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소형원자로 시장이 460조? 새 정부 에너지 정책에 엉터리 수치 인용
산업통상자원부가 새 정부 에너지 정책에 기재된 소형모듈원자로(SMR)의 시장 전망 수치를 엉터리로 인용한 사실이 확인됐다. 17년 전 국책연구기관에서 작성됐다가 예측 실패로 결론난 보고서를 인용한 것도 모자라 그마저도 왜곡된 내용을 국가 주요 정책에 반영한 것이다.
잘못된 수치가 인용된 정책안은 걸러지지 않은 채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그대로 의결됐다. 문재인 정부 시절 탈원전 정책의 컨트롤타워를 자처하던 산자부가 새 정치권력과의 코드 맞추기에 급급한 나머지 기본적인 검증조차 하지 않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윤곽 드러낸 친원전 에너지 정책
지난 5일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원전의 국가 전력 생산 비중 확대 및 수출 지원 방안 등을 담은 ‘새정부 에너지정책 방향’이 의결됐다. 대통령 후보 시절부터 탈원전 정책을 폐기하고 친원전 드라이브를 걸겠다고 공언했던 윤 대통령의 의지가 공식화된 것이다. 산자부는 새 정부 에너지 정책 방향에 대해 △기후변화 대응, △에너지 안보 강화, △에너지 신산업 창출 등 3가지에 주안점을 뒀다고 강조했다. 산자부는 또 국민 공청회와 에너지위원회 토론회 등 각 분야의 의견을 수렴했을 뿐만 아니라 차관회의와 국무회의 등 정부 내 최고의사결정 절차를 통해 확정했다고 덧붙였다.
특히 산자부는 에너지 신산업 창출과 관련해 친원전 진영에서 ‘미래 먹거리’로 치켜세우는 소형모듈원자로(SMR) 개발에 약 4,000억 원을 투입해 2030년대에 수출 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소형모듈원자로란 증기발생기, 냉각재 펌프, 가압기 등 주요 기기를 하나의 용기로 일체화한 소형 원자로를 말한다.
문제는 산자부가 소형모듈원자로(SMR)의 낙관적인 시장 전망을 강조하기 위해 “2050년 글로벌 시장규모가 약 3,500억 달러(약 460조 원)에 달할 것”이라고 기재한 대목이다. 산자부는 한국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의 연구 내용을 인용했다고 출처를 밝혔지만 뉴스타파가 확인한 결과 실제 인용된 보고서 내용과 달랐을 뿐만 아니라 해당 보고서의 예측은 이미 틀린 것으로 결론난, 사실상 용도폐기된 연구였다.
정부 부처·연구원의 왜곡 인용
산자부가 인용했다는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의 연구 보고서는 ‘해수담수화용 원자로(SMART)의 연구용원자로 건설을 위한 예비타당성 조사’이다. 당시 과학기술부의 위탁을 받은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이 2005년 9월에 발간했다. 2050년 차세대 원전 시장의 규모 언급하면서 무려 17년 전 보고서를 활용한 것이다. 보고서에 언급된 원자로(SMART)는 한국형 소형모듈원자로를 의미한다.
산자부가 인용한 소형원자로 기술의 글로벌 시장 전망 추정치는 이 보고서 93페이지에 등장한다. 한국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은 2011년부터 2020년까지 한국형소형모듈원자로 기술을 활용 가능한 △해수 담수화 분야에서 1,000억 달러 △전력 생산 분야에서 2,500억 달러 △지역난방 분야에서 1,800억 달러 등 총 5,300억 달러 규모의 세계 시장이 열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산자부가 인용한 2050년 시장 전망치는 해당 보고서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2020년까지 예측한 원래 보고서의 시장 전망치가 어느샌가 2050년 전망치로 둔갑해 인용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이 전망치라고 제시한 5,300억 달러가 아닌 3,500억 달러로 인용한 것도 의문점이다.
