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 쥐와 가족으로 살았던 2년.."빠른 이별이 힘들어요" [유가소]

고은경 2022. 7. 8. 11: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유기동물 가족을 소개합니다] 
<6> 래트  '구름' '별' 입양한 정혜원씨
편집자주
매년 10만 마리 이상 유실∙유기동물이 발생합니다. 이 가운데 가족에게 돌아가거나 새 가족을 만난 경우는 10마리 중 4마리에 불과합니다. 특히 품종이 없거나 나이든 경우, 중대형견은 입양처를 찾기 더욱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들도 사랑받을 자격은 충분합니다. '유가소'는 유기동물을 입양해 행복하게 살고 있는 가족의 이야기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애니로그 뉴스레터 구독하러 가기: http://reurl.kr/7B137456RP

애니로그 유튜브 보러 가기: https://bit.ly/3Matlmq

실험에 동원됐다 구조된 래트 '구름'과 '별'을 입양한 정혜원씨가 지난달 30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구름과 별의 사진을 소개하고 있다. 김하겸 인턴기자
"이건 구름과 별이 살던 집이고, 이건 깔아주던 담요예요. 버리지 못하고 갖고 있어요."
실험 쥐 입양자 정혜원씨

동물실험에 동원됐다 안락사 직전 구조된 래트(시궁쥐) '구름'과 '별'을 입양한 정혜원(38)씨는 이들이 세상을 떠난 지 2년이 넘었지만 사용했던 물건을 차마 버리지 못하고 있다. 2년 동안 함께 산 구름, 별과 쌓은 추억이 담겨 있어서다. 정씨는 래트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해 최근 구름과 별의 양육 일기를 담은 '실험 쥐 구름과 별'(책공장더불어)을 출간했다. 또 구름과 별이 세상을 떠난 이후로도 4,600여 명이 활동하는 국내 최대 래트 커뮤니티 운영자로 활동 중이다. 정씨는 최근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실험동물로 쥐가 가장 많이 사용된다"며 "구름과 별을 만난 이후 실험동물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이 선득해져 예사로 흘릴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해 국내 동물실험에 동원된 동물은 488만여 마리로 역대 최대 규모다. 설치류(353만7,771마리)가 가장 많았고, 이 중 래트는 30만6,288마리가 희생됐다. 래트는 마우스(생쥐)보다 덩치는 크지만 성격은 온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제동물보호단체 동물옹호자인터내셔널(ADI)에 따르면 래트는 람의 목소리에 반응하고 쓰다듬어 주고 함께 노는 것을 즐긴다. 하지만 래트를 포함한 쥐들은 해부나 독성실험에 활용된 후 대부분 실험실 내에서 안락사된다.


실험실 쥐 입양 공고 보고 바로 입양 결심

꼬리에 표시가 있는 래트를 '별', 없는 래트를 '구름'이라고 이름 지었지만 표시가 사라지면서 나중에는 둘을 구분하기 어렵게 됐다. 정혜원씨 제공

2017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실험에 활용된 쥐 20마리가 세상 밖으로 나왔다. 동물전문 출판사 '책공장더불어'를 운영하는 김보경 대표는 동물실험윤리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는 대학에서 실험 이후 살아가는 데 문제 없는 쥐들을 안락사하지 않는 조건으로 실험을 승인했다. 실험이 끝난 뒤 나온 20마리 중 2마리를 입양한 게 정씨다.

정씨는 "당시 기르던 햄스터보다 좀 덩치가 큰 동물을 키워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중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래트 입양 공고를 보게 됐다"며 "이왕 키울 거면 갈 곳 없는 애들을 데리고 오는 게 나을 것 같아 바로 입양을 신청했다"고 설명했다.

