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간 '연쇄 살해'..그는 왜 고양이를 해쳤을까
2019년부터 이어진 포항 한동대·시내 길고양이 살해
동물학대 좀 더 민감했더라면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4개월령 아기고양이 ‘홍시’를 살해한 남자가 붙잡혔다. 포항북부경찰서는 동물보호법 등 위반 혐의로 긴급 체포한 그에 대해 구속 수사를 진행 중이다. 대구지방법원 포항지원은 피의자가 도주 우려가 있는 것으로 보고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경찰은 2020년에 일어난 포항 한동대학교 고양이 연쇄 살인사건, 포항시 북구 일대에서 일어난 동물 학대 사건 10여 건과 그의 연관성에 대해서도 살펴보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그리고 남자는 묵비권을 행사 중이다. (※ 동물의 사체, 잔혹한 장면이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미제로 남겨졌던 7마리의 죽음
한동대학교에는 길고양이 돌봄 동아리 ‘한동냥이’가 있다. 한동냥이 학생들은 3년 전 끔찍한 고양이 학대를 목격해야 했다. 당시 한동대에서는 2019년 8월부터 2020년 3월까지 약 7개월간 7마리의 길고양이가 상해를 입거나 죽은 채 발견됐다.
뇽뇽이와 짜장이는 발이 잘려 나타났고, 또 다른 검은 고양이는 덫에 걸려 구조됐다. 고양이의 귀나 발목 등 신체 부위 일부만 발견되는 사례도 있었다. 교내 급식소가 파손되고 곳곳에 ‘고양이 밥 주지 말라’ ‘한동냥이 활동을 멈추라’는 엉터리 경고장이 붙는 일이 많았다. 확인된 건 7마리였지만 최소 10마리 이상의 고양이들이 폭력과 살해의 대상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 중엔 보란 듯이 사체를 전시한 범행들이 있었다. 2020년 3월9일, 교내 건물 옆 6m 높이의 나무에 한 길고양이 사체가 매달렸다. 교수형에 처하듯 와이어로 목을 상태였다. 불과 며칠 후 3월15일, 이번엔 많은 학생이 지나다니는 통행로 한가운데서 초록색 매듭줄과 새로운 고양이 사체가 발견됐다. 교내뿐이 아니었다. 이후 포항시 북구 한 골목길 담벼락에서도 와이어에 묶인 채 목매달린 고양이 사체가 발견됐다.(▷한동대학교 길고양이 연쇄 학대사건 일자별 경과) 범행 수법이나 일련의 사건 맥락에서 동일범의 소행이란 추측이 나왔지만 범인은 끝내 잡히지 않고 수사가 마무리됐다.
학대자가 다시 나타났다
그리고 지난 6월21일, 다시 길고양이가 목매달린 사체가 포항 시내에서 발견됐다. 홍시였다. 이제 막 세상을 배우기 시작한 4개월령의 아기 고양이였다. 제보 사진 속 홍시의 얼굴은 무참히 뭉개져 있었다. 얼굴에는 혈흔이 잔뜩 있었고 턱은 맞아서 돌아간 듯 모양새가 이상했다. 눈은 형체를 찾기 어려웠다. 무참한 폭력의 흔적이라고밖에 볼 수 없었다.
홍시의 발목에서는 두꺼운 팔찌를 찬 듯 균일하게 둘러진 붉은 자국도 관찰됐다. 과거 한동대에서 피해를 당한 고양이들이 덫에 걸려 발목이 잘렸던 것처럼, 홍시 역시 덫에 걸렸던 것으로 추정된다. 덫에 걸린 홍시는 얼굴이 망가지도록 폭행을 당하고 목매달린 것이 아닌가 싶다.
학대자는 모자를 눌러 쓰고 흰색 장갑을 갖춰 낀 채 범행을 저질렀다. 그는 초등학교 앞 길목에 마련돼 있던 길고양이 급식소를 파손했고, 벽에 ‘고양이에게 밥을 주지 말라’는 경고장을 붙였다. 경고장에는 그가 위조한 포항시의 로고까지 정성스럽게 프린트되어 있었다. 그는 급식소를 박살내고 그 위에 홍시의 사체를 매달았다. 그러고는 누가 볼세라 후다닥 뛰어 범행 현장을 벗어났다. 이 모습이 근처에 주차돼 있던 차량 블랙박스에 모두 촬영됐다.
