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로 미래로] 마지막 유품까지.."끝까지 책임진다"

KBS 2022. 7. 9.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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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강원도 철원의 백마고지와 화살머리고지는 6.25 전쟁 때 전투가 치열했고, 그래서 전사자도 많았는데요.

그러다 보니 6·25전쟁의 전사자 유해발굴 작업도 이 두 곳을 중심으로 집중적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네, 유해발굴단이 이곳에서 찾아낸 전사자들의 각종 유품들을 국립문화재연구원에 보내 보존처리 작업을 한다고 하는데요.

이하영 리포터, 이 현장에 다녀오셨다고요?

[답변]

네, 6.25 전쟁 전사자 유품들이 다양했는데요.

총이며 야전삽, 그리고 전사자들이 썼던 숟가락까지 보니 가슴이 다 울컥했습니다.

[앵커]

그랬겠네요.

그런데 보존처리는 어떻게 하는지 궁금도 해요.

[답변]

네, 유품의 형태를 과학적으로 조사하고 부식을 최소화하는 과정이 단계별로 있었는데요.

유품 한 점을 보존처리하는 데 6개월 정도가 걸리는 세심한 작업이라고 합니다.

이런 작업과정, 함께 확인해보실까요?

[리포트]

총알이 뚫고 지나간 흔적이 있는 철모.

겉에 묻은 흙과 이물질을 제거하는 보존 처리 작업이 한창입니다.

휘어진 칼은 컴퓨터 단층 촬영을 위해 조심스레 옮기는데요.

["이렇게 고정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CT를 찍으려면 이걸 수직으로 세워야 하는데 그러려면 유물이 앞으로 쏟아지면서 손상을 입을 수 있기 때문에..."]

훼손된 문화재들에 새 숨결을 불어넣어 ‘문화재 종합병원’이라고 불리는 이곳, 국립문화재연구원 산하 문화재보존과학센터에서 6·25전쟁 전사자들의 유품 보존 작업도 함께 맡고 있습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역시 유품의 보존처리 작업이 시작됐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으면 하는 마음인데요. 과연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는지 함께 보실까요.

가장 먼저 유품에 금이 간 곳은 없는지, 부식에 약해진 부분은 없는지, 엑스레이를 찍어 확인하는데요.

[이재성/문화재보존과학센터 학예연구사 : "(아랫부분은 혹시 총탄 자국인가요?) 아닙니다. 총탄 자국은 아니고 아마도 당시에 깨진 부분이고요. 총탄 자국은 왼쪽에 보시는 것처럼 이렇게 한쪽으로 총알이 지나간 그런 흔적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형태 확인을 마치면 곳곳에 녹은 부식물을 제거합니다.

이 숟가락 표면엔 무언가에 날카롭게 패인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이재성/문화재보존과학센터 학예연구사 : "본인을 알 수 있는 표시를 남겼다는 것도 추정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부분을 최대한 남기기 위한 보존 처리를 하고 있습니다."]

표면이 손상되지 않도록 보호해주는 안정화와 강화 처리를 하고, 부러지거나 깨진 부분까지 접합해주면 모든 보존 처리 과정이 끝나게 됩니다.

그동안 유해 발굴 시 나오는 유품들은 국방부에서 자체적으로 보존해왔지만, 발굴 지역이 넓어지고 유품 양이 늘어나면서 2020년부터 국립문화재연구원과 협업을 시작했습니다.

[지성진/국립문화재연구원 연구기획과 : "저희가 3년째 (유품) 보존처리를 진행하고 있는데요. 철원 비무장지대 내에 화살머리고지 그리고 백마고지에서 발굴된 유품에 대한 보존처리를 진행하고 있고 올해까지 수량은 1330점 처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곳곳이 부서지고, 녹이 슬고, 빛이 바랜 유품들.

당시 전투 현장에서 싸우다 스러져갔던 군인들의 모습을 짐작케 합니다.

[지성진/국립문화재연구원 연구기획과 : "총기류, 철모 그 다음에 삽자루, 금속 숟가락과 포크, 이렇게 금속유물, 그리고 저기 찌그러진 수통이 있습니다."]

