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대명' 이재명이 출마 선언 늦추는 진짜 이유는 [정치쫌!]
李 본인은 여전히 '고심모드' 묵언수행 중
'전략적 판단 따른 의도적 지연 전술' 분석도
어대명 대세론 속 "급할 게 없다" 판단한 듯
숙고의 시간 최대한 늘리며 패배 책임론 희석
尹지지율 하락세..강한야당·대항마 부각 효과
후보자 등록 임박한 마지막 시점 출마 선언할듯
[헤럴드경제=배두헌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8·28 전당대회 당권 도전은 당 내에서 이미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이 의원은 아직 묵묵부답이다. 전당대회 후보자 등록 시점(17~18일)이 임박하고 있지만 당권도전과 관련해선 기나긴 ‘묵언수행’을 이어가는 모습이다.
공식 출마 선언 일정도 잡히지 않았고, 출마 결심을 굳혀가고 있다는 언급조차 없다. 이 의원 측은 “아직 고심 중”이라는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보다 못한 비명(비이재명)계에선 “출마를 할 거면 빨리 선언을 하고 경쟁하라”는 요구가 쏟아진다. 이 의원의 출마 선언이 늦어지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정치권에서는 ‘전략적 판단에 따른 의도된 지연 전술’이 깔려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친명’ 우원식 불출마, 정청래는 최고위원 선회…李 등판 임박
지난 8일 국회에서 당 대표 출마를 공식 선언한 재선 박주민 의원은 ‘이 의원이 출마 여부를 빨리 밝혀야 한다는 요구가 쏟아진다’는 기자들의 질문에 “어제도 (이 의원을) 잠깐 만나 뵀는데 고심하고 계시다고 말씀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의원의 당권도전 고심은 한 달 넘게 이어지고 있다. 당 안팎에서 모두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인데도 말을 아낀다. 지난달 30일엔 이 의원이 출마 결심을 굳혔다는 한 언론 보도가 나오자 이 의원 측은 기자들에게 “사실이 아니다”라고 즉각 공지했다. “이 의원은 대선과 지방선거 이후 당의 나아갈 방향 등에 대해 여러 계층의 다양한 의견을 듣고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후보군 윤곽이 뚜렷해지고, 전당대회 룰 세팅까지 마무리된 만큼 결심이 임박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박주민 의원은 “(이 의원이) 당의 미래와 함께 어떤 결정을 내릴 지 고심하고 있고 조만간 결정하겠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친명(친이재명)계 당권 주자들이 불출마 등 교통정리 수순을 밟았다는 점도 이 의원 출마가 기정사실이라는 관측에 힘을 실었다. 우 의원은 지난 7일 페이스북에 “이제 이재명 의원의 전당대회 출마가 거의 기정사실이 되고 있다. 제가 선택해 이재명 대선후보 경선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던 입장에서 이 의원과 전당대회에서 경쟁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 전날엔 정청래 의원이 “이재명 의원이 당 대표에 도전하면 저는 당원 대표 최고위원에 도전하겠다”며 당 대표 출마 의사를 번복하고 최고위원 출마로 선회했다. 정 의원은 ‘대선·지선 이재명 책임론’에 대해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며 방어막을 쳤고, “지금 민주당은 당 대표로 저 정청래보다는 이재명을 더 원하고 더 필요로 하는 것 같다”며 사실상 이 의원에게 ‘레드카펫’을 깔아주기도 했다.
▶설훈 “간보기 정치 그만”…강병원 “108번뇌 아니라 108만 번뇌”
6·1 지방선거 참패 직후 이 의원의 전대 불출마를 촉구해온 친문 진영은 답답하다. 친문 핵심 전해철·홍영표 의원이 잇따라 불출마를 선언하며 압박했지만 이 의원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은 듯 보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이 의원을 향해 “나올 거면 빨리 나오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상대가 있어야 싸우는데, 이 의원이 링에 오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 의원이 출마하면 나도 출마하겠다’고 밝혀온 친이낙연계 5선 중진 설훈 의원은 지난 8일 페이스북에 “이 의원이 계산하는 출마 선언 타이밍까지 우리 당은 얼마나 더 분열하고 아파해야 하느냐”며 “이재명 의원의 출마 여부만이 전당대회의 화두로 전락해버렸고, 전당대회의 진정성은 없어졌다. 출마 선언을 한 후보들의 비전과 정책 이슈도 실종됐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많은 사람들의 만류와 염려에도 불구하고 출마를 결심했다면, 하루빨리 출마를 선언하시고 국민과 당원을 설득하시라”며 “더 이상 호위병들 뒤에 숨어 눈치 보는 ‘간보기 정치’는 그만하시라”고 비판했다.
