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에너지·생필품 등 취약층 지원 확대
소고기 등 7개 '할당관세 0%'
정부가 취약계층의 에너지바우처 단가를 인상하고 기저귀·분유·생리대 등 생필품 구입 지원을 확대한다. 밥상물가 안정을 위해 수입 소·닭고기, 커피, 분유 등에도 0% 할당관세를 적용하기로 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6%까지 치솟자 ‘먹고 사는’ 생활비 부담이 커진 취약계층을 지원하겠다는 취지에서다. 그러나 정부가 ‘건전 재정’ 전환으로 허리띠 졸라매기를 선언한 상황이어서, 취약계층 지원 규모가 인색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8일 윤석열 대통령 주재로 제1차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열어 8000억원 규모의 ‘고물가 부담 경감을 위한 민생안정 방안’을 발표했다. 정부는 “거센 공급발 압력을 중심으로 엄중한 물가 여건이 계속되고 있어 취약계층 지원과 서민 생계비 부담 경감을 위해 지원 방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여름철 성수기를 맞아 수요 쪽 물가 상승 압력도 커질 것이라는 게 정부의 전망이다.
정부는 이번 대책에서 취약계층 지원을 전면에 내세웠다. 먼저 저소득층에 지원하는 에너지바우처 단가를 17만2000원에서 18만5000원으로 인상해 전기·가스 비용 부담을 경감하겠다고 밝혔다. 약 118만가구 160만명이 혜택을 볼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에너지바우처 인상은 여름 무더위가 지난 오는 10월부터 적용된다.
주거·교육급여 수급자와 차상위계층을 대상으로 정부 양곡 판매가격을 10㎏당 1만900원에서 7900원으로 연말까지 한시적으로 인하한다. 차상위 이하와 한부모 가족 대상 기저귀·분유 지원 단가도 각각 6000원, 4000원씩 인상한다. 취약계층 여성청소년(9~24세)에게 지급하는 생리대 지원비는 월 1만3000원으로 1000원 오른다. 10월부터 한부모 가족 대상 선정기준을 완화하고 다음달부터는 양육비 지원과 긴급복지 생계지원의 중복 지원을 허용한다.
■저소득층 근로지원 단가 4만원 인상…축산농가 소·돼지 도축비 지원도 늘려
저소득 노동자와 실업자에 대한 지원도 강화한다. 정부는 다음달부터 저소득층 자활근로사업 지원단가를 월 121만원으로 4만원 올린다. 저소득 노동자 대상 생활안정자금 금리는 연 1.5%에서 1.0%로 내리고 공급 규모를 1991억원에서 2241억원으로 늘리기로 했다.
급등하는 식료품 가격을 떨어뜨리기 위한 대책도 포함됐다. 정부는 수입 소·닭고기, 분유, 대파, 커피 원두, 주정 원료, 돼지고기 등 국민 체감이 큰 7개 생필품에 할당관세 0%를 적용하기로 했다. 총 3300억원 규모다. 이번 조치로 10~16%의 관세가 부과되는 호주·미국산 소고기 10만t은 무관세 수입이 가능해진다. 할당관세 적용으로 5~8%의 소매가격 인하 효과가 있을 것으로 정부는 추산했다.
20~30% 관세 부과 대상인 닭고기(8만2500t)와 분유(1만t)에도 할당관세 0%를 적용한다. 외식물가를 끌어올리는 주요 품목인 커피 원두와 소주·식초 등의 원료로 사용되는 주정 원료 역시 할당관세 혜택이 부여된다. 이미 적용 중인 수입 돼지고기의 할당관세 물량도 2만t 추가로 늘린다. 농축수산물 할인쿠폰 규모를 500억원 추가로 늘리며 1인당 1만원 한도로 최대 20%를 할인받을 수 있다.
정부는 축산농가 도축 비용 지원도 확대하기로 했다. 농가 생산비 부담을 줄이고 육류 공급을 늘려 가격을 안정화하겠다는 취지다. 11일부터 6주간 돼지고기 도축 수수료(마리당 2만원)를 지원하고 추석 성수기(8월22일∼9월8일) 3주 동안은 한우 암소(마리당 10만원)와 돼지(마리당 1만원) 도축 수수료를 지원한다. 8월부터는 농가에 저리로 융자해주는 특별사료 구매자금 상환기간을 늘려 농가의 사료비 부담을 낮추기로 했다.
취약계층 지원을 앞세운 민생안정 대책이 마련된 것은 새 정부 출범 이후 사실상 처음이다. 그간 정부의 물가대책이 대기업·보유세 감세 등 사실상 부자감세 정책이라는 비판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나원준 경북대 교수(경제학)는 “취약계층 지원이라는 방향성은 바람직하지만 지원 규모는 여전히 부족하다”며 “법인세·보유세 완화와 같은 감세정책으로 인해 복지재원 조달이 어려워져서 지원을 대폭 늘리지 못한 것”이라고 했다. 나 교수는 “고물가에 어려움을 겪는 복지 현장을 아우르기 위해서는 먼저 감세 기조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재원 마련을 위해서는 사회연대세와 같은 증세를 통해 경제적 부담을 사회적으로 나누는 방법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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