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 30초만에 잡혀가니"..탄압 피해 반전 메시지 내는 러 예술가들

강영진 2022. 7. 8.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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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내용 요약
"시위를 벌이면 30초만에 붙잡혀 간다"며
소셜 미디어에 반전 작품 사진 올려
러군에 어린이 숨진 장소 집 벽에 기록하기도

[모스크바=AP/뉴시스] 모스크바에 기반을 둔 판화가 세르게이 베소프가 5일(현지시간) 모스크바 자신의 작업실에서 평화를 기원하는 포스터를 들고 있다. 베소프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는 것을 보고 침묵할 수 없어 포스터 작업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런 시위에 대한 러시아 정부의 대대적인 단속에도 일부 러시아인들은 침략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이어가고 있다. 2022.07.06.


[서울=뉴시스] 강영진 기자 = 새벽 4시 텅빈 모스크바 제2순환로에 담요를 둘러싼 두 여인이 택시에서 내렸다. 속에는 피를 뜻하는 붉은 페인트를 뿌린 흰 옷을 입고 있다. 두 사람은 체포될 것이 두려워 서둘러 할 일을 마쳤다.

담요를 벗고 포즈를 취하며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3장을 찍고는 서둘러 도망쳤다. 이 사진은 반전 활동가들의 텔레그램 등 소셜미디어(SNS)에 널리 퍼졌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7일(현지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정부가 전쟁 반대자를 가혹하게 탄압하면서 항의 표시도 창의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백지를 들고 전쟁 반대 뜻을 암시하기만 해도 잡혀가기 때문이다.

위 사진을 찍은 안넨코바는 "시위 30초만에 붙잡혀간다"고 했다. 그와 함께 한 페로바는 "정말 겁났다. 아드레날린이 쏟아졌다"고 했다. 페로바는 "우리가 이런 일을 벌이지 않으면 사람들은 선전에 묻혀 실상을 알지 못하게 된다"고 했다. 안넨코바는 "사람들이 인터넷에 의존하고 인스타그램을 많이 쓰기 때문에 글보다는 이런 사진이 더 영향이 크다"고 했다.

반전 활동가들이 공동묘지에서 해골무늬 옷을 입고 돈에 반전 글을 쓰고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 장식의 빵을 만들며 공원 시설에 반전 표시를 남긴다. 한 여성은 큰 소리로 소련 시대 유명 가수 블라디미르 비소츠크가 부른 나치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노래를 불렀다가 체포됐다. 가사 중 한 대목이 "과거엔 모든 것이 번영했지만 지금은 모든 것이 불탄다"는 내용이다.

예카테린부르그의 거리 미술가 티포페이 라댜는 지난달 12일 건물에 달린 망치와 낫이 표현된 간판 옆에 소련 시대 글자체로 커다랗게 "과거 속에 산다"는 문구를 써 붙였다. 지난해 떠오른 아이디어를 실행한 것이다. 자신이 선견지명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당국이 며칠 뒤 제거했다.

화가 데니스 무스타핀은 지난 12일 러시아의 날에 국방부에 "나의 러시아의 날은 아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러시아 국기를 달았다가 체포돼 15일 동안 갇혔다. 친구인 화가 안드레이 쿠즈킨은 자신의 배설물과 피로 "피비린내 나는 더러운 전쟁"이라고 쓴 작품 "혼합물"을 그렸다.

그는 "내 생각을 표현하고 싶었다. 다른 사람에게 전쟁이 피와 배설물의 혼합물이라는 걸 알리고 싶었다. 왜 그런지 우리 사회와 푸틴이 이 단순한 진리를 모른다"고 했다. 그는 억압적인 분위기 때문에 항의가 예술적이 됐다고 했다. "강력한 반전 메시지를 담은 작품들을 전시할 수 없어서 작품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리고 있다"고 했다.

반전 예술가 단체인 사자(死者)의 당은 러시아의 전쟁 지지 분위기를 정치적, 문화적 "공동묘지"로 표현한다. 해골이 그려진 마스크를와 옷을 입고 나치의 러시아 침공과 레닌그라드 봉쇄 당시 희생자들이 묻힌 공동묘지에서 항의 글이 담긴 포스터를 들었다.

"러시아 정부가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전세계에 파괴와 죽음을 선사했다"고 한 시위 가담자가 말했다. 이들은 푸틴 정부가 대중을 속이고 있다고 주장한다. "멋진 사람들이 죽어간다는 것이 큰 문제"라고도 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근처 작은 마을 루스코-비소츠코예에서 쇼핑센터를 운영하는 드미트리 스쿠리힌은 반체제 인사 알렉세이 나발니가 투옥된 지난해 푸틴이 물러날 때까지 수염을 깍지 않기로 했다. 그는 자기 상점 벽에 러시아군이 공격한 우크라이나 마을 이름을 써두고 있다.

그의 다섯 딸 중 한 명이 어릴 적 호흡곤란을 겪었다. 몇 번이나 입술이 새파랗게 질렸고 부부는 아이가 클 때까지 마음을 놓지 못했다. "전쟁이 터지면서 아이들이 숨진 사진을 보고 참을 수가 없었다. 산산조각 난 채로 말이다. 어린이들이 산산조각난 마을의 이름을 붉은 피 색갈로 쓰지 않고는 미칠 것 같았다"고 말하며 목이 맸다.

한 익명의 활동가는 모스크바 번화가에서 죽은 것처럼 누워 있는 행위로 러시아군의 부차 학살에 항의했다. 이 장면은 러시아 독립 언론 홀로드가 실었다.

러시아 언론인 페테르 루자빈은 현재 트빌리시에 망명해 있다. 최근 텔레그램 채널을 만들고 잘 알려지지 않은 반전활동 사진을 수집해 올린다. "이들 예술 작품의 99%는 예술가가 만든 것이 아니며 보통 사람들이 여러 지방의 자기 집주변에해놓은 것이다. 벽에다 쓴 것들"이라고 했다. 반전 슬로건과 우크라이나 국기가 건물, 다리, 울타리, 가로등, 버스 정류장, 고속도로변, 기차, 버스에 올라 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전쟁에 반대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얼마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전쟁에 반대해 할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yjkang1@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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