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 "버터의 기름진 맛과 간장의 조화는 무척 훌륭하다"

한겨레 2022. 7. 9.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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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 커버스토리][커버스토리] 프리미엄 버터 각축전
한 스푼 더해 요리 빛내는 존재..대중성 짙어진 고급 식재료
깊고 부드러운 풍미 기본, 브랜드마다 섬세하게 다른 맛 재미
인기 힘입어 '버터 위크' 행사에 들기름 버터 등 이색 제품도
다양한 프리미엄 버터들. 스튜디오어댑터 강현욱

빵에 발라 먹는 식재료 이상도 이하도 아니던 그 옛날의 버터는 잊자.

지금 식품업계는 프리미엄 버터의 격전지라고 봐도 무방하다. 제과·제빵에서 주로 사용하는 버터를 일반 가정집에서 사 먹고, ‘호텔 조식’으로 뭉뚱그려 불리던 서양식 조식을 우리네 가정식 밥상으로 차려 먹는 요즘이다. ‘버터계의 샤넬’, ‘버터계의 에르메스’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프리미엄 버터들이 각축을 벌이고 있다.

해마다 상승하는 버터 판매량

지인들 사이에서 자타공인 빵 마니아이자 ‘빵순이’로 불리는 직장인 김희연(32)씨의 최근 취미는 인터넷으로 새로운 식재료를 구매하는 것. 시간이 날 때마다 ‘마켓컬리’, ‘에스에스지(SSG)닷컴’ 등 온라인 식재료 구매 플랫폼을 살펴보고 새벽배송으로 구매하는 것이 그의 낙이다. 이런 그가 최근 빠진 식재료 중 하나가 바로 버터다. 프랑스, 미국은 물론이고 인도와 독일, 영국 등 전세계의 프리미엄 버터를 친구들과 함께 구매해서 주말에 비교 시식하기도 했다.

김씨뿐 아니다. 다양한 버터를 ‘내돈내산’(자기 돈을 내고 직접 사서 쓰는 행위) 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농림축산식품부의 통계에 따르면 ‘최근 1년 동안 버터를 산 경험이 있다’는 질문에 응답한 소비자의 비율이 2018년 64.5%에서 2020년에는 77.4%까지 12.9%포인트 늘었다. 매년 네이버가 발표하는 광고 연관 키워드 검색 통계를 살펴봐도, 버터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18년에는 땅콩버터, 버터쿠키, 허니버터칩같이 버터가 들어간 음식을 검색한 데 비해 2022년에는 앵커 버터, 프리미엄 버터, 이즈니(이지니) 버터 등 특정 버터명이나 버터 자체에 대한 검색어가 많아졌다. 2021년 마켓컬리의 버터 판매량은 2020년 대비 무려 44%나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단순한 현상을 넘어 대중적인 소비로 이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프랑스의 프리미엄 버터들. 위부터 엘앤비르, 바라트 크레미에, 르갈 브르타뉴, 에쉬레. 스튜디오어댑터 강현욱

우리는 버터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보통은 우유 지방을 굳혀 만든, 서양의 오랜 식재료라는 것 빼고는 잘 모른다. 조금 어렵게 쓰면, 버터는 우유 지방을 원심 분리해 응고시킨 고체형 유제품으로 정의된다. 우유에서 탈지한 크림만으로 만든 천연 지방인 셈이다. 버터는 유지방 함량에 따라 천연 버터와 가공 버터로, 염분 함량에 따라 가염 버터와 무염 버터로 나뉘는데, 지금 시중에서 판매되는 대부분의 프리미엄 버터는 유지방 함량 80% 이상의 순수한 형태에 가깝다. 일반적으로 80% 이상이면 버터라고 부르고, 50% 이상일 때는 가공 버터라고 부른다.

지금 국내에서 가장 ‘핫’한 버터들의 대부분은 프랑스에서 생산되는 제품들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프리미엄 버터 제조 수입사 사벤시아 프로마쥬 앤 데어리 장예원 마케팅 디렉터는 “프랑스 정부에서 우수한 지역 특산품에만 부여하는 등급인 ‘AOP’ 인증을 받은 제품을 고르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편리하게 맛있는 버터를 구매하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프랑스 프리미엄 버터 가운데 유명한 제품으로는 이즈니, 에쉬레(에시레), 레스큐어(레스퀴르), 라 콩비에트 등이 있다. 와인처럼 생산자에 따라 미묘하게 다른 맛을 내는 점이 버터 마니아들을 사로잡는다. 국내 소개된 프리미엄 버터의 원조 격인 이지니는 크림처럼 부드럽고, 에시레는 치즈처럼 깊은 맛을 낸다. 최근 인스타그램 등 에스엔에스(SNS)를 통해 인기를 끌었던 라 콩비에트는 사탕처럼 개별 포장해 둔 모양이 눈길을 끄는데, 전통 제조 방식을 살려 살균 처리하지 않은 우유로 만들어 유통기한이 짧은 편이지만 깊은 풍미에 인기가 많다. 레스퀴르는 1884년부터 생산된 전통이 깃든 제품으로 부드럽고 깔끔한 맛이 특징이다. 레스퀴르는 국내에서 높아져가는 버터 인기에 힘입어 올해 처음으로 서울 시내 5개 레스토랑과 협업해 ‘레스큐어 버터위크’(7월13~20일)도 기획했다. 미슐랭 프렌치 레스토랑부터 와인바까지 다양한 공간에서 버터를 활용한 요리를 내놓는다.

