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범국가 탈피하고 보통국가 염원했던 아베, 총격에 사망

2022. 7. 8.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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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급 전범 기시 노부스케 뜻 이어받았던 아베, 결국 개헌은 이루지 못해

[이재호 기자(jh1128@pressian.com)]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일본 총리가 유세 중 총격을 받아 67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1954년 9월 21일 도쿄에서 태어난 아베 전 총리는 정치인 아버지, 할아버지 밑에서 자라며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정치에 눈을 뜨게 됐다.

일본 일간지 <마이니치 신문>의 기자였던 아베 전 총리의 아버지인 아베 신타로(安倍 晋太郎)는 후에 중의원에 당선되어 외무대신을 지냈으며 할아버지인 아베 간 역시 중의원을 역임한 바 있다.

뿐만 아니라 외할아버지는 세계 2차대전의 A급 전범이자 전후 총리를 지낸 기시 노부스케(岸信介)로, 아베 전 총리는 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다만 아베 전 총리는 정치인으로 사회의 첫 발을 내딛지는 않았다. 그는 세이케이 대학 법학부 정치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영어를 배우다가 1979년 4월 고베 제강소에 입사해 직장인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던 중 1982년 아버지였던 아베 신타로가 외무대신을 맡게 되면서 아베 전 총리는 아버지의 비서관이 되어 정치에 입문했다. 외무대신의 비서관이 되어 각국 지도자와 만남에 동석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벌였던 아베 전 총리는 1991년 아버지가 갑자기 사망하면서 선출직에 뛰어들게 된다.

그는 1993년 제40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 아버지의 지역구였던 야마구치현 제1구(당시)에 출마해 당선됐다. 이후 현재 '제4구'로 바뀐 해당 지역구에서 연속 8선에 성공하며 9선 중의원 의원에 이름을 올렸다.

이후 2000년 모리 내각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추천으로 내각관방 부장관에 취임하면서 일본 정치의 중심에 서서히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후 그는 고이즈미가 총리가 됐던 내각에서도 자리를 지켰다.

2005년 고이즈미 내각에서 관방장관을 맡은 아베는 이후 2006년 9월 20일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하며 제90대 일본 총리대신에 취임한다.

그러나 1년 후인 2007년 9월 12일 아베 총리는 건강상의 이유 및 테러특별조치법 재연장을 위한 민주당과 논의를 원활하게 진행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총리직을 갑자기 사임하며 첫 번째 총리 임기를 마무리한다.

이후 2012년 9월 다시 자민당 총재 자리에 도전해 성공했고 그해 12월 16일 제46회 중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압승하면서 민주당에 정권을 내준지 약 3년만에 다시 정권을 되찾아왔다. 이후 아베 총리는 96, 97, 98대 총리를 지내며 장기 집권 시대를 열었다.

하지만 재임 중인 2017년 모리토모 학원에 국유지를 넘기려고 했다는 의혹과 2019년 벚꽃 모임 논란 등이 나오면서 지지율이 하락했고 2020년 코로나 19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서 일본 내에서 강한 비판이 일었다. 

이에 아베 전 총리는 2020년 8월 궤양성 대장염과 관련한 건강 문제로 사임한다면서 또 한 번 건강상의 문제로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이후에는 자민당의 중의원으로 계속 임기를 이어갔고, 비록 총리는 아니지만 막후에서 정책 결정에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 지난 4월 21일 일본의 춘계예대제 첫 날을 맞아 아베 신조(가운데) 전 일본 총리가 도쿄에 위치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AFP=연합뉴스

전범국가에서 보통국가로

아베 전 총리는 집권 2기에 일본을 전범국가에서 보통국가로 탈바꿈시키기 위해 여러 조치들을 시행했다. 그는 우선 2014년 7월 헌법 해석을 각의에서 변경해 일정한 조건에서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가능토록 했다.

이후 2015년 9월 18일에는 연립여당인 자민당과 공명당이 집단 자위권 행사를 법적으로 뒷받침할 안보 관련 11개 법률의 제·개정안을 강행 처리했다. 이에 아베 전 총리의 염원이 현실화되는 듯했다.

그러나 보통국가로 가기 위한 가장 중요한 단계인 평화헌법 9조 개정은 끝내 이루지 못했다. 아베 전 총리는 기회가 될 때마다 헌법 개정을 이야기했으나 연립정부를 함께 구성하고 있는 공명당이 지속적으로 반대해왔다.

아베 전 총리가 이러한 정치적 목표를 가지게 된 데에는 그의 외할아버지이자 세계 2차대전 A급 전범인 기시 노부스케의 영향이 컸다.

기시는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계기로 복권된 뒤 1952년 4월 '자주 헌법 제정, 자주 군비 확립, 자주 외교 전개'라는 슬로건을 내건 '일본재건연맹'을 설립했다. 일본의 교전권을 금지한 평화헌법 9조를 개정하려는 아베 총리의 목표도 사실상 이와 같다.

기시는 이후 자민당에서 세와이카이(淸和會) 파벌을 형성해 일본의 완전한 독립과 군비 확충, 헌법 개정 등을 주장하기에 이른다. 아베 총리는 중의원에 당선된 이후 자연스럽게 이 파벌에 가입하면서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드는 것을 자신의 정치 인생에서 하나의 중요한 목표로 삼게 됐다.

여기에다 아베 총리는 19세기 중반 막부 시대 말기에 있었던 존황양이(尊皇攘夷) 운동(도쿠가와 막부 말기에 일어난 정치 운동으로 천황을 받들고 이민족을 물리치자는 운동)의 사상적 기반을 제공한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의 영향을 받았다.

아베 총리는 2007년 첫 임기를 종료한 뒤인 2008년 '전후 레짐에서의 탈각'을 목표로 한 '진정한 보수정책연구회'를 만들고, 그 후 이를 '창생일본'이라는 단체로 재조직, 2012년 두 번째 총리를 맡으며 정권의 기반으로 가져갔다.

아베 총리의 이같은 성향은 야스쿠니 신사와 관련한 그의 태도에서도 잘 드러난다. 아베 전 총리는 2013년 총리 집권 1주년을 맞아 세계 2차대전의 A급 전범들이 합사돼있는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해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의 거센 비판을 받았다.

이후에도 아베 총리는 계기가 있을 때마다 야스쿠니 신사에 공물을 바치는 등 2차 세계대전 참전과 동아시아 식민 지배를 부끄러운 전범의 역사가 아닌 자랑스러운 일본의 역사로 탈바꿈하기 위한 시도를 이어갔다.

그는 가장 최근인 올해 4월에는 춘계 예대제(봄 제사)를 맞아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면서 "우크라이나에서는 조국을 지키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다. 그런 용기 있는 소중한 희생 위에 나라가 지켜지고 있다. 그것도 염두에 두면서 조용히 참배했다"고 말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추진되고 있는 일본의 재무장에 대한 필요성을 우회적으로 강조하기도 했다.

이처럼 총리 퇴임 이후에도 일본 우익의 중심으로 역할을 해왔던 아베 총리가 총격이라는 충격적인 상황에서 사망함에 따라, 아베 총리가 생전에 이루려고 했던 역사 바꾸기와 평화헌법 개헌을 통한 보통국가 만들기를 더욱 가속화하자는 움직임이 일본 내에서 확산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이재호 기자(jh1128@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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