더구나 이 보고서 내용은 사실상 해당 연구기관에서도 용도 폐기한 상태다. 2004년 보고서 발간 당시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은 2020년까지 5,300억 달러, 우리 돈 약 460조 원 규모의 세계 시장이 형성될 것이라고 추정했지만 완전히 빗나갔다. 시장이 형성되기는커녕 본격 상용화를 위한 개발도 완료되지 않은 상태다. 에너지경제연구원 등 현재 다수의 기관은 SMR의 세계시장 상용화 예상 시기를 2030년 이후로 내다보고 있다.
산자부의 왜곡 인용,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당혹스럽다"
산자부가 보고서 내용을 잘못 인용한 것에 대해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측은 당혹스럽다는 입장이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 관계자는 “산자부에서 SMR 관련 자료를 요청한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우리 연구 내용이 새 정부 에너지 정책 방향에 공식 언급된 사실도 발표 후 알았다”라며 “자료가 인용되는 과정에서 내용이 왜곡된 것 같다”라고 말했다. 뉴스타파는 '2050년까지 3,500억 달러 규모의 SMR 시장이 형성될 것'이라는 다른 연구 결과가 있는지도 물었지만 이 관계자는 “(해당 보고서 작성 이후)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이 다른 에너지 관련 연구를 진행한 사실은 없다”라고 밝혔다. 산자부의 명백한 왜곡 인용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산자부에 해당 내용의 출처를 확인한 결과 뜻밖의 답변이 돌아왔다. 산자부 에너지전환정책과 관계자는 “한국원자력연구원의 보고서에서 재인용한 내용을 사용했다”라고 밝혔다. 원자력연구원은 한국형소형원자로(SMART)의 개발 주체로서, 정부 예산 증감에 따라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이해당사자다. 산자부가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의 연구 내용을 인용하면서도 원문을 직접하지 않고 이해관계자인 원자력연구원 보고서만 믿고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석광훈 녹색연합 전문위원은 “정치 권력 교체에 따라 탈원전에서 친원전으로 정책이 급선회하는 상황에서 산자부 공무원들이 서두르다 생긴 촌극으로 보인다”라고 지적했다.
'SMART 개발 당사자' 원자력연구원의 자료 왜곡, 정말 실수였을까
산자부가 재인용했다는 원자력연구원의 보고서는 2020년 8월 발간된 ‘한국형 소형원전 SMART 개발 및 수출시장 진출을 위한 노력’이다. 5페이지에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이 소형원전 시장수요를 2050년 3,500억 달러로 예측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보고서 말미에는 해당 내용의 출처가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의 ‘해수담수화용 원자로(SMART)의 연구용원자로 건설을 위한 예비타당성 조사’ 보고서라고 밝히고 있다. 원자력연구원이 산자부에 앞서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의 보고서를 왜곡 인용했던 것이다.
원자력연구원 측은 자료 인용에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원자력연구원 관계자는 "원문과 다르게 2050년 전망치라고 인용한 잘못이 있었다"라고 밝혔다.
당초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이 원문 보고서에 5,300억 달러로 기재한 총 시장 전망치를 원자력연구원이 3,500억 달러라고 다르게 인용한 점에 대해서는 "원문 보고서에서 언급한 지역난방 분야는 SMR만의 시장 분야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해 그 부분을 빼고 3,500억 달러라고 인용했다"라며 "원문 보고서보다 보수적으로 잡았기 때문에 무리가 없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타 기관의 연구 결과물을 자의적으로 편집, 인용해 놓고도 문제 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취재 결과, 원자력연구원의 왜곡된 보고서가 인용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5년에도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의 연구 결과가 왜곡돼 당시 미래창조과학부를 통해 유포된 것으로 확인됐다. 여기에도 원자력연구원은 관련 기관으로 등장한다. 미래창조과학부는 ‘스마트(SMART) 원자로, 해외수출 첫 걸음 내딛다’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통해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이 2050년 세계 SMR 시장 규모가 3,50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는 잘못된 내용을 실었다.
