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투스 전 앙골라 대통령 사망..향년 79세

김성진 2022. 7. 8.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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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 에두아르도 두스 산투스 전 앙골라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한 치료소에서 사망했다고 앙골라 정부가 밝혔다.

수도 루안다의 빈민가에서 자란 산투스는 일찍이 독립투쟁에 뛰어들어 앙골라가 포르투갈 식민지에서 독립한 지 4년 만에 37세 나이로 대통령이 됐다.

하지만 집권당 앙골라인민해방운동(MPLA) 소속으로 후임으로 들어선 로렌수 대통령은 부패 척결을 기치로 내세우며 산투스 전 대통령 자녀들의 부패 문제를 정조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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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골라 경제규모 10배로 키웠으나 부패로 빈곤층 혜택 못 받아
산투스 전 앙골라 대통령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요하네스버그=연합뉴스) 김성진 특파원 = 호세 에두아르도 두스 산투스 전 앙골라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한 치료소에서 사망했다고 앙골라 정부가 밝혔다. 향년 79세.

AP,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산투스 전 대통령은 숙환으로 최근 집중 치료를 받아오던 중 숨졌다.

1979년부터 앙골라를 40년 가까이 통치한 그는 2017년 퇴임 후 바르셀로나에서 주로 생활해왔다.

주앙 로렌수 앙골라 대통령은 "앙골라 국민을 매우 어려운 시기에 통치한 위대한 역사적 정치인"이라고 고인을 기리며 닷새간 국가 애도 기간을 선포하고 관공서 조기 게양을 지시했다.

수도 루안다의 빈민가에서 자란 산투스는 일찍이 독립투쟁에 뛰어들어 앙골라가 포르투갈 식민지에서 독립한 지 4년 만에 37세 나이로 대통령이 됐다. 냉전 시기 옛소련의 지원을 등에 업은 그는 미국의 후원을 받은 앙골라인민해방운동(UNITA)과 30년 가까이 내전을 치렀다.

그는 2002년 내전에서 승리한 후 2014년까지 오일 붐에 힘입어 앙골라 경제 규모를 10배로 키웠다. 앙골라는 나이지리아 다음으로 큰 아프리카 2대 산유국이다.

그러나 원유 생산이 하루 200만 배럴에 달하고 연간 10억 달러(약 1조3천억 원) 규모의 다이아몬드를 채굴해도 국민의 대부분인 절대 빈곤층에게 그 혜택이 돌아가지 않았다.

그는 대신 가까운 장군들과 정치 라이벌들에게 부를 배분하고 충성심을 유도한 덕에 장기 집권을 했다. 앙골라는 이 때문에 2005년 국제투명성기구(TI)의 10대 최악 부패 국가 명단에 오르기도 했다.

마르크스주의 일당 체제를 유지해온 그는 2008년 총선을 실시하는 등 민주 정부 체제를 도입하면서도 대통령 간선제로 탄탄대로를 걷던 중 뜻밖에 건강상 이유로 자발적으로 물러났다.

공식적인 자리에선 부끄럼을 타지만 그는 막후에서 뛰어난 갈등 조정 능력을 보이고 자신의 경쟁자로 부상할 사람은 가차 없이 뒤로 물러나게 했다.

또 국제적 상황변화에도 민첩하게 대응해 냉전 후에는 과거 적성국이던 미국의 투자와 지지를 끌어내기도 했다.

하지만 집권당 앙골라인민해방운동(MPLA) 소속으로 후임으로 들어선 로렌수 대통령은 부패 척결을 기치로 내세우며 산투스 전 대통령 자녀들의 부패 문제를 정조준했다.앙골라 국영 석유회사 '소난골' 회장으로 활동하면서 아프리카의 최고 여성 부호가 된 딸 이사벨의 자산을 동결하고 국부 펀드를 운용해온 아들을 수감시켰다.

산투스는 생전에 자신이 전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어쩌다 대통령이 됐다면서 사적인 자리에선 자신의 진짜 소명은 수도사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sungj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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