비명계인 초선 장철민 의원도 지난 6일 페이스북에서 “전당대회가 합리적 토론보다 소모적 논쟁이 되어가는 것 같다”며 “이재명 의원님이 하루라도 빨리 출전하셔서 후보들 사이의 토론을 만들고, 당의 집단 지성이 작동하는 계기가 마련되면 좋겠다”고 빠른 입장 발표를 촉구했다.
공식 출마 선언을 하고 이 의원을 기다리는 도전자들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97그룹(1990년대 학번, 1970년대생)’ 중 가장 먼저 출사표를 던진 재선 강병원 의원은 지난 4일 MBC라디오에서 “(이 의원이) 108번뇌를 한다고 하는데 108번뇌를 이미 넘어서 108만 번뇌를 하는 것 아닌가 싶다”며 “더 이상 답을 늦추지 마시라. 지도자로서 빨리 국민 요구에 답할 때”라고 직격했다.
▶대세론에 급할 것 없는 李…시간 지날수록 책임론 희석·尹대통령 대항마 부각 효과도
반면, 이재명 의원 입장에서는 급할 게 없다. 원내에서는 불출마를 압박하는 목소리가 상당하지만, 열성 당원과 지지자들 사이 ‘어대명(어차피 대표는 이재명)’이란 말이 회자될 만큼 대세론이 굳건하기 때문이다. 단지 당 대표가 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최대한 상처 없이 압승하는 방법을 택해야 한다는 판단이 기조에 깔려있는 이유다.
실제로 출마 선언을 늦추면서 얻고 있는 실리(實利)도 상당하다.
일단 ‘전당대회 룰 전쟁’이 사실상 친명계의 완승으로 끝난 것을 확인한 만큼 한결 여유롭게 결단을 내릴 수 있게 됐다. 전당대회준비위원회는 지난 8일 친명계로부터 ‘당 대표 힘 빼기’라는 반발에 부딪혔던 최고위원 권한 강화 방안을 추진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시간이 흐를수록 대선·지선 패배 책임론 등 과거 이슈가 희석될 수 있다는 점도 이 의원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숙고와 침묵의 시간’이 길어지면서 정치권과 언론의 이슈·관심사가 전환되고, 이를 통해 이 의원에게 씌워진 패배 책임론은 조금씩 ‘먼 일’이 되고, 옅어지는 것이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 취임 두 달 만에 인사(人事) 문제와 ‘비선 논란’ 등으로 국정수행 지지율이 크게 하락하며 ‘데드크로스(부정 평가가 긍정 평가를 앞서는 것)’ 현상이 나타난 것도 이 의원으로서는 ‘인내의 효과’라고도 볼 수 있다.
지선 이후 친문진영뿐 아니라 비주류를 포함한 비명계 전체로부터 ‘책임론 융단폭격’을 고스란히 맞을 때 정면승부를 피했더니, 이제는 표적이 자신이 아닌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으로 상당 부분 옮겨가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윤 정부의 난맥상이 계속될수록 민주당 전당대회의 초점도 ‘선거 패배 책임론’ 등 과거 이슈보다는, ‘윤 대통령과 집권여당을 견제하는 강한 야당을 누가 만들 수 있느냐’로 상당 부분 옮겨갈 가능성이 높다. 윤 대통령의 대선 경쟁 상대로서 대척점에 섰던 ‘이재명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상승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셈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이 의원이 끝까지 고심하는 모습을 보여주다가 다음 주 후보자 등록이 임박한 마지막 시점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출마 선언을 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며 “대세 후보인 만큼 미리부터 링에 올라 경쟁자들로부터 공격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판단 등도 작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badhone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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