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림팩 르포] '큐티 네이비'서 '전력 2위로'..우리 해군 '림팩' 성장기
2010년대 들어 각종 훈련 지휘하기도
(호놀룰루=뉴스1) 허고운 기자 = 미국 해군이 주도하는 세계 최대 다국적 해상훈련 '환태평양훈련(RIMPAC·림팩)'에서 우리 해군의 참여 비중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우리 해군은 림팩 참가 초창기 때인 1990년대엔 호위함 2척만 보내며 규모가 작다는 말을 빗대는 '큐티(cutie) 네이비'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으나, 17번째 참가인 이번에는 미 해군 다음가는 전력이라는 평가를 받는 등 위상이 올라갔다.
8일(현지시간) 현재 미 하와이 진주만 일대에는 우리 해군의 대형수송함 '마라도함'과 이지스 구축함 '세종대왕함', 한국형 구축함 '문무대왕함', 손원일급(214급) 잠수함 '신돌석함' 등이 정박훈련을 하고 있다.
함정과 함께 P-3 해상초계기 1대, '링스' 해상작전헬기 2대, 한국형 상륙돌격장갑차(KAAV) 9대와 해병대 1개 중대(120여명), 해군 특수전전단(UDT/SEAL) 4개팀(20명), 해군 제5성분전단 제59기동건설전대(10여명) 등 장병 1000여명도 이번 림팩에 함께하고 있다.
이번 림팩엔 우리나라를 비롯한 26개국 수상함 38척과 잠수함 4척, 항공기 170대, 9개국 해병대 등 병력 2만5000여명이 참가하고 있다. 거의 절반의 전력이 미군 소속이며, 우리 해군은 두 번째로 '강력한' 전력을 파견했다는 평가를 참가국 대부분으로부터 받고 있다.
특히 우리 림팩 훈련전단장인 안상민 소장은 '원정강습단장' 임무를 처음으로 수행하게 됐다. 미 해군의 '에섹스'에 편승해 8개국 수상함 13척(상륙함 4척·전투함 9척), 9개국 상륙군 1000여명을 지휘한다.
이날 진주만에서 만난 한 호주군 장교는 "오래 전 림팩에 참가한 선배 전우들로부턴 한국에 대한 특별한 얘기를 듣지 못했으나 요즘은 림팩에서 한국을 자주 언급하게 된다"며 "한국 해군은 아마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훌륭하게 성장한 해군일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해군은 1988년 옵서버 자격으로 참관한 것을 시작으로 1990년부터 2년마다 열리는 림팩에 정식 참가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 참가 전력에 '사고'가 발생한 적은 없지만 17번의 훈련은 해군 '성장통'의 역사이기도 하다.
해군의 훈련 참가 초기인 1990·92·94·96년에는 대형 구축함이 없어 서울함·경북함·마산함 등 1500톤급 호위함을 중심으로 림팩에 참가했다. 1992년 호위함 통신관으로 림팩에 참가했던 안상민 소장은 "당시 우리 해군은 '큐티 네이비'란 애칭으로 불렸는데, 이런 호위함이 '태평양을 무사히 건널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라고 회고했다.
1500톤급 호위함에 탑승한 우리 해군은 원거리 항해와 대양에서 만나는 바람과 높은 바도 때문에 고생이 심했다고 한다. 림팩은 기본적으로 대양 작전이고 주력은 미 항모 전투단인데, 항모 전투단은 태풍급의 기상을 제외하고는 기동에 거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 반면 2000톤급 미만 함정은 파도가 3미터만 돼도 사실상 정상적인 항해가 어렵다.
과거 림팩에 참가한 적이 있는 한 예비역 해군은 "림팩은 기본적으로 대양 작전이고 주력인 미 항모전투단은 태풍급을 제외하고는 기동에 거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며 "우린 이걸 따라가기도 벅찬데다 유류 수급을 받는 일도 만만치 않았는데 항상 함포 사격 실력만큼은 극찬을 받았다"라고 전하기도 했다.