다양한 종류의 유품은 치열한 전투의 모습을 간직한 채 이곳 문화재보존과학센터로 오고 있습니다.

전사자들의 유품을 보존 처리 한다는 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지역전투로는 전세계 역사상 유래가 없을 정도로 치열했다는 백마고지 전투.

1952년, 열흘간 벌어진 이 전투에서 27만 5천여 발의 포탄이 날아들었고, 하얀 재와 흙더미만 남겨진 모습이 마치 쓰러진 백마 같다 해서 이름 붙여졌는데요.

[김현우/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발굴1팀장 : "보시면 유품이 당시 사용했던 만년필, 그리고 숟가락, 국군이 사용했던 군장 고리, 여러 가지 헬멧까지 판단했을 때 아군, 즉 국군으로 추정하고 있는 유해가 되겠습니다."]

뒤이어 휴전을 앞둔 1953년엔 화살머리고지에서 국군과 중공군 사이에 2주간 치열한 접전이 벌어졌습니다.

이 유품들을 들여다보면 당시 전쟁이 얼마나 참혹했는지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데요.

전사자가 마지막까지 몸에 지니고 있던 물건이라, 하나하나 빠트림 없이 보존하고 있습니다.

[이재성/문화재보존과학센터 학예연구사 : "故 배석래 님 같은 경우는 여러 종류의 유품들이 있었고요. 그중에 대검, 파이프, 나무로 된 파이프, 그리고 군장 고리, 플라스틱 숟가락이 있었습니다."]

故 송해경 이등중사는 철모에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남아 있었는데요.

[이재성/문화재보존과학센터 학예연구사 : "철모에 보시면 부대 2사단 마크가 그려져 있습니다. 뒤쪽엔 계급장도 그려져 있고요. 그래서 이런 걸 최대한 보존처리 해서, 최대한 부대마크와 계급장이 지워지지 않도록 그렇게 저희가 보존처리 했고요."]

가장 많은 유품을 남겼다는 송 중사의 마지막 순간을 짐작할 수 있는 건 총알이 관통한 탄흔입니다.

[이재성/문화재보존과학센터 학예연구사 : "송해경 님께서 가지고 계시던 수통인데요. 총탄 탄흔이 두 곳이 있는데 보시면 관통한 것을 볼 수 있고요. 그런 걸 봤을 땐 총알 한 발이 관통했다 이런 걸 볼 수 있습니다."]

휴전을 보름 앞두고 전사했다는 故 임병호 일등중사의 수통을 보곤 마음이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재성/문화재보존과학센터 학예연구사 : "수통 같은 경우는 총탄 흔적이 9발 정도 있습니다. 9발을 유추했을 때 최소한 4발 정도가 관통했을 것이라고 추정되고요."]

이런 유품 보존 작업을 통해 전사자의 신원을 확인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이재성/문화재보존과학센터 학예연구사 : "본인만이 알 수 있는 표시를 해 논다든지, 본인의 이름을 각인해 논다든지 이런 걸 우리가 보존처리와 과학적인 조사를 통해 찾을 수 있고요. 이렇게 찾은 것들은 이분이 누군지를 다시 찾게 하는 단서를 제공하게 됩니다."]

신원확인이 된 유품인 경우 유족에게 전달하고, 가족을 찾지 못한 유품은 국방부 유해발굴단에서 보관하게 됩니다.

[이재성/문화재보존과학센터 학예연구사 : "국가가 끝까지 책임을 지고 (신원을) 찾아야 되죠. 왜냐하면 70여 년 전에 우리나라를 위해서 피를 흘리고 돌아가신 분들이기 때문에 저희가 후손으로서 이분들의 피를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선 이분들의 신원을 최대한 찾아서 이분들의 명예도 회복 시켜주는 것이 우리 후손들의 역할이라 생각합니다."]

참혹했던 그때의 전쟁은 끝이 났지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남아 있습니다.

돌아가신 이의 흔적이 남아 있는 유품들을 잘 보존하고 가족을 하루빨리 찾아주는 건데요.

그래서 그 아픔을 아주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봅니다.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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