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즈상 허준이, 후학에 한말씀.."가끔은 포기하며 재미있게 공부해야"

"지난 길 구불구불했지만, 저에겐 그것이 최적이었다고 생각"

수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을 받은 허준이 프린스턴대 교수 겸 고등과학원 석학교수가 8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을 통해 입국해 아들에게 꽃다발을 받은 뒤 기념촬영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계로는 처음으로 ‘수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을 받은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 겸 한국고등과학원(KIAS) 석학교수(39)가 국내에 들어왔다. 허 교수는 수학자를 꿈꾸는 후학들에게 “가끔은 적당할 때 포기할 줄 아는 것도 중요하다”며 “본인이나 인류가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에 수년간 집착하기보다 마음을 편안히 먹고 재미를 느끼는 방향으로 공부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8일 오전 10시 10분쯤 인천국제공항 입국장에 편한 셔츠와 반바지 차림으로 등장한 허 교수는 자신을 기다리던 아들 허단 군(7)을 보자 한달음에 달려가 포옹하며 밝게 웃었다.

허 교수는 공항에서 취재진과 만나 필즈상 수상과 관련한 소회와 향후 국내 일정에 대해 밝혔다.

그는 취재진에게 “저와 함께 연구한 동료들을 대표해서 큰 상을 받게 돼 기쁘다”며 “가족과 친구들, 학계 관계자들, 그리고 다른 많은 분들이 함께 기뻐해 주셔서 더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한국 수학계 발전을 위해서 제가 해야 할 역할이 더 커진 듯 해서 마음이 무겁기도 하다”면서 “하지만 전체적으로 행복하고 기쁘다”고 밝혔다.

허 교수는 올해 여름 고등과학원에서 연구를 이어가며 과학원 소속 연구원들과 함께 공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당장 다음 주에 고등과학원에서 강연회가 열린다.

가족들과도 시간을 보낼 예정이다. 허 교수는 “이달 부모님을 모시고 제주도에 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허 교수는 수학자를 꿈꾸는 후학들에게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했다. 그는 “수학은 진득하게 붙잡고 앉아서 절대 포기하지 않고 10년이고 20년이고 계속 공부하는 모습이 흔히 강조돼 왔다”며 “그런 생각에 대해 개인적으로 느낀 점은 가끔은 적당할 때 포기할 줄 아는 마음이 중요한 것 같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허 교수는 “개인적으로 어려운 문제를 이해할 준비가 안 됐거나 본인뿐만 아니라 인류 전체의 발전 상황을 봤을 때 아직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를 수년씩 붙잡고 집착하기보다는 마음을 편안히 먹고 본인의 마음이 가고 재미를 느끼는 공부를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허 교수는 한국에서 고교를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봐 서울대 물리천문학부에 입학했다. 석사 때에야 전공을 수학으로 바꿨다. ‘늦깎이 수학 천재’로 불리는 이유다. 허 교수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청년들에게 조언을 했다.

그는 “많은 10대, 20대들처럼 저도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며 “지금 생각해보니 제가 걸어온 길이 구불구불했지만, 저에겐 그것이 가장 최적화된 길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마음을 여유롭게 가지고 천천히 걸어나가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허 교수는 자신이 필즈상을 받을 수 있었던 중요한 동력은 자신의 인생 전반을 함께 한 은사와 동료들이었다며 겸손함을 보였다. 그는 “살면서 배워야 할 일이 있을 때 그걸 정확히 가르쳐 주실 수 있는 분들을 순서대로 만났다”며 “(그분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허 교수는 “한국 수학자들이 열심히 공부한 만큼 최근 눈부신 성과를 이뤄내고 있다”며 “특히 젊은 학자들 중에 도드라지게 뛰어난 분들이 많이 있다”고 말했다. 허 교수는 “한국이 문화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많이 발전한 만큼 학문적으로 수준이 높아지는 순서를 밟고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