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외교에선 찾아 볼 수 없는 광해군의 균형감각
대통령의 외교
전쟁 전 역량 비교평가하는 '묘산'
팽팽한 싸움서 승패 가르는 요인
나토서 첫 국제 무대 나선 대통령
"실용외교 필요" 지적에 귀 열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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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9~30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 정상회의에 파트너국으로 초청받아 스페인 마드리드를 다녀왔다. 정부에선 “외교 데뷔 무대”라거나, “성과가 좋았다”는 등 평가를 내놨다. 하지만 그보다 근본적으로 확인해야 할 몇가지 문제들을 남겼다.
나토는 잘 알려진 대로 미국이 자국 주도의 세계질서를 형성하기 위해, 냉전시대 소련 봉쇄를 위해 만든 군사동맹이다. 이번 회의의 ‘미션 스테이트먼트’(강령)가 분명하게 러시아와 중국을 겨냥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 대통령은 참석 여부에 대해 국익을 기준으로 매우 신중하게 검토해야 할 자리였다. 대통령은 그의 일거수일투족 하나하나가 국가를 대표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언행이 국익에 도움이 되는지 늘 점검하고 신중을 기해야 한다.
국제무대 데뷔전 앞 ‘묘산’ 있었나
전국시대 병법의 최고 권위자인 손자는 전쟁을 치르기 전에 ‘묘산’(廟算)을 해보아야 한다는 개념을 제시했다. 손자가 말하는 ‘묘산’이란 전쟁에 돌입하기 전에, 조정에서 상대방의 역량과 자국의 역량을 비교 평가해 보아야 한다는 얘기다. 손자의 주장에 따르면 묘산을 통해서 전쟁이 벌어지기 전에 그 전쟁의 승패를 미리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쌍방의 군사력이 대등하다면 묘산을 치밀하게 해본 쪽이 승리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손자는 말한다. ‘묘산’은 그의 주저 <손자병법>의 첫머리에 나오는 개념이다. 그만큼 그가 중시하고 강조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가 펴는 정책과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 하나하나가 모두 ‘묘산’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럼으로써 국가 지도자 개인의 즉흥적 판단에 따른 경거망동의 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으며, 정부의 정책과 정치 지도자의 언행이 모두 국익에 부합하도록 관리할 수 있는 것이다. 이번 나토 정상회의를 예로 들자면, ‘묘산’을 통해 나토 정상회의 참석이 국익에 어떤 도움을 주고 어떤 손실을 끼칠 것인가를 미리 계산해볼 수 있었던 것이다.
윤 대통령에게 이런 것을 묻고 싶다. 이번 나토 정상회의 참석을 통해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에 들러리를 서줌으로써 한국의 국익에 어떤 보탬을 가져왔을까? 윤 대통령은 이번 나토 정상회의 참석을 결정하기 전에, 국익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묘산을 치밀하게 해볼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국익에 도움이 되는 바가 더 크다면 참석하는 것이고, 국익에 해로움이 더 많다면 참석 요청을 거절할 수도 있어야 했다. 어떤 정책 결정과 행동이 국익에 도움이 되는 측면과 해로운 측면을 비교해서 손익계산서를 작성해낼 수 있어야 되는 것이다.
이번 나토 정상회의 참석을 예로 ‘묘산’을 진행해보자. 참석 요청을 거절하면 아마도 미국이 서운해하긴 할 것이다. 한-미 관계가 흔들릴 정도의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중국과 러시아는 연일 한국의 나토 정상회의 참석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코멘트를 내보냈다. 윤 정부의 이러한 외교는 그동안 공들여 쌓아온 한-중, 한-러 관계에 나쁘게 작용할 수 있다.
한·중 두 나라는 현재 연간 교역액이 3천억달러(390조원) 수준의 거대한 무역상대국이다. 5대 재벌기업을 포함해 우리나라의 주요 기업들이 대부분 중국에 진출해 투자하고 있다. 러시아는 자국의 동방 개발에 한국 자본과 기업들의 참여를 기대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한·러는 한국전쟁 이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왔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최근 한국의 자주적 국방력 강화와 우주발사체 개발에는 러시아로부터의 기술이전이 한몫을 담당한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한국에 중국과 러시아는 아직도 매우 중요한 외교 대상 국가들이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은 “한국이 모스크바와의 교량을 불태우려고 하고 있다”며 윤 대통령의 나토 정상회의 참석을 비판적으로 다루고 있다. 한국과 러시아의 관계가 악화되면 러시아는 북한에 대한 군사 지원을 높일 것이고, 결국 남북 관계를 악화시킬 것이라는 관점도 소개했다. 이렇게 묘산을 진행해보면 나토 정상회의를 두고 윤 대통령이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국익에 가장 도움이 될지를 판단할 수 있었다. 한국과 같은 약소국이 강대국들의 이해충돌 사이에서 일방적으로 어느 한편에 서는 것에는 신중한 고려가 필요하다.
광해의 균형외교에서 얻는 교훈
이와 같은 정국이 중국의 명-청 교체기에 한반도에서 형성된 적이 있다. 당시 조선의 국왕이던 광해는 쇠락해가던 명나라와 새롭게 일어나던 건주 여진(훗날 청나라를 건국하는 세력)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함으로써 국익을 최대한 지키려고 노력했다. 명나라는 조선에 건주 여진을 공격하라고 요구했지만, 광해는 이에 맹종하지 않고 조선의 국익을 최우선시하여 백성들이 전쟁을 통해서 피해를 입지 않도록 출병하는 장수 강홍립에게 밀지를 보내 적당히 싸우다가 상황을 보아 후퇴하도록 교지를 내렸다.
이런 광해의 실용주의적 줄타기 외교가 명나라에 대한 대의명분을 저버리는 것이라고 판단한 친명 사대주의자들은 광해를 몰아내고 인조반정을 일으켰다. 그 결과 조선이 명나라에 일방적으로 복속함으로써 건주 여진의 반발을 사 병자호란이라는 조선조 최대의 위기를 자초한 것이다. 이 시기의 명나라와 건주 여진과 조선의 관계에 대해서는 사료를 중심으로 엄밀히 분석한 한명기 명지대 교수가 저술한 <병자호란>이라는 노작이 있다. 윤 대통령에게 새 정부의 외교 노선 정립을 위해 이 노작의 일독과 참고를 꼭 권하고 싶다.
철학연구자
연세대에서 주역 연구로 석사, 제자백가 논리철학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겨레> 기자를 거쳐 서울시교육청 대변인 등을 지냈다. 제자백가 사상과 철학을 강의하고 글쓰기를 하고 있다. <아큐를 위한 변명> <한비자, 권력의 기술> <오랑캐로 사는 즐거움>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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