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총격에 사망..하루 전 일정 변경이 운명 바꿨다

도쿄=정영효 2022. 7. 8.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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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역대 최장수 총리를 지내고 현 집권여당인 자민당의 최대 파벌을 이끄는 아베 신조 전 총리(68)가 선거 유세 도중 총격을 받아 생명이 위독하다.

아베 전 총리 피습 소식에 아먀가타현에서 선거 유세를 벌이던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일정을 취소하고 전용 헬기로 급히 도쿄로 귀환했다.

아베 전 총리는 기시다 총리와 함께 일본 전역을 돌며 선거 유세를 벌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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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의원 선거 유세 중 피습
병원 이송 6시간 만에 숨져
용의자는 前 해상자위대원
"아베에 불만 있어 노렸다"
사진=AP


일본의 역대 최장수 총리를 지내고 현 집권여당인 자민당의 최대 파벌을 이끄는 아베 신조 전 총리(68)가 선거 유세 도중 총격을 받아 사망했다.

일본 외신을 종합하면 아베 전 총리는 8일 오전 11시께 나라시에서 가두연설을 시작한 직후 총격을 받고 쓰러졌다. 총무성 소방청에 따르면 총성은 두 발이 울렸으며 아베 전 총리는 오른쪽 목 부분에 출혈, 왼쪽 가슴에 피하출혈을 일으켰다.

나라시 소방국은 응급헬기로 그를 나라현립의과대부속병원으로 옮겼으나 심폐정지 상태라고 밝혔다. 일본에서는 의사가 사망선고를 하기 전까지는 심폐정지라는 표현을 쓴다. 그러나 이날 오후 6시께 사망했다는 NHK 등의 속보가 나왔다.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8일 나라시에서 참의원 선거 지원 유세를 하던 중 총에 맞아 사망했다. 현장에 있던 관계자가 셔츠에 피가 묻은 채 도로에 쓰러져 있는 아베 전 총리의 상태를 살피고 있다. 게티이미지


아베 전 총리에게 총격을 가한 용의자는 현장에서 체포됐다. 용의자는 야마가미 데쓰야(41)로 2005년까지 3년간 해상자위대에서 복무한 것으로 확인됐다. 야마가미는 경찰 조사에서 “아베 전 총리에게 불만이 있어 살해하려고 (그를) 노렸다”고 진술했다. 정치 신조에 대한 원한은 아니라고 NHK는 전했다. 일본 경찰은 범행도구를 용의자가 개조한 산탄총으로 보고 조사를 벌이고 있다.

아베 전 총리 피습 소식에 아먀가타현에서 선거 유세를 벌이던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일정을 취소하고 전용 헬기로 급히 도쿄로 귀환했다. 기시다 총리는 총리관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민주주의의 근간인 선거가 이뤄지는 가운데 일어난 비열한 범행”이라며 “최대한 강한 표현을 써서 비난한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선거 일정 조정 등을 거론할 단계는 아니다”고 말했다.

일본은 10일 의회 상원 격인 참의원 선거를 치른다. 아베 전 총리는 기시다 총리와 함께 일본 전역을 돌며 선거 유세를 벌여왔다.

아베 등 뒤에서 탕, 돌아보자 탕…총격범 "정치적 원한은 아니다"
가두연설 중 총성 울리고 쓰러져…응급헬기로 병원 갔으나 끝내 숨져

8일 일본 나라시 야마토사이다이지역 인근에서 경찰이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에게 총을 쏜 용의자 야마가미 데쓰야(41)를 제압하고 있다. 빨간 원 안에 용의자가 개조한 총이 보인다. 게티이미지


전날 밤 유세 일정을 나가노에서 나라로 변경한 것이 일본 최장수 총리에서 물러난 뒤에도 일본 정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나라현 나라시에서 8일 가두연설 도중 총격을 받고 쓰러진 아베 전 총리는 전날 저녁까지만 해도 일본 중부 산간지역인 나가노현을 방문할 예정이었다. 일정을 바꾼 것은 전날 밤으로 간사이 지역인 나라현과 교토부 선거 유세를 나가기로 결정했다. 일본 공영방송 NHK는 열세에 몰린 자기 파벌 소속 의원의 지원유세 요청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유세 연설 시작 직후 피습

“판단을 했다. 그는 안 되는 이유를 생각하는 것은….” “펑! 툭!”