간장과 좋은 조합, 동양 음식과도 어울려

뉴질랜드, 미국, 이탈리아, 인도 등에서도 다양한 제품이 생산된다. 고급 식재료들을 모아둔 백화점 식품관의 버터 코너만 둘러봐도 10~15종의 버터가 존재한다. 특히 인도를 원산지로 하는 ‘기 버터’는 미식가 사이에서는 ‘꼭 먹어봐야 할 버터’로 통한다. 기 버터는 다른 버터에 비해 좀 더 온전한 기름 덩어리에 가깝다. 무염 버터를 끓여 수분까지 모두 제거해 순수한 유지만 남긴 형태다. 이 과정에서 우유에 들어 있는 유청, 카세인 등 성분의 비율이 극단적으로 낮아져 유당불내증이 있는 사람도 편하게 섭취할 수 있다. 다른 프리미엄 버터보다 비교적 가격이 낮고, 일반 버터보다 발열점이 높아 잘 타지 않기 때문에 식용유 대신 활용할 수도 있다. 스테이크를 굽거나 각종 볶음 요리에 쓰면 풍미가 훨씬 좋아진다. 미국의 요리사이자 저널리스트인 마크 쿨란스키가 쓴 <마크 쿨란스키의 더 레시피>에 따르면 기 버터는 인도와 모로코, 스리랑카에서 주로 소비된다고 한다.

베르크프라흐트사의 기 버터. 스튜디오어댑터 강현욱

이 외에도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프리미엄 버터인, 뉴질랜드의 앵커 버터는 130여년 전통의 뉴질랜드 최대 낙농업 회사에서 제조한 제품으로 다른 프리미엄 버터에 비해 가격이 비교적 저렴한 편이라 베이킹 등 버터가 많이 쓰이는 요리에 사용하기 좋다. 이탈리아의 베피노 오첼리는 우유의 고소한 맛을 그대로 살려 풍미가 좋고, 2002년 영국 <가디언>이 선정한 유럽 5대 버터 중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다.

‘시그니엘 서울’ 레스토랑 스테이의 파티시에 제레미 키틀은 “프랑스 요리에서 버터는 필수적이고 절대 대체될 수 없는 식재료”라고 강조한다. 품질 좋은 쌀과 물이 좋은 쌀밥을 만들듯, 좋은 버터와 밀가루는 프랑스 요리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는 것. 좋은 버터를 듬뿍 넣고 매일 구워내는 크루아상으로 아침 식사를, 버터의 부드러운 향을 가미한 수프와 스테이크, 생선 요리로 저녁을 즐겨 먹는다고 그는 덧붙였다.

버터를 넣은 일본식 채소 스튜. 이승은 제공

버터가 서양 요리에서 빠질 수 없는 재료라면, 동양에서는 한 스푼 더함으로써 요리를 더 빛나게 하는 존재다. 이웃 일본은 다양한 요리에 버터를 활용한다. 이승은 요리연구가에 따르면 “정통 일본 요리에서 버터를 사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일본의 소박한 가정식이나 서양 요리의 영향을 받은 경양식에서는 아주 많이 쓴다”고 설명했다. 함박스테이크(햄버그스테이크)의 데미글라스 소스라든가, 카레라이스, 고로케(크로켓)와 같이 아주 소박한 일본 식탁에서 버터는 꼭 필요한 존재다.

“버터의 기름지고 풍부한 맛과 간장의 조화는 무척 훌륭하다”는 게 이 요리연구가의 설명인데, 그래서 평범하고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음식에도 버터는 ‘한 끗’ 역할을 한다. 일본 드라마 <심야식당>에 나오는 ‘버터라이스’ 같은 요리 말이다. 갓 지은 뜨거운 밥 위에 버터 한 조각을 크게 썰어 넣고, 간장 조금을 섞어 밥을 비벼 먹는 이 소박한 음식이야말로 누군가에겐 ‘솔 푸드’(soul food)이자 디엔에이(DNA)에 박힌 추억의 맛일 것이다.