홍시의 사체를 발견한 것은 근처 초등학교의 학생들이었다. 범행 장소가 학교와 고작 길 하나를 사이에 둔 위치였으니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학생의 신고로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홍시의 사체와 엉터리 경고장을 증거로 수집했고, 평소 홍시를 돌보던 케어테이커(고양이 돌봄 시민활동가)가 곧장 인근 차량 차주들에게 연락해 블랙박스 자료를 모았다. 경찰은 시시티브이(CCTV)와 블랙박스를 분석해 사건 발생 9일 만에 피의자를 붙잡았다. 그리고 그의 지문을 대조한 결과, 2020년 3월 포항 시내에 고양이를 목매달았던 학대사건 용의자의 지문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3년 전에 멈출 수 있었던 사건
그는 도대체 왜 수차례 동물을 목매달아 죽였을까. 왜 엉터리 경고문을 붙이며 길고양이와 케어테이커를 혐오의 대상으로 삼았을까. 홍시를 살해한 남성뿐이 아니다. 서울 마포구 경의선숲길에서 사랑받았던 고양이 ‘자두’를 살해한 이, 경남 창원에서 고양이 ‘두부’를 담벼락에 수차례 패대기쳐 죽인 이, 포항 폐양어장에 길고양이를 가두고 잔인하게 살해하고 해부했던 이, 활로 고양이를 쏴서 죽이거나 불 태워죽인 뒤 이를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서 보고 즐겼던 많은 이들. 이들은 도대체 왜 힘없는 동물을 해치고 전시하는가.
홍시사건 피의자의 소지품 중에는 고양이를 계획적으로 고문하고 살해한 방법을 기록한 노트도 있었다고 한다. 일기 형식으로 기록된 이 노트는 그가 그동안 벌여온 동물학대가 단순한 우발 범죄가 아닌 치밀하고 계획적인 고의 범죄라는 것을 보여준다. 만약 이번에 그가 검거되지 않았더라면 길고양이들은 다른 장소에서 또 무참히 희생됐을 것이다. 카라는 그를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고발한 상태다. 우리는 그가 법정최고형인 징역 3년, 벌금 3000만원에 처해지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러나 홍시의 죽음 애도하며 그의 엄벌을 바라는 것만이 활동의 전부가 될 수는 없다. 길고양이나 햄스터 등의 소동물을 살해하거나 학대하고 전시하는 일이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다. 범행을 막기 위해선 동물을 학대하는 범죄자들에 대해 알아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는 동물학대자에 대한 프로파일링 보고서가 단 한 권도 없다.
동물수사 전담팀이 있었더라면…
동물학대 사건, 특히 길고양이와 관련한 사건은 종종 가볍게 여겨진다. 경찰에 신고하면 외려 ‘그게 처벌 대상인가요’ 혹은 ‘그것도 동물학대인가요?’라고 반문하기도 한다. 때문에 사건 현장에서 카라 활동가들이 경찰에게 동물보호법을 상세히 설명하고, 사체나 시시티브이 등 증거물 확보를 요청해야 하는 일이 자주 발생한다. 경찰 개인의 무능이라기보다는 시스템의 문제다.
대부분 동물학대 사건은 관할 경찰서 수사과 경제팀이나 지능팀이 당담한다. 경제팀, 지능팀은 평소에 도박이나 사기, 보이스피싱 같은 범죄를 수사하는 곳이다. 그런 수사관들이 갑자기 동물 살해나 폭행, 방치 학대 등의 범죄를 맡게 되는 것이다. 경찰도 문제점이 지적되자 지난해 동물학대 범죄 수사 매뉴얼을 대폭 수정하고, 자문위원회를 구성했지만 아직까지 현장에 반영되고 있는지는 미지수다.
만약 미국 로스앤젤레스처럼 동물범죄 전담 수사팀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로스앤젤레스 경찰은 2011년부터 시 경찰과 동물전문가들로 구성된 전담팀이 동물 범죄를 수사한다. 동물학대 범죄를 사회적 문제로 적극 인식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이번 홍시사건을 맡은 포항 북부경찰서는 이전과 달리 고양이 사체와 관련 영상들을 증거물로 모두 수집했고 발빠르게 수사해 범인을 검거했다. 3월에 발생했던 포항 폐양어장 길고양이 살해사건 때와는 사뭇 다른, 고무적인 모습이다. 우리는 경찰이 이렇게 변화한 건 ‘동물학대는 심각한 범죄’라는 시민 의식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깟 고양이 한 마리’를 위한 세상
두해 전 동묘시장에서 길고양이 한 마리가 올가미에 묶여 끌려다녔던 사건 현장에 출동한 일이 있었다. 당시 고양이를 구조하는 카라 활동가들에게 누군가가 “그깟 고양이 한 마리 때문에 난리들이야”라며 화를 낸 적이 있었다. 그러나 당시 현장에서 구조된 고양이는 ‘그깟’ 고양이 한 마리가 아니다. 동물을 함부로 대하는 태도는 생명을 무참히 해쳐도 아무렇지 않은 사회로 이어진다.
그렇기에 한동대 학생들도, 많은 시민과 케어테이커들도 그 한 마리의 고양이를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 우리는 사회가 그깟 고양이 한 마리, 개 한 마리, 햄스터 한 마리, 돼지와 닭 한 마리의 생명도 소중히 여기고 연대하길 바란다. 그럴 때에야 비로소 이 끔찍한 동물 살해의 연속을 끊고, 폭력의 재발을 멈출 수 있기 때문이다.
글 김나연 카라 활동가, 사진 동물권행동 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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