나 자국 내 곡물 저장고에 묶여 있는 곡물도 2000만t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선 우크라이나의 식량 생산지와 수출이 타격을 입으면서 세계 식량위기가 향후 2년간 이어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전 세계의 식량위기는 주요 곡물 생산·수출국의 수출제한 조치를 불러왔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이 지난 6월 20일 내놓은 ‘식량 수출제한 조치에 따른 공급망 교란과 영향’이란 제목의 보고서를 보면, 올해 들어 34개 국가가 내린 식량·비료 수출제한 조치는 57건에 달한다. 수출금지 42건, 수출허가제 10건, 관세 5건 등이다. 이중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시행된 조치는 78.9%인 45건이다.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6월 9일 ‘분질미를 활용한 쌀 가공산업 활성화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분질미는 가루로 가공하기 쉬운 쌀의 종류다. 정부는 이번 대책을 통해 2027년까지 연간 밀가루 수요의 10%에 해당하는 20만t을 분질미로 대체할 계획이다. / 연합뉴스

■국내 영향과 정부 대응은

한국은 국내 곡물 전체 수요량의 대부분을 수입한다. 연간 수입량(2020년 기준)은 1717만t으로, 세계 7번째 곡물 수입국이다. 곡물자급률은 쌀을 포함하면 20.2%, 쌀을 제외하면 3.2%에 불과하다. 쌀을 제외한 전체 97%가량을 수입하는 셈이다. 곡물별 자급률은 밀 0.5%, 옥수수 0.7%, 콩 7.5% 등이다. 영국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가 매년 국가별 식량안보 수준을 비교 평가해 발표하는 세계식량안보지수(GFSI)를 보면, 한국(2021년 기준)은 113개국 중 32위, OECD 38개 국가 중 28위로 최하위권이다. 유엔 기후변화 전문가이자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농업 공적개발원조(ODA) 전문가인 남재작 한국정밀농업연구소장은 “한국의 식량안보는 위험한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곡물의 공급 차질과 가격 급등은 국내 수입단가 상승으로 이어진다. 이는 시차를 두고 국내 가공식품과 사룟값 등에 영향을 미쳐 식품·외식업계와 축산 농가의 비용 상승을 압박한다.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은 “주요국의 식량 및 비료 수출제한 조치에 따른 가격 상승이 국내 물가에 미친 영향을 분석한 결과, 수출제한 조치 이후 비료와 곡물, 유지 가격이 각각 80%, 45%, 30% 상승했다”고 분석했다.

밥상물가도 뛴다. 지난 7월 5일 통계청이 발표한 6월 소비자물가는 1년 전보다 6.0% 올랐다. 이중 농축산물은 축산물(10.3%)과 채소류(6.0%)를 중심으로 4.8% 오르며 전월(4.2%)보다 오름폭이 커졌다. 외식물가는 1년 전보다 8.0% 올라 1992년 10월(8.8%) 이후 약 30년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향후 물가 전망은 어둡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올해 3분기 곡물 수입단가가 2분기보다 13.4% 높아질 것으로 봤다. 김종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 농식품 물가 상승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정부의 통제권이 미치지 못하는 국제 농산물 가격 상승과 한국의 높은 수입의존도라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정부의 대응은 어떨까. 문재인 정부의 식량위기 대응은 국내 생산기반 확대와 해외농업 개발에 초점을 맞췄다. 국내 생산기반의 경우 지난해 9월 내놓은 국가 먹거리 종합전략인 ‘국가식량계획’에 담겼다. 쌀과 밀 등의 공공비축 매입 물량을 확대하고 밀·콩 자급률을 오는 2025년까지 각각 5.0%, 33.0%로 높이는 게 골자다. 해외농업 개발에서는 민간기업인 포스코인터내셔널이 2019년 우크라이나의 곡물터미널 지분 75%를 인수하고, 하림(팬오션)이 미국 워싱턴주에 있는 곡물터미널에 2대 주주(36.0%)로 참여하는 성과가 있었다. 이를 통해 2020년 10월에 처음으로 우크라이나산 밀을 국내에 공급하기도 했다.

평가는 박하다. 해외농업 개발로 인한 국내 반입 곡물량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정부 역할이 해외농업 개발에 진출한 민간기업에 현지 정보를 제공하거나 융자를 지원하는 수준에 그쳤다는 평가다. 김승남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2020년 기준 포스코인터내셔널과 팬오션을 통해 공급된 물량은 약 37만t(2020년 기준)에 그친다. 이마저도 모두 사료용으로, 국내 곡물 수요량의 1.9%에 불과하다. 한 민간단체 관계자는 “2008년 국제 곡물 가격 파동 이후 국내 민간기업이 해외에 진출할 수 있도록 정부가 관련 예산을 늘리면서 실제 동남아 지역에 진출한 기업들도 있었다”면서도 “국제 곡물 시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성급하게 진행되다 보니 진출한 기업들의 어려움이 커졌고, 이후엔 식량안보에 대한 관심이 줄고 관련 예산이 쪼그라들면서 결국 흐지부지되고 말았다”고 했다.

