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원의사 10명 중 8명 "비대면 진료 전면 제도화 반대"
73%는 비대면 진료에 부정적..지난해 10월 조사보다 비대면진료 인식 악화
동네 병·의원을 운영하는 개원의사 10명 중 8명 꼴로 비대면 진료의 전면 제도화를 반대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코로나19 당시 재택치료에 적극 참여한 4개 진료과들은 오히려 비대면 진료에 대한 인식이 악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만약 허용하더라도 코로나19와 같은 국가 위기 상황으로 제한하거나 재진 환자 대상으로만 시행한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8일 의료계에 따르면 내과·소아청소년과·이비인후과·가정의학과 등 코로나19 유행 당시 재택치료에 참여한 내과계 4개 진료과의 전국 개원의사를 상대로 비대면 진료 관련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이 같이 나타났다. 지난 6월 14일~6월 28일 2주간 모바일 응답식으로 진행된 설문조사에는 개원의사 총 2588명이 참여했다.
4개과 의사회가 공개한 대회원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72.7%(1881명)는 한시적으로 허용된 전화상담에 참여하고, 그 중 82.8%(1488명)는 전화상담 후 처방전까지 발행해 코로나19 유행 당시 적극적으로 비대면 진료에 참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대면진료와 비교해 충분한 진료가 이뤄졌다는 응답은 8.0%(152명)에 그쳤다.
비대면 진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나타낸 응답은 72.3%(1863명)에 달했다. 세부 응답을 살펴보면 '감염병 등 불가피한 상황에서 필요성은 인정되지만 시기상조'라는 응답이 54.4%(1403명)로 가장 많았고, '진료의 기본 개념이 파괴될 수 있어 절대 안된다'는 의견도 18.0%(465명)나 됐다.
조사 대상이 동일하지 않기 때문에 직접 비교는 어렵지만, 내과의사회가 지난해 10월 1079명의 회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비대면 진료에 대한 부정적 견해가 60%였던 것과 비교하면 인식이 더욱 악화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전화상담을 포함한 비대면 진료 시 가장 우려되는 점을 물었을 때 응답자의 94.4%(2443명)는 환자를 충분히 진찰하지 못해 오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꼽았다. 또한 69.2%(1791명)는 비대면 진료 전문의원 출현을, 67.0%(1733명)는 원격의료 관련 플랫폼 업체의 난립을 우려했다. 현재와 같이 플랫폼 업체 주도의 비대면 진료가 정착되면 비대면 진료 전문의원이 등장하고 관련 플랫폼 간 경쟁이 늘며 불필요한 의료수요가 증가해 의료영리화 수순을 밟을 것이란 관측이다. 대형병원으로의 환자쏠림 현상이 심화할 것으로 우려된다는 응답도 59.1%(1528명)이나 됐다.
비대면 진료가 도입됐을 때 허용해야 할 진료 범위에 대해서는 감염질환 대유행 등 국가위기 상황에 한시적으로 해야 한다는 응답이 77.9%(2015명)를 차지했다. 도서벽지 같은 의료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에 한정해야 한다는 응답이 62.4%(1614명)였고, 장애인이나 거동 불편자에 대해서만 해야 한다는 응답은 51.4%(1330명)로 나타났다.
특히 비대면 진료의 대상은 의사가 환자의 상태를 파악할 수 있는 재진 환자로 국한해야 한다는 의견이 두드러졌다. 초진, 재진 중 어떤 경우에 비대면 진료가 가능하다고 보는지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90.2%(2324명)가 '재진 환자만 가능해야 한다'는 의견을 낸 것이다. 비대면 진료를 시행하는 주체에 대해서는 '1차 의료기관(의원급)으로 한정돼야 한다'는 응답이 56.6%(1460명), '1차 의료기관에서 주로 시행하되 특수한 경우 2차 이상 병원에서도 가능해야 한다'는 응답이 31.7%(817명)였다. '모든 의료기관에서 제한없이 이뤄져야 한다'는 응답은 7.8%(202명)에 그쳤다.
이들 단체는 "비대면 진료가 허용될 경우 1차 의료기관에서 충분히 진료할 수 있는 환자들이 상급종합병원으로 몰리면서 의료전달체계가 붕괴될 것을 우려하는 이들이 그 만큼 많다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20~30여 곳으로 불어난 플랫폼 업체들에 대해서도 부정적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응답자의 87.5%(2262명)는 일부 플랫폼 업체들이 시행 중인 비대면 진료와 건강상담, 의약품 배송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나타냈다. 그 중 79.4%(1811명)는 플랫폼 업체와 연계된 전문의료기관의 환자 쏠림현상을 경계했고, 플랫폼 업체 간 경쟁 심화로 환자 건강보다 이익을 추구할 수 있다는 의견도 77%(1770명)나 나왔다. 또한69.7(1589명)%는 초진 환자까지 비대면 진료 대상으로 포함될 경우 불충분한 진찰, 의료쇼핑, 약물남용 등으로 국민 건강에 위해를 초래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향후 비대면 진료 입법이 현실화됐을 때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다는 응답은 9.1%(234명)였다. 20.5(531명)%는 대면진료만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나타냈고, 70.4%(1820명)는 향후 추이를 보면서 참여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답했다.
대한내과의사회와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대한이비인후과의사회·대한가정의학과의사회는 공동 성명을 통해 "이번 설문조사를 통해 알 수 있듯이 70% 이상의 회원들이 오진의 위험, 의료영리화, 의료전달체계의 붕괴에 대한 우려로 비대면 진료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다. 한시적으로 시행된 비대면 진료를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비율은 더 증가했다"며 "비대면 진료에 대한 안전성과 유효성이 입증되지 않은 가운데 의료취약지나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한 제한적 범위 내에서 시범사업을 통한 검증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만약 도입하더라도 의료전달체계의 왜곡을 막기 위해 인증된 1차 의료기관과 의료진이 재진 환자만을 대상으로, 한정된 지역과 제한된 인원 안에서 진료가 이뤄져야 한다는 게 이들 단체의 입장이다. 정부를 향해서는 "국민건강에 위해를 끼칠 수 있는 비대면 의료 서비스 플랫폼과 수익만 추구하는 일부 의료기관에 대해서는 보건당국의 철저한 조사와 조치가 필요하다"며 "이번 조사 결과를 참고로 제도의 도입을 신중하게 판단하고 결정하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안경진 기자 realglasses@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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