작은 군함이나 잠수함은 헬기를 탑재할 수 없고 헬기가 착륙할 비행갑판도 없어 환자 처치에도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한때는 '림팩엔 맹장을 떼 놓고 가야한다'는 자조 섞인 말이 해군들 사이에서 나오기도 했다. 응급 사태에 적절한 의료 대처를 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1998년 림팩부터는 기존의 구축함 외에 잠수함 '이종무함'과 해상초계기 P-3가 최초로 참가하면서 더욱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2000년에는 한국형 구축함 '을지문덕함'이 '링스' 헬기를 탑재하고 최초로 참가해 호위함 '전남함', 잠수함 '박위함', P-3와 전력을 선보였다.
당시 '박위함'은 훈련 종료까지 단 한 차례의 공격도 받지 않고 유일하게 생존했다. 또한 가상 해전에서 적 함정 11척을 격침한 업적은 지금도 해군과 림팩 참가국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다.
초계함(PCC) '원주함'이 최초로 참가했던 2002년 림팩 사례도 유명하다. 잠수함 '나대용함'이 최초로 잠대함 유도탄으로 표적을 명중시켰고, '원주함'은 PCC로는 최초로 '하푼' 함대함 미사일을 발사해 미 퇴역 구축함을 맞췄다.
또 다른 예비역 해군은 "PCC는 주로 작전 구역에서 다니는데 하와이까지 이동한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일이었다"며 "한국에서 출발해 하와이에서 내리기 오랜만에 정복을 입어보니 바지 허리가 남아 주먹이 2개나 들어갔던 게 기억난다"라고 말했다. 그만큼 하와이까지의 이동 자체가 '극한 훈련'이 된다는 뜻이다.
4400톤급 구축함 '충무공 이순신함'이 처음으로 출전한 2004년 림팩에서도 우리 해군은 뛰어난 활약을 보였다. '충무공 이순신함'이 발사한 함대공 미사일 SM-2는 공중 표적을 정확히 맞췄고, 잠수함 '장보고함'은 위치가 발각되지 않은 채 30여척의 적을 침몰시켰다.
2006년 훈련에서 우리 해군의 위상은 한층 더 높아졌다. 미국, 캐나다와 함께 구성된 수상전투단 지휘관 임무를 수행한 것이다. 2008년엔 사상 처음으로 다른 참가국 함정들과 '전투 진'을 형성한 상태에서 함대공 유도탄 실사격을 했다.
2010년 훈련에 첫 참가한 이지스 구축함 '세종대왕함'은 함포 사격 분야 최고의 영예인 '탑건함'에 선정됐다. '세종대왕함'은 참가 함정 중 유일하게 오차 합계가 100m 이내인 75m를 기록하면서 "한국 해군은 타깃은 물론 타깃을 예인하는 줄도 맞출 수 있다"라는 말이 돌았다.
2012년엔 비록 소대급 규모였지만 해병대가 림팩에 최초로 투입됐다. 또한 우리 참가 전력은 참가국 간 우호를 증진하기 위한 '림팩 올림픽'에서 종합 우승을 차지했다. 이 행사는 2002년부터 시행하고 있으며 미국 이외의 국가가 우승한 것은 처음이었다.
2014년 훈련에선 우리 군이 항모강습단 해상전투지휘관 임무를, 2016년엔 원정강습단 해상전투지휘관 임무를 각각 최초로 수행했다. 이때부터 림팩에 참가한 우리 군이 다른 국가 전력을 지휘하는 건 익숙한 일이 됐다고 할 수 있다.
2018년엔 해상전투지휘관 임무를 맡아 8개국 함정 10척을 지휘하는 임무를 완수했다. 2020년 훈련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소규모로 진행됐으나, 이때 우리 해군은 기동부대사령관 임무를 맡았다.
예비역 해군은 "우리는 많은 성장통을 겪으며 능력을 갖췄고 이젠 대양에서도 안정적으로 작전할 수 있는 운용술이 있다"며 "올해 훈련 주제인 '유능하고 적응력 있는 파트너들'(Capable, Adaptive, Partners)에 어울린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라고 했다.
hgo@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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