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당하고 있어요"..50분만에 그놈 잡은 경찰, 예상이 맞았다[베테랑]

김도균 기자 2022. 7. 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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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베테랑] 한 번 걸리면 끝까지 간다. 한국에서 한 해 검거되는 범죄 사건은 134만건(2019년 기준). 사라진 범죄자를 잡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이 시대의 진정한 경찰 베테랑을 만났다.

7일 오후 전북 군산경찰서 서해지구대에서 근무 중인 추인재 경위(45)의 모습. /사진=추인재 경위 제공


지난달 18일 오후 3시40분 전북 군산경찰서 서해지구대 순찰4팀에는 '코드제로'가 떨어졌다. 코드제로는 강력범죄 현행범이 발생했다는 신고로 경찰 출동시 최고 대응단계를 의미한다.

9일 머니투데이가 만난 서해지구대 순찰4팀 소속 추인재 경위(45)는 최초 신고자의 목소리를 선명하게 기억한다. 60대 남성 신고자는 떨리는 목소리로 "어머니가 겁탈당하고 있어요"라며 112에 신고 전화를 냈다. 신고자가 중증 치매를 앓고 있는 어머니 집에 설치해놓은 홈CCTV에서 낯선 남성이 어머니를 성폭행하고 있는 모습이 찍힌 것이다.

추 경위는 범행이 벌어지고 있는 아파트로 향하는 5분여 동안 먼저 신고자로부터 받은 CCTV 영상을 통해 인상착의를 확인했다. 검은색 트레이닝복 차림, 최소 50대 이상, 안경 미착용.

짧은 시간 수없이 되뇌였다. 혹시라도 출동중에 마주칠 수 있으니 놓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이윽고 추 경위는 생각했다. "오늘 잡을 수 있다. 잡아야 한다." 혹시 모를 추가 범행을 막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잡아내겠다는 각오였다.

"범인은 이 아파트에 있다" 15년차 베테랑의 감
8일 오후 112신고자를 응대중인 전북 군산경찰서 서해지구대 소속 추인재 경위(45·가운데)의 모습. /사진=추인재 경위 제공

추 경위를 비롯한 순찰4팀 소속 경찰관 6명이 피해자의 집인 군산시 한 아파트 14층에 도착했을 때 피의자는 범행을 마치고 자리를 뜬 상태였다. 홈CCTV에는 피의자가 태연히 피해자의 집을 나서는 모습이 찍혔지만 비슷한 시각 피의자가 14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탄 모습은 없었다.

추 경위는 '범인은 13층에서 15층 사이에 산다'고 판단했다. 태연하게 범행 현장을 뜨는 피의자의 모습에 주목했다. 치매노인을 상대로 범죄를 저지른 범인은 추적을 두려워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절대 잡히지 않을 거란 확신이 보였다.

그렇다면 자신의 행적을 가리기 위해 CCTV가 없는 계단을 이용할 이유도 없는데, 엘리베이터도 이용하지 않았다는 것은 평소에도 계단으로 오르내릴 수 있는 범위 내에 산다는 의미라고 추론했다.

추 경위의 감은 적중했다. 순찰4팀이 아파트 CCTV를 확인한 결과 사건 발생 2시간여 전인 오후 1시쯤 피의자와 같은 인상착의를 한 남성이 해당 아파트 15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와 건물을 나서는 모습이 포착됐다. 이에 추 경위는 30여 세대가 사는 해당 아파트 15층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절반쯤 탐문을 마쳤을 때 15층 한 주택에서 검은색 트레이닝복 차림의 A씨(68)를 발견했다. 범인이었다. 하지만 이 피의자는 자신의 범행이 밝혀질 거란 사실을 몰랐다. 범행을 부인하면서도 순찰4팀의 임의동행 요구에 순순히 응했던 피의자는 명백한 증거인 '홈CCTV'를 들이밀자 범행을 시인했다.

범인이 검거된 시각은 사건 발생 당일인 지난달 18일 오후 4시35분. 신고부터 검거까지 단 50분만에 추격전은 막을 내렸다. A씨는 지난 7일 준강간·주거침입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피해자의 아픔에 공감하는 '진짜 경찰' 되기까지
지난해 6월 경위 승진식 당시 추인재 경위(45·가운데)의 모습. (좌)고민석 당시 전북 군산경찰서 서해지구대장. (우)최홍범 당시 군산경찰서장. /사진=추인재 경위 제공

2007년 만 30세 나이로 순경으로 입직한 추 경위는 올해로 경찰 생활 15년차에 접어들었다. 30세라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순경으로 입직했다.

추 경위는 첫 정식 발령지였던 시흥경찰서 형사과 강력팀 시절을 생각하면 후회가 남는다고 한다. 2009년 초가을쯤 추 경위(당시 순경)는 이곳에서 첫 살인사건을 마주했다. 경기도 시흥시 시흥공단 안에 위치한 작은 공장 3층에서 목 부위에 상처를 입은 변사체가 발견됐다. 공장 안 숙소에서 발견된 50대 중국동포 남성 피해자 주변에는 혈흔이 낭자했다.

추 경위는 흥건한 혈흔 사이에서 한 사람의 것으로 보이는 발자국을 발견했다. 발자국을 따라갔다. 발자국의 주인은 1층으로 내려갔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다시 계단을 올랐다. 2층에서 3층 사이에서 발자국은 끊겼다.

3층을 수색한 끝에 피해자가 발견된 숙소 한켠에 놓인 장롱 안에 몸을 숨긴 피의자를 발견했다. 50대 한국인 남성이었던 피의자는 평소 피해자와 형·동생으로 부를 정도로 친한 사이였다. 공장 안 숙소에서 함께 생활할 정도로 각별했다. 하지만 함께 술을 마시던 중 사소한 다툼 끝에 분에 못 이긴 피의자는 범행을 저지르고 말았다.

추 경위는 당시만 해도 고된 형사 생활이 버거웠다고 한다. 한 달 내내 집에도 못 들어가고 범인을 쫓던 생활을 반복하는 게 힘들기만 했다. 결국 추 경위는 2년을 못 채우고 형사과를 떠나고 말았다.

이후 종로경찰서 여성청소년과 등을 거치면서 추 경위는 베테랑 경찰로 거듭났다. 숱한 피해자를 만나면서 그들의 아픔에 공감하게 됐다. 여성청소년과에서 마주친 성범죄 피해자들은 특히 그를 안타깝게 했다.

추 경위는 "성범죄는 피해자에게 평생이 가도 아물지 못하는 상처를 남긴다"며 "경찰로서 범죄를 막지 못해 죄송한 마음 뿐"이라고 했다.

그래서 추 경위는 다시 수사부서로 돌아가고 싶다고 한다. 추 경위는 "젊었을 때 형사 생활했을 때는 힘들기만 했는데 이제는 왜 그렇게 일해야 되는지 알겠다"고 말한다. 추 경위는 "범죄를 예방하고 이미 발생한 범죄의 범인을 잡는 것은 경찰로서 해야 될 당연한 일"이라며 "피해자의 피해 회복을 돕기 위해 한 명의 범인이라도 놓치지 말라고 국민의 세금으로 내 월급을 주는 것 아니겠냐"고 했다.

추 경위는 지난달 발생한 치매 노인 준강간 사건 역시 공치사 할 일이 아니라고 손사레를 친다. 추 경위는 "조금 더 빨리 가서 피해자가 피해를 입기 전에 잡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안타까움뿐"이라며 "앞으로도 당연히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하는 경찰로 남고 싶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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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균 기자 dkkim@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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