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서 돌아오라" 바랐지만.. 86년 만의 총리 피격사망에 일본 '충격'
여야 선거 유세 멈추고 범행 규탄
"아베 막강한 영향력, 충격 더 커"
총기 규제 엄격한 일본서 이례적
"일본 안보 의식 바뀔 것" 전망도
아베 신조 전 총리 피격 사망에 일본 열도는 충격과 슬픔에 휩싸였다. 대낮에 도심 한가운데서 정치 거물이자 보수 아이콘이 손쓸 새 없이 공격당한 데다, 일본에서 극히 이례적인 총기 범죄의 희생양이 됐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가 발 빠르게 대책 마련에 나선 가운데, 정치권은 한목소리로 “용인할 수 없는 일”이라며 목소리를 높였고, 온·오프라인에서는 애도의 물결이 이어졌다.
아베 피습 사망, 여야 한목소리로 '규탄'
8일 오전 11시 30분, 아베 전 총리 피습 소식이 전해지자 일본 정부는 15분 뒤인 11시 45분 도쿄 총리 관저 위기관리센터에 관련 대응 방안을 논의하는 대책실을 설치했다.
이틀 뒤(10일)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야마가타현에서 선거 유세 중이던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헬리콥터를 이용해 도쿄로 복귀했다. 그는 긴급 기자회견에서 “구급 조치가 진행 중이다. 아베 전 총리가 어떻게든 목숨을 건지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며 “정부로서 앞으로 모든 사태를 상정하고 만전의 대응을 하겠다”고 밝혔다.
마쓰노 히로카즈 일본 관방장관 역시 선거 응원 연설을 위해 전국 각지에 있는 각료들에게 즉시 도쿄로 돌아올 것을 지시했다. 집권 여당 자민당 의원들은 대책 논의를 위해 각지에서 당사로 모였고, 일본 경찰청 역시 경비 국장을 수장으로 하는 대책 본부를 설치했다.
전·현직 총리가 피격 받고 목숨을 잃은 것은 86년 만이다. 1936년 사이토 마코토 전 총리가 쿠데타를 일으킨 육군 황도파(일왕의 친정을 주장한 옛 일본 육군 파벌) 장교들의 총에 맞아 숨진 게 마지막이다. 일본 최장기 총리이자 우익 구심점인 아베 전 총리를 겨냥한 정치적 폭력에 자민당은 물론, 야당까지 참담함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선거 유세 도중 초유의 사건이 발생하면서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라는 규탄이 이어졌다.
제1 야당 입헌민주당의 이즈미 겐타 대표는 “허용되지 않은 만행에 강한 분노를 느낀다”며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 같은 폭력은 안 된다”고 말했다. 자유주의 성향의 개혁 정당 레이와신센구미의 야마모토 다로 대표 역시 “그(아베)와 나는 정치적 신조와 목표가 180도 다르지만, 정치인이 테러를 당하는 나라가 되면 국가를 바꾸기 어렵게 된다”고 우려했다. 각 당은 이날 예정됐던 선거 유세를 모두 중단했다. 다만 일본 정부는 참의원 선거 조정 방안에 대해서는 “아직 결정된 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총기 범죄율 가장 낮은 나라에서… "충격"
온라인상에서는 애도가 이어졌다. 당초 시민들은 “지지자는 아니지만 살아달라” “무사히 깨어나 정치판으로 복귀하길 기도한다”며 아베 전 총리의 쾌유를 기원했다. 그러나 5시간 33분 만에 끝내 숨을 거두면서 비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과(過)도 적지 않았지만 오랜 기간 일본을 위해 최선을 다해준 리더였다”며 고인의 명복을 기원하는 글이 쏟아졌다. 한 일본인은 영국 BBC방송에 “최악의 소식이 전해졌다”며 “지금 (일본) 어느 곳에서나 슬픔이 흘러 넘치고 있다”고 말했다.
범행에 사용된 흉기가 총기라는 사실도 충격을 더했다. 일본은 개인의 총기 소지를 엄격히 금지한다. 전 세계에서 총기 범죄율이 가장 낮은 나라이기도 하다. 미국 CNN방송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일본 총기 사망자는 9명이다. 같은 해 미국 사망자(3만9,740명)와 대조적이다. 아사히신문은 “미국에서만 보던 총격 사건이 일본에서도 발생했다는 점에 떨리는 마음이 가라앉지 않는다”라는 시민 목소리를 전하기도 했다. AP통신은 “이번 사건은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고 총기에 대한 법적인 규제가 매우 강한 국가에서 발생해 더 충격적”이라고 전했다.
이번 사건으로 '일본은 총기 사건으로부터 안전하다'는 인식이 뒤집힐 거라는 전망도 나온다. 낸시 스노우 국제안보산업위원회 일본 이사는 “일본인들은 미국과 같은 총기 문화를 상상도 하지 못한다”며 “총기 사고 없이 안전하게 돌아다닐 수 있다고 믿는 일본인들의 정서를 크게 바꿔 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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