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 "타투, 상처 치유이자 몸에 새긴 예술 작품"
"케이 타투 세계 최고 꼽히지만
한국서 위축되는 활동 안타까워"
9년 쌓아온 입체적 작품 세계로
아트페어 '어반브레이크' 참여
흐릿한 얼굴, 귀 뒤 새겨진 숫자 7, 오래되어 색이 바랜 타투를 ‘커버업’(재작업)한 팔을 찍은 여러 컷의 사진. 타투이스트 폴릭이 지난달 18일, 자신의 작업을 올리는 인스타그램 계정에 이 사진들을 한 타래에 묶어 올리자 300만개의 ‘좋아요’가 찍혔다. 사진 속 주인공은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정국, 타투 작업을 한 아티스트는 폴릭이다.
‘정국의 타투이스트’로 순식간에 이름이 알려졌지만, 그는 독특한 작품 세계로 지난 몇년간 미국, 이탈리아, 스페인, 홍콩 등 해외 여러 타투숍에서 러브콜을 받을 만큼 타투계에서 이름을 날려왔다. 오는 21일부터 4일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타투, 웹툰, 그라피티, 아트토이 등 서브컬처 작품을 전시하는 대규모 아트 페어 ‘어반브레이크 2022’에 초청되기도 했다. “세계에서 케이(K)타투가 최고라고들 하지만, 한국만 (의료인이 시술하는 것이 아니면) 불법”이라 할 말도 많다. 그를 지난 1일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 작업실에서 만났다.
타투이스트들에게 가장 척박한 땅
“이건 기사에 쓰지 않는 게 좋겠어요.” 폴릭은 인터뷰를 하다 몇번씩 말을 골랐다. 이력을 묻는 몇몇 질문엔 결코 다른 작가들보다 뛰어나서 팬들이 많은 건 아니라고 손사래 쳤다. “타투가 매우 예민한 콘텐츠고 (어려운 환경에서 활동하는 다른 작가들에게) 불편한 느낌을 주고 싶지 않아요.”
밝은 조명에 정돈된 작업실은 그의 이런 성정이 어쩐지 묻어나는 것 같았다. 과감한 색채와 또렷한 선, 인터뷰 전 미리 본 그의 타투 작업물들의 강렬한 이미지와는 어쩐지 대비되는 느낌이었다.
본명 이상진(33), 그는 9년차 타투이스트이자 정교한 작업을 위한 체력을 비축하느라 매일 1시간씩 유산소 운동을 하는 성실한 생활인이기도 하다. 직접 지은 이름 폴릭은 다각형을 이어 만들어 무언가를 표현하는 ‘폴리곤 아트’와 미술 사조 중 하나인 입체파를 뜻하는 ‘큐비즘’을 합쳐 만들었다. 이름대로 색과 면을 자유롭게 활용해 사람 몸에 작품을 새겨 넣는다. 작게 조각난 면과 색이 모여 꽃이 되고 고양이가 되고 사람의 얼굴이 되고 때때로 거대한 우주로 표현되기도 한다.
폴릭은 인스타그램 팔로어 50만명이 넘는 ‘빅 인플루언서’다. 그를 주시하는 이들의 수만큼 한국의 타투 시장은 여러모로 ‘핫’하다. 한국은 세계적으로 비의료인의 타투 시술을 형사 처분하는 거의 유일하다시피한 나라다. 현행법을 개정하려는 입법안은 여전히 국회에 계류 중이다. 그래서 작가들에겐 “한국은 작업하기가 참 어려운 곳”이다. 꼭 ‘나쁜 일’을 하는 것 같은 불편함에, 폴릭 또한 국내에서 활동하다 2015년 미국에서 자격증을 딴 뒤부터 코로나19 유행 전까지는 주로 외국에서 활동했다.
국내 숍에서도 손님의 90%는 외국인이었다고 한다. “외국에서 한국으로 찾아와서 작업을 받을 정도로 케이 타투의 위력은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실력 좋은 아티스트들이 거의 외국으로 나가고 있는 추세입니다. 이 또한 하나의 문화로 세계에 한국을 알리고 있는데, 국내에선 아무래도 소극적으로 활동할 수밖에 없으니 안타깝긴 하죠.”
합법화를 둘러싼 논란이 분분한 와중에 폴릭이 말하듯 한국 타투는 세계 최고로 꼽힌다. ‘국뽕’ 필터를 빼고 보아도, 각자 개성을 뽐내는 한국 타투이스트들의 작품 세계는 하나같이 흥미롭다. 이번 어반브레이크전에 폴릭과 함께 초청된 두 타투이스트의 작품만 봐도 그렇다.
타투이스트 키메는 회화 기법 중 점묘법을 타투에 적용했다. 전동 머신을 이용하지 않고, 말 그대로 ‘한땀 한땀’ 타투 바늘로 직접 작업을 하는 것. 점점이 섬세한 그의 작품의 단점을 찾는다면, 무심코 남의 몸을 한참 응시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정교하게 조절한 명암, 별처럼 흩어진 자국들 사이로 빨려 들어갈 듯한 기분이다.
타투이스트이자 영상, 일러스트 등 다양한 작업을 펼치는 아티스트 리포는 한국적 요소를 정체성 삼아 자신만의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서양의 스마일리 심벌과 한국의 청자 공예품을 조합해 타투를 새기기도 하고, 참이슬 오리지널 소주병을 사진처럼 선명히 새겨 넣는 작업은 위트가 넘친다.
심장 근처에 새긴 타투
제도적 억압과 ‘타투=폭력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경직된 분위기 때문인지 그는 “여전히 한국 사회에선 편견이 많이 남아 있는 건 사실”이라고 한다. 다만 요즘 찾아오는 엠제트(MZ)세대나 젊은층을 중심으로 “하나의 문화로 봐주는 사람이 많아졌고, 타투이스트들의 크리에이티브(창의성)를 굉장히 중요하게 보는 것 같다”며 경계가 조금씩 허물어져 가는 것을 느낀다.
한국에서 타투가 법과 제도의 올가미를 벗고 자유를 얻으면 타투를 바라보는 시선이 좀 달라질까. “그렇게 되면 외국처럼 하나의 문화로 정착할 수 있겠죠. 누군가에게는 흉터를 커버업해서 자신감을 심어줄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소중한 추억을 새겨줄 수도 있어요.” 폴릭이 말한 대로 오늘날의 타투는 상대방에게 위화감을 주려는 문양이 아닌 자기만의 의미를 담은 크고 작은 표지다. 타투이스트가 타투와 아티스트(예술가)의 합성어이듯 몸에 기록하는 작은 예술 작품이기도 하다. 이 시대의 예술가이자 어떤 면에선 치유자이기도 한 셈.
“세상을 떠난 반려견을 심장 근처에 새기기도 하고요, 망친 타투를 커버업한 뒤 펑펑 운 손님도 있었어요. 그동안 엄마한테 미안했는데, 미안한 마음이 덜어졌고 스스로 자신감도 생겼다고요.” 그런 손님들과 교류하다 보면 성실한 생활인을 넘어 직업인으로서의 책임감을 느낀다. “예전엔 이거 작업하면 내가 얼마 벌 거라고만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이제는 내가 뭐라고 이분들이 나한테 타투를 받고 (몸에) 평생 남는 걸 이렇게 하실까, 하는 생각에 책임감을 느껴요. 나 진짜 최선을 다할 거고, 진짜 멋있는 거 새겨줄게, 우리 서로 합의점을 찾아서 멋있는 작품 같이 만들어보자, 그런 거요.”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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