8일 오전 11시30분께 나라시의 한 역 근처 거리에서 유권자를 향해 아베 전 총리가 주먹을 쥔 손을 움직이며 목소리를 높이던 중 음색이 서로 다른 총성이 흰색 연기와 함께 두 차례 울려 퍼지면서 일대가 아수라장이 됐다. 아베 전 총리가 연설을 시작한 지 1~2분 지나 벌어진 상황이다.

현지 유튜브 등에 따르면 첫 발을 맞은 아베 전 총리는 그대로 서 있는 것으로 나온다. 총성을 들은 아베 전 총리가 연설을 중단하고 돌아보자 용의자가 한 발을 더 발사했다고 NHK는 전했다. 두 번째 총성이 들린 뒤 아베 전 총리는 쓰러졌다. 총격은 매우 가까운 거리에서 이뤄졌다.

아베 전 총리는 셔츠에 피가 묻은 채 도로에 누워 있고, 한 인물이 양손을 포개 아베 전 총리의 가슴을 누르고 있는 모습이 교도통신 사진에서 확인됐다. 의료진으로 추정되는 이들이 심장 마사지를 하는 듯한 모습도 NHK에 포착됐다.

아베 전 총리는 구급차로 이송되던 초기에는 의식이 있었고 말을 걸면 반응하기도 했으나 이후 의식을 잃었고 호흡과 심장이 정지한 상태가 됐다. 당국은 중간에 아베 전 총리가 외부에 노출되지 않게 푸른 시트로 가린 상태에서 구급용 헬기에 옮겨 싣고 나라현립의과대병원으로 이송했다. 아베 전 총리는 오른쪽 경부에서 총상과 출혈이 확인됐고, 왼쪽 가슴 부위에 피하 출혈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사건 발생 후 3시간 반 정도 흐른 시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아베 전 총리가 심각한 상태에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날 오후 6시께 아베 전 총리가 사망했다는 현지 언론의 보도가 잇따랐다.

경찰이 용의자 야마가미 데쓰야를 체포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일본 금융시장에도 찬물

아베 전 총리의 영향력은 기시다 총리가 최근 자신의 간판 정책인 ‘새로운 자본주의’ 방향을 대폭 수정한 데서 입증됐다. 지난달 1일 일본 정부는 새로운 자본주의의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담은 경제재정 운용과 개혁의 기본방침(호네후토 방침)을 발표했다. 매년 6~7월 정해지는 이 방침은 일본 정부의 이듬해 경제정책과 예산 편성의 기본 방향이 된다.

기시다 총리는 작년 10월 집권할 때만 해도 “분배와 성장이 선순환하는 새로운 자본주의”를 내세우며 아베노믹스와 선을 그을 것임을 시사했다. 하지만 경제재정 운용 기본방침에서는 분배 정책을 대폭 수정하고 성장 정책에 초점을 맞췄다. 이를 두고 일본 정계에서는 기시다 총리가 아베파를 의식해 간판 정책을 양보했다고 평가했다.

일본 총리관저에 따르면 초대 총리인 이토 히로부미 이후 암살과 자살 등으로 사망한 일본의 전·현직 총리는 이번 사태 이전 총 9명이다. 1932년 이누카이 쓰요시 총리가 해군장교들에게 암살된 ‘5·15사건’을 마지막으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암살된 전·현직 총리는 없다.

전·현직 총리를 암살하려는 시도는 2차 대전 이후에도 여러 차례 있었다. 1960년에는 아베 전 총리의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 총리가 총리관저 리셉션에서 허벅지를 찔려 중상을 입었다. 1975년 미키 노부오 총리, 1994년 호소카와 모리히로 전 총리도 피습을 당하거나 총격을 받았지만 모두 무사했다.

아베 전 총리의 피습 소식은 금융시장에도 찬물을 끼얹었다. 닛케이225지수는 전날보다 0.1% 오른 26,517.19로 거래를 마쳤다. 오전 한때 1.5%가량 급등했던 닛케이225지수는 피습 소식이 전해진 직후 상승폭을 축소했고, 결국 보합세로 거래를 마쳤다. 엔화 가치는 피습 직후 달러당 135.37엔으로 0.6% 상승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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