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영의 사회심리학]폭력과 차별에 맞서는 정확한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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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기사 헤드라인들을 보다 보면 어떤 범죄들은 마치 '해리포터의 이름을 말하면 안되는 존재 , 볼드모트'처럼 그 이름으로 부르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 때 어떤 사람들에게는 인종차별이라는 단어를 정확히 사용한 기사를 보여주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는 같은 기사에서 인종차별이라는 단어를 인종적으로 부적절한, 무신경한 같은 단어로 대체한 대안 기사를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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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기사 헤드라인들을 보다 보면 어떤 범죄들은 마치 '해리포터의 이름을 말하면 안되는 존재 , 볼드모트'처럼 그 이름으로 부르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예컨대 성폭력의 경우 아직도 몹쓸 짓이라는 이상한 표현으로 불릴 때가 많고 데이트 폭력, 가정 폭력 등의 여성혐오 범죄들도 여성혐오 범죄라 명명하지 않음으로써 문제의 본질을 가릴 때가 많다.
이러한 현상이 비단 한국에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어서 최근 몇 년 동안 미국에서도 인종차별을 칭할 때 인종차별이라는 단어 대신 '인종적으로 부적절한', '인종적으로 무신경한'같이 애둘러 말하는 표현들이 늘었다고 한다. 플로리다 대학의 심리학자 에린 웨스트게이트에 의하면 이러한 현상은 심지어 학계에서도 나타난다. 인종차별에 관한 심리학 연구들을 둘러봐도 인종차별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보다 부적절하거나 무신경하다는 식의 표현을 사용하는 경우가 증가 추세라고 한다.
폭력이나 차별이 나쁜 것은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다. 때문에 지적당하는 쪽이나 혹시 자신도 비슷한 행동을 했을지도 몰라서 찔려 하는, 찔릴 것이 많은 대다수 사람들의 기분을 보호할 필요라도 느꼈던 것일까? 예컨대 어떤 사람의 국적과 피부색을 통해 그 사람의 특성을 유추하는 행위가 바로 인종차별이라는 이야기를 듣거나 또는 이와 같은 행동이 부적절하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똑같은 행동도 후자는 귀여운 실수 같고 조금 덜 나쁜 행동인 듯한 착각을 줄 것 같긴 하다. 따라서 찔릴 것이 많은 우리들에게 전자는 다소 과격하고 나를 비난하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후자는 나를 조금 덜 나쁜 사람으로 만드는 온건함이 깔려있는 것처럼 느껴질 법 하다. 흔히 기분을 배려해준다고 하는 많은 시도들이 아마 이런 유의 죄책감 방지 시도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점에 착안해서 웨스트게이트는 사람들에게 인종차별 행위를 묘사한 기사를 보여주고 해당 행위가 얼마나 도덕적으로 잘못되었고 심각한지에 대해 물었다. 이 때 어떤 사람들에게는 인종차별이라는 단어를 정확히 사용한 기사를 보여주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는 같은 기사에서 인종차별이라는 단어를 인종적으로 부적절한, 무신경한 같은 단어로 대체한 대안 기사를 보여주었다. 그 결과 사람들은 같은 행동에 대해서도 인종차별이라는 단어가 정확히 사용 되었을 때 더 그 행동을 나쁘게 인식했고 문제의 심각성 또한 더 크게 인식한 것으로 나타났다.
말은 마음의 거울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가 하는 말이 우리의 마음을 잘 드러낸다는 뜻으로 사용되는 표현이다. 이렇게 말이라는 거울은 우리의 마음을 비춰내기도 하지만 반대로 말이 가리키는 현상이나 문제의식을 우리 마음에 투영해 넣기도 하는 모양이다. 그 형태가 어떠하든 폭력은 폭력이고 차별은 차별이라고 정확한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곧 폭력과 차별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가져올 것이다.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도록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와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미국 듀크대에서 사회심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박진영 심리학 칼럼니스트 parkjy021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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