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 '팩트체크'의 한계..'협력'으로 극복할까?
어느덧 국내 주요 언론사에서 '팩트체크'는 하나의 고유명사처럼 자리 잡았습니다. 형태나 전문성에는 차이가 있지만 이제는 '팩트체크'를 하지 않는 언론사를 찾는 것이 더 어려울 정도입니다.
물론 여전히 한계와 부족함이 많습니다. '팩트체크'는 엄밀한 분야입니다. 단순히 기사에 담긴 내용이 '팩트'를 틀리지 않았다는 점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전문적인 검증 과정과 짜여진 서사 구조를 통해 거짓을 반박해야 하는데, 실제로 국제팩트체킹네트워크 IFCN(International Fact-Checking Network)은 팩트체킹 과정에서 따라야 할 준칙(Code of Principles)을 명확히 마련해놓고 있습니다. 이 같은 검증 과정을 면밀하게 따르는지 여부와 언론사 내부적으로 전문적인 운영 체계를 갖추는지 여부 등을 따져보면 여전히 우리 언론의 팩트체크는 부족한 점이 있습니다.
다른 문제도 있습니다. 언론사의 '팩트체크'에 대한 신뢰도 문제입니다. 팩트체크 기사에 나오는 내용의 사실 여부가 아니라 해당 언론사에 대한 신뢰, 나아가 주제 선정에 대한 의구심입니다. 쉽게 말해 팩트체크 기사에 특정한 '의도'가 담긴 것이 아니냐는 겁니다. '팩트체크'에 대한 역량은 의지와 시간, 비용을 통해 어느 정도 발전이 가능한 부분입니다. 그러나 이를 받아들이는 수용자의 '신뢰'는 단순히 시간이 흐른다고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특정 언론사가 아닌, 언론사의 '연합체'에 의한 팩트체크라면 이같은 문제를 극복할 수 있을까요? 정치적 성향과 매체를 불문하고 다수의 언론사가 모여 검증을 거친다면 '메신저'에서 오는 신뢰 부족을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물음입니다. 이에 대한 해답을 지난달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린 'Global Fact 9'에서 찾아봤습니다.
■ 수십 년 앙숙, 팩트체크를 위해 손을 맞잡다
'Global Fact'는 국제팩트체킹네트워크, IFCN이 주관해 매년 개최됩니다. 2014년 1회를 시작으로 올해 벌써 9번째 행사가 열렸습니다. 최근 2년은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온라인으로 개최됐는데, 올해 3년 만에 오프라인 행사가 열렸습니다. 1회 때는 참석자가 수십 명 수준이었는데, 올해는 전 세계 65개 나라에서 500명이 넘는 인원이 참가했습니다. 온라인 참가 인원을 합치면 이보다 훨씬 많습니다.
주최국 노르웨이에는 'Faktisk'라는 팩트체크 단체가 있습니다. 2017년에 설립됐는데, 노르웨이 최대 매체이자 공영방송인 NRK를 포함한 주요 매체들이 여기에 다수 속해 있습니다.
'Factisk'의 시작은 평범하지 않았습니다. 'Factisk'는 노르웨이의 양대 일간지이자 최대 경쟁사인 VG 와 Dagbladet이 극적으로 손을 맞잡고 여기에 NRK가 참여하면서 시작됐습니다. 현재 10개 전후인 가입사들은 동등하게 1년에 100만 유로(약 13억 2700만 원)를 내고, 공평하게 인원을 파견합니다. 이를 통해 'Factisk'를 통한 팩트체크 기사를 사용할 권리를 갖습니다.
창립 당시 VG의 헬제 솔베르그는 "경쟁사였던 3대 매체가 협력하게 된 건, 팩트체크가 마주하는 어려움이 협력을 반드시 필요로 할만큼 크다는 걸 의미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Dagbladet 출신으로 현재 'Factisk'를 이끌고 있는 크리스토퍼 에게버그를 오슬로에서 만났습니다. 그는 "창립 당시 노르웨이 역시나 마찬가지로 언론에 대한 신뢰도가 낮았다"며 "Factisk는 이를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다"고 설명합니다.
'Factisk'와 같은 조직은 개별 매체에 비해 팩트체크의 외연을 한층 넓히는 데도 용이합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거짓 내용을 담거나 조작된 영상이 소셜 미디어를 통해 급속히 확산됐습니다. 이에 'Factisk'는 개전 이후 이같은 거짓 정보를 판별하는 코너를 새롭게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소셜 미디어에서 '러시아군이 새로운 군사 장비를 전투 지역에 파견한다'거나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군을 공격해 피해를 입혔다'는 등의 전황 관련 영상이 확산되면 진위 여부를 확인해 해당 영상이 몇 년 전 촬영됐다거나 합성에 의한 것임을 밝혀내는 방식입니다.
