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냉전구도로 무력화된 G20..한국 외교에도 부담

유신모 기자 2022. 7. 8.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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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발리에서 8일 열린 G20 외교장관회의에 참석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이 8일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질문에 답하고 있다. 라브로프 장관은 본회의 진행 도중 미국과 서방국의 러시아 비난에 항의해 중도퇴장했다. AP연합뉴스

미·중 전략경쟁이 가열되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사회가 분열된 가운데 8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8일 열린 G20(주요20개국) 외교장관회의는 예상대로 상호 비난과 편가르기로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글로벌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G20가 기능에 한계를 드러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G20는 1990년대 신흥 경제국의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을 거치면서 G7(주요7개국)과 신흥 경제국 간의 공조를 위해 정상간 회의체로 발전했다. 중국 등 신흥국 부상으로 기존의 G7의 협력만으로는 글로벌 위기 상황에 대처할 수 없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하지만 미·중 갈등이 심화되고 우크라이나 사태로 러시아와 서방의 갈등이 고조되면서 신냉전 구도가 뚜렷해진 현재의 국제정세 앞에 세계 주요국들의 협력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을 이번 G20 장관회의가 선명하게 보여줬다.

20개국 장관들은 이번 회의에서 다자주의 강화, 식량·에너지 안보 대응 등을 논의하고 11월에 있을 G20 정상회의 의제를 조율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회의를 지배한 것은 중·러 대 미국 및 서방국의 대결 구도였다. 회의 시작 전부터 서방국들은 우크라이나 침공의 책임을 물어 러시아를 G20에서 퇴출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았으며,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의 본회의 연설 때 참석자들이 이석하는 보이콧 방안도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G7 외교장관들은 라브로프 외교장관의 회의 참석에 항의하는 뜻으로 지난 7일 환영 리셉션에 모두 불참했다. 회의 참석자들의 단체 촬영도 생략됐고 회의 결과를 담은 공동의 합의문은 처음부터 추진되지도 않았다. 미국은 공동합의문 대신 미국과 뜻을 같이하는 국가들과 함께 별도의 성명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과 러시아는 이에 맞서 7일 양자 회담을 갖고 ‘전략적 협력’을 위한 결속을 다졌다. 러시아 외교부는 “양측은 서방이 유엔(UN)을 우회해 채택한 러시아 제재를 용납할 수 없다는데 뜻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처음으로 다자외교 회의에 참석한 라브로프 장관은 결국 8일 본회의 진행 도중 미국과 서방을 비난하며 중도 퇴장했다. 라브로프 장관은 “G20 외교장관 회의에 참석한 서방 국가들이 G20의 의무를 따르지 않고 세계 경제 사안들을 다루는 걸 방해했다”고 비난했다. 라브로프 장관은 예정된 양자회담을 진행한 뒤 8일 공식 만찬에 참석하지 않은 채 출국할 것으로 알려졌다.

회의에 참석한 박진 외교부 장관은 8일 미국이 주재하는 한·미·일 3국 장관회담에 참석하는 등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에서 보여준 한국의 입장을 재확인했다. 박 장관은 8일 환영 리셉션에서 라브로프 장관과 조우해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해 한·러 관계가 부정적인 영향을 받고 있음을 지적하고 러시아에 진출한 한국 교민과 기업들의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해달라고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G20의 분열상에 대해 다자외교에 정통한 외교소식통은 “G20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야할 시기에 구조적 한계를 드러냈다”면서 “G20의 무력화로 식량위기와 경기침체 등에 대응해 주요국들이 협력하는 것은 더욱 어려워졌고 한국에게도 외교적 부담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신모 기자 sim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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