정씨는 래트 2마리에게 구름과 별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고 다가가려 노력했지만 이들은 죽는 날까지 사람을 따르지 않았다. 정씨는 "실험에 동원된 기간은 태어나자마자 6주 정도였다"며 "이후 2년을 함께 살았지만 사람을 경계하는 마음을 늦추지 않아 병원에 데려가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마지막까지 까칠했던 실험 쥐, 그래도 좋아"

정혜원씨가 쓴 '실험 쥐 구름과 별' 책에 들어간 그림. 정혜원씨 제공

정씨는 이들이 사람을 따르지 않은 건 실험에 동원된 경험이 있어서라고 조심스럽게 추측한다. 까칠한 성격의 구름과 별을 키우면서 래트가 정말 순한 동물인지 궁금했고, 가정에서 번식한 래트 2마리를 입양했는데, 이들은 온순하고 사람을 잘 따랐다고 한다. 또 래트 커뮤니티에서 '키우는 래트가 공격성이 있어 고민'이라는 글이 올라왔는데 이 역시 실험실 출신이었다. 정씨는 "전문가가 아니라 단정 지을 수는 없다"면서도 "실험실에서 힘들었던 기억이 래트에게 나쁜 영향을 끼친 것 아닐까 생각하게 됐다"고 전했다.

구름과 별이 사람을 따르지는 않았지만 먹성은 좋았고, 자기들끼리는 잘 지냈다. 또 살갑진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정씨가 손등을 대도 피하지 않을 정도가 됐다. 정씨는 "반려동물이라고 반려인에게 꼭 살가워야 할 필요는 없다"며 "곁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좋았고 이런 관계도 얼마든지 성립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실험실 출신 래트 '구름'과 '별'은 사람을 따르진 않았지만 먹는 것을 좋아하고 자기들끼리는 잘 지냈다. 정혜원씨 제공

개나 고양이보다 덩치가 작은 동물은 기르기가 조금 수월할까. 정씨는 "그렇지만은 않다"고 한다. 래트는 야행성이기 때문에 밤에 활동을 많이 한다. 정씨는 구름과 별이 밤에 쳇바퀴를 돌리고 활동하는 것을 '래트랜드 야간개장'이라고 불렀다. 키우는 사람이 많지 않다 보니 사료 구하기도 쉽지 않다. 해외에서 들여오는 래트용 사료가 있는데, 수입이 끊길 때에는 각종 곡식을 섞어 먹여야 한다. 무엇보다 힘든 건 청소다. 배변 냄새가 심하다 보니 아침 저녁으로 대형 우리를 청소하고, 담요와 패드도 매일 빨아야 했다.


가장 힘든 건 "이별의 아픔을 빨리 겪어야 한다"는 점

실험 쥐를 입양한 정혜원씨가 지난달 30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인터뷰를 갖고 '구름'과 '별' 사진을 들어 보이고 있다. 김하겸 인턴기자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힘든 건 이별의 아픔을 빨리 겪어야 한다는 점이다. 래트의 수명은 2~3년 정도로 짧다.

"구름과 별은 종양이 갑자기 커지고, 급속도로 악화됐어요. 소동물이 아프면 진료받을 병원을 찾기도 힘들어요. 구름과 별은 수술하지 않았지만 래트 커뮤니티를 보면 종양을 제거해도 또 재발해서 세상을 떠나는 경우가 많다고 하더라고요."

실험 쥐 출신 '구름'과 '별'의 생전 모습. 정혜원씨 제공

이런 이유로 정씨는 래트를 키우라 권하고 싶진 않다고 했다. 하지만 알음알음으로 실험실 밖으로 나왔거나 도움이 필요한 래트 입양을 고려하고 있다면 확실히 준비를 한 상태에서 입양할 것을 조언했다. 그는 "래트 커뮤니티에 가입하려면 먹이, 환경, 질병, 암수구분법 등 10가지 준비사항을 읽고 동의해야 한다"며 "작은 동물이라 키우기 쉽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 특히 병원을 확보할 수 있는지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은경 애니로그랩장 scoopkoh@hankookilbo.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