■ 코로나19 팬데믹에서 빛난 팩트체크 연합
팩트체크 '연합'은 나라를 넘어 대륙 차원으로 확대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상황에서 결과적으로 수많은 인명을 살리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팬데믹 초기, 특히나 코로나19에 대한 정보가 부족할 때 그 기원과 전파력, 위험성에 대한 수많은 정보가 확산됐고 이는 세계 어느 곳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이를 정보의 팬데믹이라는 뜻에서 'Infodemic(Information+Pandemic)'이라고 불렀는데 문제는 이같은 정보의 다수가 잘못된 정보라는 점이었습니다.
부정확한 정보의 확산은 상대적으로 인프라가 열악한 다수의 아프리카 국가들에서 특히 위험했습니다. 이에 WHO의 아프리카 지역사무소가 중심이 돼 탄생한 것이 'AIRA(The Africa Infodemic Response Alliance)'입니다. 거짓 정보의 확산을 막고, 제대로 된 의료 상식을 대중들에게 알려 팬데믹의 영향을 최소화하겠다는 것이 AIRA의 목표였는데, 다양한 분야에서 약 1300명의 전문가들이 여기에 합류했습니다.
AIRA에는 기존에 아프리카에서 국가 단위를 넘어 활동해 온 5개 이상의 팩트체크 조직이 참여했습니다. 더욱 눈에 띄는 것은 WHO를 중심으로 유니세프와 적십자, 아프리카 질병통제예방센터(CDC) 등 공신력 있는 국제 보건기구들도 구성원으로 참여했다는 점입니다.
2021년 3월 AIRA가 출범시킨 'Viral Facts Africa'는 주요 소셜 미디어를 중심으로 팩트체크를 통한 정보를 유통했습니다. 다수의 아프리카 국가에서 방송이나 신문을 통한 정보 전달이 제한된다는 점을 감안해 모바일을 통한 전파에 역량을 집중했습니다. 'Viral Facts Africa'를 통해 유통된 정보는 2021년 한 해에만 1억7천만 뷰가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며 팬데믹의 최전선에서 거짓 정보의 확산을 차단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 속도 내는 팩트체크 '협력'…내년 서울에서 'Global Fact 10' 개최
개별 언론사를 넘어선 협력 사례는 이들뿐만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국가나 지역 단위를 넘어서 전 세계적 차원에서 팩트체크를 위한 협력은 속도를 내고 있는데, 이런 가운데 개별 언론사의 역량에만 의존하는 팩트체킹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영국의 공영방송 BBC는 2017년부터 전담팀을 만들어 꾸준히 팩트체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BBC 역시 자체 생산 팩트체크 뉴스에 대한 시청자의 관심을 이끌어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실제로 BBC는 트위터에서 'BBC 사실확인(reality check)'라는 별도 계정을 2015년부터 운영해왔지만 팔로워가 9만 명에 그치면서 지난해 1월 제공을 중단했습니다. 'BBC News' 계정이 1천4백만 명의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한계가 명확한 부분입니다.
국내에서는 서울대 SNU팩트체크센터가 구심점이 돼 국내 주요 언론사와의 제휴로 지난 5년 간 4천 건 가까운 팩트체킹을 진행해왔습니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언론사 간 '연합체'를 통한 팩트체킹이 가능할까요? 처음 소개했던 'Factisk'의 크리스토퍼 에게버그는 이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 언론사 2곳만 모이면 나머지 언론사들은 자연스럽게 합류할 수 있습니다. 노르웨이의 Factisk도 수십년 간 경쟁해 온 라이벌 언론사 2곳의 협력에서 시작됐습니다."
마침 내년 10주년을 맞이하는 전 세계 팩트체크 기관들의 최대 서밋 'Global Fact 10'이 서울에서 열립니다. 서울대 SNU팩트체크센터가 IFCN과 공동으로 6월 28~30일까지 사흘간 주최합니다. Global Fact가 시작된 이래 아시아에서 행사가 열리는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언론사와 학계, 언론 수용자까지 팩트체크에 대한 국내의 인식을 향상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지 주목됩니다.
이 취재는 서울대학교 SNU팩트체크센터-한국언론학회-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정새배 기자 (newboat@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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