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격 사망’ 아베 前총리는...‘日부흥’ 꿈꾼 우익 상징이자 최장수 총리
퇴임한 후에도 日 정가에서 막강 영향력 과시
‘아베노믹스’ 경제부흥 노렸지만 ‘절반의 성공’
야스쿠니신사를 참배로 주변국 반발 사기도
8일 총격으로 사망한 아베 신조 전 총리는 2차 세계대전 이후 태어난 일본의 첫 총리이자 일본 우익의 상징적인 정치인이다. 2006년 9월부터 이듬해 9월까지 한 차례 집권한 뒤, 2012년 12월부터 7년 9개월간 장기 집권해 일본 역사상 최장수 총리 기록도 세웠다. 건강상 이유로 스가 요시히데 당시 관방장관에게 총리직을 물려주고 퇴임한 후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일본 보수정치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왔다.
일본의 많은 정치인들이 그렇듯 아베 전 총리도 정치 명문가 출신이다. 조부인 아베 간은 일본의 상원 격인 중의원 의원을 지냈고,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는 총리를 지냈다. 부친인 아베 신타로는 외무상을 지냈다.
아베 신조 전 총리는 세이케이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고베 제강에서 잠시 근무한 뒤 1982년 아버지의 비서로 정치에 입문했다.1991년 총리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되던 아버지 아베 신타로가 세상을 떠나자, 2년 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야마구치현에서 중의원에 당선됐다. 이후 2002년 관방장관, 2003년 자민당 간사장을 지냈다.
관방장관이던 당시에는 ‘납치의 아베’라고 불릴 정도로 북한의 일본인 납치 사건에 강경한 태도를 보여 인기를 끌었으며 덕분에 2006년 역대 최연소 총리로 취임했지만 5000만 건에 달하는 국민연금 납부 기록을 분실하는 일명 ‘사라진 연금’ 사건으로 국민적 분노를 얻으며 선거에서 참패한 데다 건강 문제까지 불거져 1년여 만에 사퇴했다.
하지만 이후 다시 자민당 총재에 오르며 2012년 총리로 화려하게 부활한 그는 2020년 지병인 궤양성 대장염 재발을 이유로 사임하기까지 1차 집권기를 포함해 총 8년 9개월간 총리로 재임하며 최장수 총리라는 역사를 썼다.
외교·안보 분야에서 아베 전 총리는 강경 매파로 분류된다. 2차 집권 이듬해인 2013년 12월26일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면서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의 강한 반발을 불렀다. 안보 관련 법을 정비해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가능하게 했다. 2015년 8월14일 일본의 침략 책임을 언급하지 않은 전후 70주년 담화를 발표했다. 과거사 사안에 대한 교과서 기술을 정부 방침과 일치시키도록 하는 정책을 펴자 일본 내에서도 비판이 일었다.
아베 정권은 2015년 12월 박근혜 정권과 한·일 외교장관 위안부 합의를 발표했으나 문재인 정부 들어 합의는 표류했다. 아베 전 총리는 당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게 사과 편지를 보내는 것은 “털끝만큼도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발언해 한국을 자극하기도 했다. 한국 대법원이 일본 기업의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배상 판결을 내리자 반발해 반도체 수출규제 조치로 보복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는 2019년 한 해에만 5차례 정상회담을 가지는 등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미국의 대중국 견제 전략으로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개념을 제안한 이도 아베 전 총리다.
아베 전 총리는 임기 동안 6번의 중의원 및 참의원 선거에서 대승을 거뒀다. 하지만 2017년 모리토모 학원에 국유지를 팔아넘기려 했다는 의혹, 2019년 11월 벚꽃을 보는 모임에 관한 스캔들, 2020년 코로나19 대처 실패 등으로 지지율은 20%대까지 떨어졌고, 결국 2020년 8월 궤양성 대장염 재발을 이유로 사의를 표명했다. 2020년 예정이었던 도쿄올림픽을 개최를 통해 ‘일본 부흥’을 선언하려 했으나 코로나19로 올림픽 개최가 1년 연기되면서 직접 올림픽을 치르지 못했다.
그는 2020년 9월 퇴임 후에도 집권 자민당 내 최고 파벌인 아베파(옛 호소다파)의 수장으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또 후임인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와 기시다 후미오 현 총리를 당선 시키는 데에도 결정적 역할을 했다. 아베 전 총리가 제시한 방위비 증액, 자위대의 반격능력 보유, 자위대의 존재를 명기한 개헌 등은 현 집권 자민당이 그대로 내세우고 있다.
2기 집권 당시에는 Δ대규모 양적완화 Δ재정지출 확대 Δ민간 투자 촉진을 골자로 하는 일명 ‘아베노믹스’ 경제정책을 앞세워 잃어버린 20년이라 불리는 장기간의 디플레이션으로부터의 탈출을 시도했다. 재정지출을 통한 유동성 확대로 경기를 회복시키는 동시에 엔화 약세를 유도해 수출과 기업 이익, 주가를 끌어올리며 이 과정에서 투자가 늘어나 임금과 소비가 증가하는 선순환 구조로 이어질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그 결과 재임 시절 달러 대비 엔화 가치가 20% 이상 절하되는 등 엔고에서 벗어나면서 수출 경쟁력이 회복되고 기업들의 수익성과 고용시장이 대폭 개선되는 성과를 얻었다. 하지만 돈 풀기에만 급급해 국가채무비율이 급증했고, 민간 투자도 크게 늘지 않았으면서 디플레이션 탈출에도 끝내 실패해 ‘절반의 성공’에 그쳤다는 의견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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