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격부터 커터칼 테러까지..아베 피습으로 본 한일 정치인 수난사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8일 나라시에서 연설 도중 산탄총에 피격당한 가운데 과거 한일 정치인을 향한 피습 사건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과거 소개된 정치인 피습 사건을 정리했다.
메이지유신 이후 2차 세계대전까지 정치인 테러 '수백 건'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에서는 정치인 암살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이현주 전 오사카 총영사는 지난해 '일본발 혐한 바이러스'(선인 발행)에서 "(정치)테러는 (메이지)유신 이후에 수백 건 발생했다"며 "일본의 정치사 자체가 암살의 역사라고도 한다"고 지적했다.
'일본군의 아버지'로 추앙되는 오무라 마스지로는 1869년 교토 출장 중 여관에서 목욕을 하다 일본 사무라이들에게 살해됐다. 1874년 1월 유신의 주역인 이와쿠라 도모미 살해 미수 사건이 있었고, 1878년 5월 역시 유신 정부의 설계자였던 오쿠보 도시미치가 암살당했다. 1899년 2월에는 문부대신 모리 아리노리가, 1921년 11월에는 최초 평민 출신 총리인 하라 다카시가 암살됐다.
쇼와 시대에도 '우익 테러리즘'은 계속됐다. 1930년 11월 런던해군 군축조약을 체결한 하마구치 오사치 총리가 도쿄역에서 우익에게 살해됐고, 1932년에는 일본 해군 장교단이 일으킨 쿠데타 미수사건(5·15 사건)으로 내각총리대신 이누카이 쓰요시가 사망했다.
1935년 8월에는 군무국장 나가타 데쓰잔이 동료 장교에게, 1936년 육군 소장파 장교단이 일으킨 쿠데타 미수사건(2·26 사건) 때는 다카하시 고레키요 대장상(전 총리)이 살해됐다.
전후 일본 정치인 피습 사망 4명
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에서 흉기로 피습당해 사망한 정치인은 지금까지 4명이다.
첫 사망 정치인은 아사누마 이네지로 사회당 위원장으로 1960년 10월 도쿄 히비야 공회당에서 미일협정 비판 연설을 하던 중 대일본애국당 소속 극우성향 청년 야마구치 오토야의 칼에 찔렸다. 칼에 맞고도 두 다리로 한동안 서 있었지만, 병원에 이송되던 중 과다출혈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체포된 범인은 그해 11월 치약으로 '천황 폐하 만세'라는 유서를 남긴 후 소년감별소에서 목을 맸다.
두 번째는 노동장관을 지낸 니와 효스케 자민당 의원으로 1990년 10월 21일 일본 나고야 시내에 있는 육상 자위대 기념행사에서 정신분열증을 가진 괴한의 칼에 찔려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다음달 2일 사망했다. 당시 언론은 "혈액형이 O형인 그에게 두 곳의 병원이 모두 B형의 피를 수혈했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첫 번째 옮긴 병원에서는 혈액검사 없이 비서 말만 듣고 B형을 수혈했고, 두 번째 병원에서는 혈액검사를 했지만 이미 B형이 다량 수혈돼 B형 반응이 나와 B형 혈액을 수혈한 것으로 전해졌다.
세 번째 정치인은 운동권 출신인 이시이 고키 민주당 중의원으로 2002년 10월 25일 자택에서 나와 차를 타려던 순간 우익단체 남자의 칼에 찔려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숨졌다. 정관계 유착문제를 집중 추궁해왔던 이시이 의원은 옴진리교 사건 때 예리한 국회 질문으로 여러 차례 협박을 받기도 했었다.
네 번째 정치인은 이토 잇초 나가사키 시장으로 2007년 4월 야쿠자 조직원의 총격을 받아 과다출혈로 사망했다. 현장에서 체포된 용의자는 일본 최대의 범죄조직 야마구치조의 일파인 '스이신회' 회장 대행으로 예전 공공사업 입찰 문제로 시청과 마찰을 빚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토 시장의 전임인 모토시마 히토시 전 시장도 재임 중이던 1990년 우익단체 행동대원에 의해 총격을 받아 전치 3개월의 중상을 입은 적이 있다. 모토시마 시장은 1988년 12월 시의회 답변에서 "천황에게 전쟁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변했는데, 2년 뒤 테러를 당했다.
YS는 초산 테러, 송영길은 둔기 가격
우리나라 정치인이 겪은 피습 사건으로는 1969년 6월 김영삼(YS) 당시 국회의원의 초산 테러가 대표적이다. 국회 3선 개헌의 부당성을 알리는 대정부 질의를 한 지 일주일 후, 상도동 귀갓길에서 차량에 초산이 투척되는 테러를 당했다. 괴한은 원래 YS가 탄 차량 뒷문을 열려고 했지만 차가 움직이자 초산병을 던졌고, 이 때문에 차량 페인트가 녹아내렸는데 범인은 끝내 잡히지 않았다.
1973년 8월에는 일본 도쿄에서 반박정희 집회 참가를 앞둔 김대중 전 대통령이 피랍됐다. 당시 재야 정치인으로서 1972년 10월 일본에 머물다 유신 선포 후 해외 망명을 준비했던 그는 괴한 5명에게 납치된 후 129시간 만에 동교동 자택 근처에서 풀려났다. 이는 후일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 부장의 폭로로 중앙정보부 소행으로 밝혀졌다.
2005년 5월에는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 지지 연설 도중 괴한의 커터칼에 턱에 상처를 입어 병원에서 60바늘을 꿰맸다. 장시간 봉합수술 끝에 마취에서 깨어나자마자 외친 "대전은요" 한마디는 그해 지방선거 판세를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다. 범인은 10년형을 선고받고 2016년 출소했다.
지난 대선에서는 송영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70대 남성이 내리친 둔기에 머리를 가격당했다. 선거를 사흘 앞둔 3월 7일 서울 신촌 유세 현장에서였다. 한반도 종전선언을 지지하는 유튜버였던 범인은 4월 구치소에서 극단적 선택을 해 숨졌다.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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