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림선 개통! 관악산 특집 : 관양능선] 관악산의 재발견! 서울 너머 남쪽 산줄기를 아시나요?
글 신준범 기자 2022. 7. 8. 09:50
관양능선
4호선 인덕원역과 신림선 관악산역 잇는 은밀한 암릉산행 11km
4호선 인덕원역과 신림선 관악산역 잇는 은밀한 암릉산행 11km
고요하고 싶다면, 관양능선을 권한다. 서울 사람은 잘 모르는 관악산 넘어 남쪽. 고요한 산줄기에 비경이 널렸다. 정상 남쪽으로 뻗은 산줄기라 관악산 남릉 혹은 남부능선이라고도 부르며, 보통 관양능선이라 부른다. 해방 직후 이곳에 ‘관악산 양지바른 곳’이라 하여 관양초등학교를 지었고, 이것이 관양동이란 동네 이름과 능선 이름으로 되었다.
서울 입장에선 북한산이 북풍을 막아 주는 배산임수의 진산이고, 관악산은 남쪽 병풍이다. 안양에선 관악산이 배산임수의 진산이다. 안양 입장에선 관악산이 북한산인 것. 관악산 최고 비경 코스로 꼽히는 사당능선과 균형을 이룬 것이 관양능선이지만, 등산 꽤 했다는 사람도 관양능선을 아는 이는 드물다. 고요해서 좋은, 혼자서 아껴 오르고 싶은 관악산 양지 바른 능선으로 간다.
교통이 불편한 곳에서 산행을 시작해, 교통이 편한 곳에서 산행을 마친다는 진리를 따른다. 지하철 4호선 인덕원역에서 버스로 이동해 관양중교에서 하차, 들머리로 향한다. 권지혜(이대산악부)·한효희(성대산악부OB)씨가 가보지 않은 능선에 대한 설렘을 안고 걷는다.
산길이 있던 곳은 공사장이 되었다. ‘관양고 주변 도시개발사업 조성공사’ 안내판과 우회 등산로 표시가 있다. 산 입구는 거대한 공사 현장이 되었다. 아낌없이 주는 산은 언제까지 내어주기만 해야 할까? 여간한 국립공원을 압도하는 암릉미를 가지고 있으나, 정상엔 온갖 탑과 건물로 가득하고, 서울대학교는 능선까지 닿을 기세로 아무런 비판 없이 산을 부숴 왔고, 경인교대 공사를 비롯 온갖 개발에 시달려 왔지만 어떤 환경단체도 지켜주려 하지 않았다.
관악산은 지금의 한국을 있게 한 밑거름이다. 1970~1980년대 수도권 서남부 근로자들의 땀이 나라를 일으켜 세우는 데 한몫했고, 관악산은 이들의 뒷산으로 주말이면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오아시스 역할을 했다. 북한산이 국립공원으로 보호 받을 때도 이곳은 온갖 개발로 파헤쳐지면서도 묵묵히 감내해 온 숨은 공신인 셈이다. 과소평가 받은 명산 관악의 은밀한 능선으로 든다.
산림욕장 특유의 상쾌함에 머리가 맑아진다. 잣나무, 밤나무, 상수리나무, 층층나무, 떡갈나무, 생강나무, 아카시나무, 단풍나무가 정돈되어 있다. 사람의 손길로 만든 숲이지만 격식을 갖춘 정갈한 초록 인사는 정중함에 가깝다. 약수터, 화원, 사색의 숲을 지나자 비로소 근육이 말랑말랑해지고, 굳은 몸과 마음이 풀려난다.
깨끗한 이정표와 계단이 산길을 안내한다. 산길이 거미줄처럼 복잡해 길찾기 어렵기로 유명했으나, 근래에 지자체에서 관심을 가져 이정표가 세워지고 있다. 계단을 지나면 수수께끼 풀 듯 작은 바위가 이어진다. 숨이 조금 가빠진다 싶을 때 시원한 팔각정이 마중 나온다. 해발 242m로 낮지만 아파트 숲이 빽빽이 드러난다. 첫 갈증이 올 때 나타난 적재적소의 쉼터다.
관양능선의 맛은 지금부터다. 어렵지 않지만 긴장을 놓을 수도 없는 바윗길이 연달아 나타난다. 비탈을 점령한 큼직한 바위, 어디로 오를지 라인을 골라 한발 한발 오른다. 맛있는 빵을 아껴 먹듯 야금야금 바위를 오른다. 암릉산행 특유의 감칠맛이 발끝에서 몸 전체로 퍼진다. 화강암의 진득한 촉감과 한 마디 올라설 때마다 펼쳐지는 시원한 경치! 관악산 양지 바른 능선에서 보내는 시간이 달콤하다.
육봉능선·관양능선 만나는 최고 전망대
비 예보가 있어서인지 사람이 드물다. 산행엔 최적이다. 무덥지 않고, 인적 없어, 능선을 통째로 전세 낸 듯 호사를 누린다. 거대한 나무 성채가 빨리 오라고 손짓한다. 지자체에서 새로 세운 전망데크다. 거대한 크기에서 첨봉 위의 성채처럼 압도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다시 한 번 빽빽한 아파트 숲에 놀란다. 청계산·광교산이 도시를 둘러 감싸고 있다. 저녁에 찾는다면 야경이 무척 화려할 듯하다. 고도를 높이자 관양능선의 진면모가 드러난다. 거친 공룡의 등골이 날을 세우고 이어진다. 우회해서 오른 암릉, 입이 딱 벌어진다. 지나온 암릉줄기와 평행을 이룬 무명의 암릉줄기, 마치 용아장성과 공룡능선의 경쟁처럼 수려함에 수려함을 더해 즐거움이 두 배다.
