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한국 수학의 해"

고재원 기자 ,박정연 기자,헬싱키=김미래 기자,헬싱키=이채린 기자 2022. 7. 8.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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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등급 최단시간 달성..허준이 교수 필즈상 수상 등
허준이 교수가 핀란드 헬싱키 알토대에서 열린 필즈상 시상식에서 필즈상을 수상하고 있다. 수학동아 제공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연구활동을 벌여온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고등과학원 석학교수)가 5일 수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을 받았다. 수학계의 오랜 난제이던 ‘로타 추측’의 일부인 ‘리드 추측’을 해결한 공로를 인정받아 한국계 수학자 최초로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앞서 올 2월에는 국제수학연맹(IMU)이 한국의 국가 수학 등급을 4그룹에서 최고등급인 5그룹으로 승격시키면서 연이은 경사라고 보고 있다.  수학계 관계자들은 "한국이 세계 수학계 리더 역할을 맡게 됐다"며 "이제 한국을 빼놓고 수학을 논할 수 없게 됐다"고 평가했다.

○ 늦깎이 국제 무대 데뷔한 한국 수학의 급성장

필즈상은 수학에서 탁월한 업적을 낸 만 40세 이하 젊은 수학자를 대상으로 2∼4명에게 수여되는 상이다. 1936년 첫 시상을 시작해 4년마다 세계수학자대회(ICM)에서 시상을 해왔다. 수학자들에게는 최고의 영예로 평가받는다. 

수학계에서는 이번 필즈상 수상을 국내 수학계의 쾌거로 보고 있다. 한국에서 태어나지만 않았을 뿐 한국 초중고교 시스템과 대학, 대학원에서 배출된 인재가 이룬 성과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실제 허 교수의 필즈상 수상을 가능케 한 연구성과도 서울대 석사과정 때의 연구가 근간이 됐다.

한국은 현대적 개념의 수학의 역사가 비교적 짧은 편이다. 가입 여부 자체가 해당 국가가 일정 수준 이상의 수학 실력과 자격을 갖춘 것으로 평가되는 국제수학연맹(IMU)에는 1981년에야 가입했다. 1951년 가입한 일본과 비교해 30년이나 늦다. 후발주자로 선두주자들로 볼 수 있는 미국과 영국, 독일, 일본, 중국 등을 따라잡기 위해 노력해왔다. 한국 수학자들의 자생적 노력을 통해 수학 관련 과학논문인용색인(SCI)급 논문 출판수를 세계 10위권 초반으로 끌어올리고, 순수이론기초과학 연구기관인 KAIST 부설 고등과학원을 1996년, 수학분야 정부출연연구기관인 국가수리과학연구소를 2005년 설립하는 등 관련 투자도 늘렸다. 그 과정서 젊은 수학자 양성도 늘어났다.  한국은 지난 2014년 수학올림픽이라 부르는 세계수학자대회(ICM)를 일본과 중국, 인도에 이어 아시아에서 네번째로 개최하기도 했다.

지금의 허 교수도 그런 노력의 과정에서 주목을 받게 된 젊은 수학자다. 허 교수 역시 그런 점을 인정하고 있다. 허 교수 국적이 미국이라는 점이 알려지며 한국 수학계의 쾌거 맞냐는 의문들이 제시되지만 허 교수는 “한국에서의 초중고 그리고 대학, 대학원 시절이 지금의 나를 만드는데 자양분이 됐다”며 한국에서의 수학 교육이 필즈상 수상을 밑거름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창옥 KAIST 수리과학과 교수(한국산업응용수학회 회장)는 “허 교수 같은 사람이 나타난 것은 한국 수학계 전체 토양이 만들어졌다는 의미”라며 “한국도 세계적 수학자를 길러낼 수 있는 것을 입증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허 교수처럼 필즈상 후보로서 충분한 업적과 자격이 있는 젊은 연구자들은 더 있다. 수학계에선 오성진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수학과 교수, 최경수 고등과학원 수학부 교수 등을 차기 필즈상 후보로 꼽고 있다. 

국제수학연맹(IMU)이 한국 수학의 국가 등급을 4그룹에서 최고 등급인 5그룹으로 승격을 확정했다. 사진은 2014 서울세계수학자대회 당시의 모습. 연합뉴스 제공

○ 높아진 국제위상 만큼 자유로운 연구풍토 조성해야

한국 수학계의 노력은 올해 연이어 결실을 맺고 있다. IMU가 지난 2월 한국 수학의 국가 등급을 4그룹에서 최고 등급인 5그룹으로 승격했다. 역대 회원 국가 중 최단 기간에 최고 그룹으로 승격한 것이다. 5그룹 승격에 따라 한국은 지난 2월부터 IMU 총회 등의 선거 등에서 5표의 투표권을 행사하고 있다. 금종해 대한수학회장(고등과학원 교수)의 IMU 집행위원 선출도 지난 5일 결정됐다. 집행위원은 IMU 운영 방향과 목표 등을 설정하는 역할을 맡는다.세계 수학계에서 한국 수학의 위상이 크게 높아진 것이다. 

김현민 부산대 수학과 교수(국가수리과학연구소장) 역시 “한국 수학이 국제사회 인정을 받고 있다”며 “학자들만의 노력이 아니라 국민들의 지원도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아직 풀어야할 과제도 산적해 있다. 수학계 전문가들은 가장 시급한 문제로 국내 수학 연구 생태계 재편을 언급했다. 수학 연구자들이 수학을 연구할 수 있는 안정적 자리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가령 국내 사립대들은 취업률을 이유로 수학과를 없애고 있다.

동아일보DB

하승열 서울대 수리과학부 교수는 “정부출연연구소의 수학 관련 일자리를 확보하는 등 관련 정부 투자가 늘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형주 아주대 수학과 석좌교수는 “허준이 교수가 석사학위 지도교수이던 김영훈 서울대 교수나 한국에서 잠시 강의했던 일본의 히로나카 헤이스케 교수를 좋은 멘토로 둬 성장했듯 학생들이 멘토를 만나게 하고 롤모델을 지속으로 제시하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허 교수 역시 국내 수학자들이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는 평가와 함께 그들을 위한 안정적 연구 생태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평가했다. 그는 “젊음 수학자들이 즐겁게 큰 프로젝트를 추진할 수 있는 여유롭고 자유로운 연구환경이 마련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고재원 기자 ,박정연 기자,헬싱키=김미래 기자,헬싱키=이채린 기자 jawon1212@donga.com,hesse@donga.com,futurekim93@donga.com,rini11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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