콩두점점의 들기름 버터. 콩두점점 제공

구수한 쌀밥에 들기름 버터 한 조각

전통의 식재료는 육지와 바다를 건너 색다른 모습으로 재탄생하기도 했다. 최근 국내에서는 독특한 매력을 뽐내는 이색 버터가 눈에 띈다.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있는 한식당 ‘콩두점점’은 매장에서 직접 짠 국산 들기름으로 버터를 만들었다. 한윤주 콩두점점 대표는 “전세계적으로 케이(K)푸드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생기면서, 한국만이 내세울 수 있는 식재료가 뭘지 고민하다 생각한 것이 들기름 버터”라고 설명했다.

국내산 들깨를 저온 압착해 만든 생들기름에 카카오 버터와 두유, 소금 등을 넣어 만들었다. 버터에 들어가는 모든 재료가 국산이기에 결코 가격이 저렴하지 않은데다, 때때로 바로 구매가 어려워 예약하고 기다려야 할 때가 많은데도 최근 인기가 높다. 한윤주 대표는 “쌀밥에 비벼 먹거나, 고기를 구울 때 일반 버터 대신 사용하면 은은한 들기름 향을 즐길 수 있다”며 들기름 버터 활용법을 전했다.

바야흐로 선택의 시대다. 버터 한 조각에도 이렇게나 다양한 이야기와 선택지가 있다. 무조건 프리미엄, 비싼 제품만을 고집하라는 소리가 아니다. 요리의 목적에 따라, 취향에 따라, 풍미에 따라 고를 수 있는 버터의 세계. 한번쯤은 경험해볼 만한 우아한 세계 아닌가.

해산물 버터 술찜. 라꾸쁘 제공

10분 완성, 술이 술술 해산물 버터 술찜

집에서도 버터를 활용해 레스토랑 못지않은 근사한 요리를 만들 수 있다. 빵에 바르고 밥에 비비고 고기를 굽는 빠르고 편한 길만 택하기엔 이 고소하고 녹진한 식재료가 아깝지 않은가! 서울 종로구 계동에 위치한 비스트로 겸 바 ‘라 꾸쁘’ 유재봉 셰프에게 간단하게 따라 할 수 있는 버터 요리 레시피를 물었다. 무려 레스토랑의 효자 메뉴 ‘해산물 버터 술찜’이다. 훌륭한 요리에 술이 빠질 수 없는 법, 어울리는 술도 함께 추천한다.

재료

해산물 500g(주꾸미, 대구, 바지락, 홍합 등 원하는 해산물 그 어떤 것도 상관없다. 제철 해산물이라면 모두 괜찮다), 무염 버터 25g(프랑스산 에이오피 등급 버터를 사용하면 국물의 풍미가 더욱 진해진다), 토마토 1개, 정종 또는 화이트 와인 200㎖, 닭 육수 또는 조개 육수 100㎖, 소금과 후추 약간.

조리법

1. 냄비에 버터를 녹이고 해산물을 살짝 볶는다.

2. 정종이나 화이트 와인을 붓고 뚜껑을 덮은 뒤 강불에 5분 정도 끓인다.

3. 해산물이 절반 정도 익으면 8등분한 토마토와 닭 육수(혹은 조개 육수), 소금과 후추 약간을 넣고 또다시 5분간 끓인다.

4. 오목한 접시에 담으면 완성이다. 기호에 맞게 레몬을 살짝 곁들여 먹어도 좋다.

셰프의 킥

1. 냄비는 요리 술을 부었을 때 해산물의 절반 정도 잠기는 크기를 고를 것.

2. 소금은 요리가 완성된 뒤 추가할 것. 해산물의 염도가 있기 때문에 처음부터 넣으면 지나치게 짜게 될 가능성이 있다.

3. 각기 다른 해산물이지만 되도록 크기는 비슷한 것으로 사용할 것. 하나가 너무 크면 안 익을 가능성이 높고, 지나치게 작은 크기는 오버쿡 될 가능성이 있다.

페어링

특정 나라의 요리에 그 나라의 술을 곁들이면 큰 실패가 없다. 프랑스 요리에는 프랑스 와인이 어울린다. 배혜정 요리 연구가는 “젖소를 통해 얻은 버터 특유의 고소하고 기름진 맛에는 대체로 오크통에서 숙성한 기름진 화이트 와인이 잘 어울린다”고 말했다. 특히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에서 생산하는 샤르도네 품종이 버터의 향과 맛을 더욱 단정하게 잡아준다고 덧붙였다.

백문영 객원기자 moonyoungbai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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