관양능선은 처음이라는 한효희·권지혜씨가 “관악산에 이렇게 좋은 곳이 있는 줄 몰랐다”며 “관악산을 새로 발견한 기분”이라고 한다. 육봉능선과 관양능선이 만나는 곳이 깃대봉이다. 새로 지은 전망데크가 왕의 경치를 내어준다. 과천·안양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최고의 전망대다.
주능선으로 접어든다. 앞으로는 팔봉능선, 옆으로는 삼성산이 에워싸 강원도 오지 느낌이다. 안양에서 안양으로 산행하고, 서울에서 서울로 산행하는 코스를 잡는 이들이 대부분이라 경기도와 서울을 잇는 주능선에는 사람이 없다. 짧은 바윗길을 올라서자 삼성산이 펼쳐지는 벼랑 전망바위다. 신비로운 자태로 벼랑 끝에 선 소나무가 신선 같다. 이렇게 멋진 능선을 지하철 타고 와서 오를 수 있다니, 명산에 둘러싸인 서울은 등산 천국이다.
거대한 탑이 있는 정상부에서 학바위능선으로 꺾는다. 학바위능선 입구는 이정표가 없어 지나치기 십상인데 누군가 바위에 화살표로 표시해 놓았다. 관악산의 16개쯤 되는 국기봉 중 하나로도 불리는 학바위, 너른 마당바위에서 능선을 따라 시선이 흘러간다. 서울에 이런 곳이 있었나 놀랄 만큼 첩첩산중이다. 도시 생활에 지쳤으나 여행 떠날 여유 없는 사람들, 이곳에 잠시 앉혀두고 싶었다. 산에서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 괜찮아질 때가 있다.
희미해지는 산길을 따라 무너미고개 근처로 내려선다. 이제야 드문드문 사람이 보인다. 관악산 특유의 마른 계곡이 물소리 없이 고요를 선물한다. 늦은 오후의 햇살이 쏟아지고 벤치에는 막걸리 한 병을 비운 백발의 등산객이 꾸벅꾸벅 졸고 있다.
긴 계곡길 끝에 만나는 풍경이 새롭다. 웅장한 관악문, 똘똘한 눈빛의 서울대생들, 반짝반짝 빛이 나는 관악산역 1번 출구. 능선 몇 개 넘어 왔을 뿐인데, 잠깐 다른 세상에 다녀온 것 같은 이유는 뭘까? 산 안에서 산 밖으로 나오자, 세상이 달라 보였다.
산행길잡이
만만히 보면 엉뚱한 데로 빠지기 십상이다. 길찾기에 주의해 예민하게 산행해야 원하는 코스로 산행을 마칠 수 있다. 들머리가 인덕원역에서 2km 떨어져 있다. 관양고교 인근 공사로 인해 등산로 입구가 바뀌었다. 관양고 정문에서 왼쪽으로 300m 이동하면 산길 입구가 나온다. 동편마을 아파트 부근에서 관양능선을 오르는 코스도 있으나 관양고교를 들머리로 하면 산림욕장을 거칠 수 있어 더 운치 있다. 간간이 나오는 불성사 갈림길로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육봉능선과 만나는 깃대봉 정상에서 태극기가 걸려 있는 국기 왼쪽으로 가면 연주대 방면 주능선이다. 학바위능선 입구는 별다른 이정표가 없어 놓치기 쉽다. 정상부의 시설물을 우회해 만나는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가야 한다. 바위에 ‘학바위’ 글귀와 화살표를 흰색 펜으로 표시한 걸 따라가면 된다. 학바위는 태극기가 있는 마당바위로 우회해 지나기 십상이다. 올라가는 것은 어렵지 않으므로 우회로로 빠지지 말고 능선 바위로 오르면 학바위에 닿는다.
학바위 능선에서는 관악산역 방면으로 빠지는 갈림길이 몇 곳 있다. 무너미고개까지 직진하든 중간에 빠지든 상관없다. 무너미고개에서 관악산역까지 완만한 내리막이라 편하지만 4km로 짧지 않아 시간은 넉넉히 잡아야 한다.
관양능선과 학바위능선은 초보자만 아니라면 즐기며 오르내릴 수 있는 수준이다. 다만 11km로 짧지 않아 한여름 산행으로 체력 소모가 클 수 있어, 체력 안배를 해야 한다. 정상부에서 연주암을 거쳐 과천향교로 내려서면 하산이 더 쉽다.
교통
4호선 인덕원역 8번출구를 나와서 8번, 541번 버스를 타고 관양중학교에서 하차한다. 50m 직진해서 오른쪽 길로 가면 관양시장이다. 김밥, 떡, 찐빵, 족발, 치킨 등 산행에 필요한 음식을 구입하기 제격이다. 버스정류장에서 900m 정도 걸어야 한다.
하산해 관악문을 지나면 곧장 신림선 관악산역 1번 출구로 연결된다.
여기서 버스를 타고 2호선 서울대입구역이나 낙성대역으로 갈 수도 있다.
본 기사는 월간산 2022년 7월호에 수록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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