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부터 끊이질 않는 횡령 사고..3년 내 감사인 교체 기업이 대부분

권유정 기자 2022. 7. 8.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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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 감사인 제도로 교체 늘어
외부감사 전문성 결여 우려
"감사 주체보다 절차·형식 문제"

올해 횡령 사고가 터진 주요 기업 대부분은 최근 3년 이내에 외부감사인을 교체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정해주는 감사인을 기업이 의무적으로 선임해야 하는 지정감사가 활성화된 영향으로 풀이된다. 지난 2019년 감사인 주기적 지정제 시행으로 새로운 감사인을 맞이한 경우가 가장 많았고, 회계부정 등 금융당국이 일시적으로 감사인을 지정해주는 ‘직권 지정’ 사유가 발생한 사례도 있었다.

8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DART)에 따르면 메리츠자산운용은 2020년부터 삼정회계법인(삼정KPMG)을 외부감사인으로 선임하고 있다. 상장사 혹은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지 않은 비상장사가 6년 연속 감사인을 자유 선임하면, 감사인 직권 지정 사유가 없어도 다음 3년간은 금융위원회가 지정하는 감사인을 선임해야 하는 주기적 지정제가 시행된 결과다.

그래픽=손민균

앞서 메리츠종합금융증권(메리츠종금증권)과 메리츠화재해상보험(메리츠보험)은 2019년 국내 첫 주기적 지정제 대상에 이름을 올렸다. 그전까지 메리츠금융그룹 계열사는 한영회계법인에 외부감사를 맡겨왔다. 당시 메리츠종금증권이 삼정, 메리츠보험은 삼일회계법인으로 지정을 받으면서 사측은 금융당국에 감사인 재지정을 요청했다. 통상 금융지주를 비롯한 대형 상장사는 계열사의 감사인을 통일하는 것을 선호하는 탓이다.

전날 금감원은 메리츠자산운용으로부터 지난달 말 내부 검사를 통해 직원의 횡령을 적발한 사실을 보고 받았다고 밝혔다. 해당 직원은 3월부터 약 3개월간 회삿돈을 빼내 개인 계좌로 입금하고, 다시 회사 계좌에 돌려놓는 식으로 6차례 횡령을 저지른 것으로 전해졌다. 당장 수사는 검찰 손으로 넘어갔지만, 금감원은 횡령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회사의 시스템상 결함이 있는지를 파악하고 개선 사항을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최근 기업 횡령 사고가 연달아 터지면서 일차적인 책임은 회사의 허술한 내부통제시스템에 있지만, 횡령이 발생한 기업의 외부 감사를 실시한 감사인에도 일정 책임이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있었다. 일부는 기업과 감사인이 장기간 계약을 맺어 이른바 유착 관계가 형성되면 제대로 된 감사가 어렵다는 취지로 도입한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가 감사인의 전문성을 떨어트리는 역효과를 낳았다고 주장했다.

익명을 요청한 한 회계사는 “우리나라의 정형화된 회계 시스템상 회사 내부에서 잡아내지 못한 횡령과 같은 부분을 감사를 통해 잡아낸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면서도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 등으로 감사 품질이 나아졌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오히려 감사인이 특정 기업과 오래 일을 같이하면서 산업이나 비즈니스 특성을 잘 알 때 사고나 오류가 발생할 만한 부분을 파악하기 쉬울 수 있다”고 덧붙였다.

메리츠자산운용 외에 올해 횡령 사건이 발생한 다른 기업들도 대부분 2019년 이후 최근 3년 동안 감사인이 한두 차례 바뀐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1월 역대 최대 규모인 2000억원대 횡령 사고가 발생한 오스템임플란트(048260)는 2016~2019년까지 인덕회계법인을 감사인으로 자유 선임했고, 2020년에는 지정 감사인인 삼덕회계법인에 외부감사를 맡겼다. 직권 지정 사유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됐다. 이후 지난해부터 다시 인덕과 3년 계약을 맺은 상태다.

아모레퍼시픽(090430)은 주기적 지정제에 따라 올해부터 감사인으로 한영을 선임했다. 그전까지는 삼일이 외부감사를 맡아왔다. 우리은행은 2020년 안진회계법인에서 삼정으로 감사인을 변경했고, 같은 해 KB저축은행과 신한은행은 각각 KB금융지주가 삼일에서 삼정, 신한금융지주가 삼정에서 삼일로 감사인으로 교체했다. 이 중 아모레퍼시픽과 KB저축은행의 경우 감사인 교체와 횡령 발생 시기가 맞물렸다.

클리오(237880)의 경우 2020년 삼정에서 정진세림회계법인으로 감사인을 교체했다. 다른 기업들과 달리 주기적 지정제나 직권 지정이 아닌 회사의 자발적인 의지에 따른 감사인 변경인 것으로 파악됐다. 클리오는 10년 동안 감사인을 2년 단위로 4차례 변경했다. 2013~2014년은 회계법인 성지, 2015~2016년은 삼일, 2017~2019년 삼정이 외부감사를 실시했다. 새마을금고, 지역농협의 경우 각각 새마을금고법, 농업협동조합법에 따라 일반 기업과 다른 외부감사 기준이 적용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기업들의 감사인 교체에 따른 감사 전문성 저하가 횡령 사고로 이어졌다고 보긴 어렵다고 봤다. 감사 주체가 달라진다고 감사 형식이나 절차가 바뀔 가능성이 크지 않은 탓이다. 연말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기에는 감사인의 업무는 감사가 아닌 검토에 그치는데, 이마저도 의무화하지 않은 기업의 경우 감사인과 기업이 형식적인 커뮤니케이션만 진행하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한 회계업계 관계자는 “감사인이 감사를 하는 시기에 횡령 사실을 인지하고도 묵인하거나 방치했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최근 발생한 횡령 사고만 보더라도 외부 감사보다는 기업들의 자체 내부 감사를 통해 적발된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그는 “분기 중에 감사인은 단순히 검토만 하거나 회사와 주요 회계 이슈가 무엇인지 파악 정도만 하는데 만약 그 시기에 사고가 발생해 내부서 종결까지 됐다면 감사인에게 책임을 묻긴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상호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원도 “분·반기 재무제표 검토 과정에서 감사인이 대규모 횡령 등을 조기에 적발할 수 없는지 의문이 제기되지만 이 단계에서는 감사인이 자산 실재성을 확인할 의무가 없다”고 했다. 그는 “검토 업무에서는 검사, 관찰, 조회 등을 통한 계정잔액 입증절차를 요구하지 않고, 재무 회계 담당자에 대한 질문, 분석적 절차를 통해 감사보다 정확도가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연구원은 “검토 수준 한계로 인해 사업보고서 및 감사보고서 제출이 이뤄지는 3월 이후부터 중간감사가 실시되는 11월까지 약 7개월간 자산 실재성에 대한 외부감시가 공백에 놓일 수 있다”며 “내부통제 취약점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기업에 대해서는 세부적인 검토 준칙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금 관리 시스템이 구축돼 있지 않은 회사나 중요성 금액 기준을 초과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엄격한 검토를 실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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