윤석열 정부의 식량위기 대응은 민간기업 주도로 바뀔 전망이다. 정부 관계자는 “윤석열 정부는 불가피하게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곡물들의 안정적인 물량 확보 등 글로벌 공급망 구축과 개선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정부가 나서게 되면 곡물 메이저사들과의 가격 협상에서 불리한 상황이 만들어질 수 있는 만큼 민간이 주도적으로 나서고 정부가 우회 지원하는 방식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구체적인 정부 대책은 하반기 중 나올 전망이다.

■위기의 구조적 문제와 대안은

전 세계적인 식량위기의 근본적인 배경은 국제 곡물 시장의 구조적 문제에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국제 곡물 시장은 주요 곡물 생산·수출국이 식량안보 차원에서 자국 내 소비를 우선하고, 남는 부분을 다수의 국가에 수출하는 공급자 우위의 시장이다. 밀의 경우 러시아를 비롯한 상위 5개 국가의 생산량 점유비(2021년 기준)가 65%에 달한다. 같은 기준으로 옥수수는 상위 5개 국가가 73.3%, 콩은 89.9% 등을 차지한다. 농협경제연구소는 최근 ‘세계 곡물 가격 변동성과 식량안보 연구보고서’에서 “식량위기 시 곡물 생산·수출국은 자국 수요를 맞추기 위해 수출금지 또는 제한조치 등을 시행한다”며 “이에 시장 공급량이 변동되면서 세계 곡물 가격의 변동성이 크게 확대된다”고 설명했다. 김종진 연구위원은 “2000년대부터 세계무역기구(WTO) 체제로 인해 농업보조금 감축과 자유무역이 강조되면서 글로벌 식량 공급망에서 농업경쟁력을 보유한 소수 국가의 역할이 증가했다”며 “반면 농업경쟁력이 열위에 있는 국가들의 식량 수입의존도는 높아졌다. 이렇게 세계 식량 공급이 소수의 국가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기상 요인으로 인한 생산량 감소, 신흥국 수요 증가, 바이오 연료용 수요 증가, 세계경제 위기 등의 충격은 곧바로 국제 곡물 가격 급등이라는 시장 위기로 귀결됐다”고 했다.

세계 곡물 시장의 독점적 유통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는 점도 식량위기를 부채질한다. 현재 세계 곡물 시장은 이른바 ‘ABCD’로 불리는 ADM(아처대니얼스미들랜드), Bunge(번지), Cargill(카길), LDC(루이스드레퓌스컴퍼니) 등 4대 글로벌 기업이 세계 곡물 교역량의 약 75%를 장악하고 있다. 이들은 곡물 유통뿐 아니라 생산과 가공판매에 이르기까지의 전 과정에 개입하고 있다. 또 세계 여러 농산물 생산지나 선물거래소 등을 통해 대규모 곡물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곡물 수급과 가격에 영향을 미친다. 독점적 시장 구조이다 보니 새로운 기업의 시장 진입이 원천적으로 봉쇄될 뿐 아니라 이들을 통하지 않고서는 곡물 조달이 쉽지 않다. 한국도 곡물 수입량의 약 60%를 이들 4대 곡물 메이저 회사를 통해 구입하고 있다.

곡물자급률을 높이는 게 근본적인 대책이라 할 수 있지만 여건상 쉽지 않다. 통계청이 올 초 발표한 ‘2021년 경지면적 조사결과’를 보면 지난해 전국의 경지면적은 154만6717㏊로, 2020년의 156만4797㏊와 비교해 1만8080㏊(-1.2%) 감소했다. 2012년과 비교해서는 9.5%나 줄었다. 밀과 콩 등 주요 곡물의 가격 경쟁력이 수입산보다 낮은 점도 고려해야 한다. 곡물은 규모의 경제가 크게 작용한다. 소규모 영농으로는 작물을 힘들게 수확해도 돈이 되지 않는다.

일본의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는 의견도 있다. 일본 정부는 1970년대부터 우리의 농협중앙회 격인 일본농협(젠노)과 종합상사들이 해외에 진출해 곡물터미널과 곡물저장고 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 결과 세계식량안보지수가 2012년 16위에서 2021년 8위로 뛰었다. 국제무역협회는 “한국과 비슷하게 곡물 및 식량 자급률이 낮은 일본처럼 식량 품목별 통계와 공급선 관련 통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취약 품목을 사전에 파악하고 대체 공급선을 마련하는 한편 아직 수출제한 조치가 활발하지 않은 수산물 등 품목에 대해서도 제재가 확장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이에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해외 곡물터미널 지분을 추가로 확보하거나 인수하는 방식으로 식량 유통망을 확보하고, 해외 메이저 곡물회사들에 대한 의존도를 줄여 단가 급등 시에도 안정적으로 물량을 국내에 조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한 정부 차원의 자금 지원, 정보 제공, 전문인력 양성 등의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 남재작 소장은 “자급률을 높이려면 그에 맞는 농경지와 인력 등 인프라가 따라줘야 하는데 우리는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다. 따라서 안정적으로 공급처를 확보해 수입하는 게 중요하다. 주요 곡물 생산·수출국과의 무역협정에서 공급망을 확보할 수 있도록 단서조항을 붙이거나, 해외 투자 시 식량 스와프(교환)와 같은 조치들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안광호 기자 ahn7874@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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