SMR이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소형모듈원자로(SMR)는 차세대 원전의 핵심 기술로 불린다. 원전 업계 주장에 따르면 전력 생산 과정에서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고 위험이 대폭 줄어든다. 동시에 기상 조건 등에 따라 발전량이 들쭉날쭉한 재생에너지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으로 꼽힌다. 미국과 영국, 러시아, 캐나다 기업들이 개발에 나서고 있다. 윤석열 정부 역시 한국의 독자 SMR 노형 개발로 세계 수출 시장을 주도하겠다는 장밋빛 포부를 밝혔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무엇보다도 새 정부가 추진하는 신규 원전 건설 가속화 및 노후 원전 수명 연장에 따라 추가로 발생하는 사용후핵연료, 즉 고준위 핵폐기물의 저장 포화 시점은 더욱 빨라질 예정이다. SMR 역시 핵폐기물이 발생하기 때문에 정부 바람대로 SMR 상용화 시점이 앞당겨질수록, 오갈 곳 없는 핵폐기물 처리 문제도 그만큼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불안감이 여전한 상황에서 소형이라고 하더라도 SMR 건설에 찬성할 지역을 찾기도 어렵다. 대용량의 냉각수 공급을 위해 해안이나 큰 강변에 위치한 기존 대형 원전과 달리 입지 제약이 덜하다는 SMR의 특성을 고려하면 전력 수요가 많은 서울 등 대도시에 건설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입지 문제를 두고 지역 간 대립이 극심해질 가능성이 높다. 그린피스 서울사무소에 따르면 한국은 세계 최고의 원전 밀집도를 보이고 있다. 2022년 4월 기준 한국은 국토 면적(1,000㎢) 당 원전 설비용량이 236.8MW로, 프랑스(112.1MW)의 2.1배, 일본(86.9MW)의 2.7배,영국(28.3MW)의 8.3배, 미국(10.4MW)의 22.7배가 넘는다.
원전의 경제적 효율 때문에 과거 수십 년 동안 원자로의 대형화 추세가 이어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SMR의 경제성에도 의문이 제기된다. 우리나라 원전 개발 역시 전력 생산 단가를 낮추기 위해 비슷한 길을 걸었는데 신고리 3,4호기 등 신형 원전에 들어간 원자로 APR1400(1.4GW)은 세계에서 손꼽는 대용량이다. 한국형소형모듈원자로(SMART)에 대해서도 1990년대부터 개발을 개발을 진행하면서 수출을 모색하고 있지만 최종 건설까지 얼마나 걸릴지 예상하기 어렵다.
원전 업계에서는 모듈화를 통한 대량 생산과 소형화를 통해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대형 원전 1기의 발전량을 대체하기 위해 여러 기의 소형 원자로를 건설하는 것이 과연 수지타산이 맞을지에 대한 논란 역시 현재 진행형이다.
나아가 6일(현지시간) EU에서 원전을 친환경 에너지 분류체계, 즉 택소노미(Taxonomy)에 포함시키면서 2050년까지 고준위방사성폐기물처리장 완공이라는 조건을 달아 둔 것도 우리 원전 업계에는 마이너스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의 고준위방사성폐기물처리장은 입지로 선정된 지역 주민들의 반발이 없다고 가정하더라도 관련 안전 규정과 절차에 따라 최소 37년이 걸린다.
석광훈 녹색연합 전문위원은 “일부 국가에서 진행 중인 SMR 개발은, 안전 비용 증가로 쇠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가격 경쟁력 측면에서 이미 재생에너지에 밀리고 있는 원전산업의 명맥 유지를 위한 궁여지책”이라며 “우리 정부가 연구용이 아니라 상업용 SMR에 대한 원전 업계의 희망사항을 그대로 믿고 국가 에너지 정책을 추진하는 게 아닌지 크게 우려된다”라고 말했다.
뉴스타파 조원일 callme11@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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