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화재에 대해 알아야 할 것들
6월4일 밤 11시, 남해고속도로 서부산 톨게이트에서 사고가 났다. 톨게이트에 진입하던 자동차가 요금소 앞 분리대를 들이받았다. 불과 3초 뒤 차량 전체가 불길에 휩싸였다. 현장에 도착한 소방대원들이 15분 만에 초기 진압을 했지만, 자동차는 모두 불탔다. 차에 타고 있던 운전자와 동승자 모두 숨졌다.
불길을 잡은 소방대원들은 자동차 주위를 플라스틱 가벽으로 두른 뒤 물을 쏟아부었다. 화재를 완전히 진압하는 데는 7시간이 걸렸다. 불을 끄는 방식도, 끄는 데 걸린 시간도 일반적인 자동차 화재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해당 차가 전기차(현대 아이오닉5)였기 때문이다.
기름으로 움직이는 내연기관 자동차와 달리 전기차는 배터리로 움직인다. 배터리의 특성은 전기차 화재의 특징과 연결된다. 현재 전기차에 주로 쓰이는 배터리는 리튬이온전지다. 리튬이온이 양극(+)과 음극(-) 사이를 이동하면서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원리다. 양극과 음극 사이에는 이 둘을 분리하는 보호막(분리막)이 있는데, 이온만 통과할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두 극이 서로 닿으면 과한 전류가 흐르게 되고, 그 에너지로 인해 열이 발생하면 불이 붙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명 ‘쇼트(합선·short)’ 현상이다.
전기차에서 쇼트가 일어나는, 즉 불이 나는 경우는 두 가지다. 첫째, 배터리에 내부 결함이 있는 경우다. 미세한 금속입자와 같은 결점이 보호막을 압박하다가 한계치를 넘으면 결국 양극과 음극이 서로 접촉하게 되거나, 배터리 속 압력이 일정하지 못해 특정 부분에만 과부하가 걸릴 수 있다. 전기차를 충전하다가 화재가 나는 경우 이 같은 배터리 결함을 의심해볼 수 있다. 특히 배터리가 완전히 충전될 경우 배터리 내부의 압력이 높아지기 때문에 위험이 더 높아진다.
둘째, 배터리에 외부 충격이 가해지는 경우다. 이번 서부산 톨게이트 사고처럼 차체에 물리적 압력이 가해지면 배터리도 망가질 수 있다. 이때 양극과 음극을 나누는 보호막이 훼손되면 마찬가지로 쇼트가 일어난다.
전기차 배터리에서 쇼트가 일어나면 열폭주로 이어지기 쉽다. 열폭주란 물체에서 발생한 열이 또 다른 열을 일으키며 순식간에 고온으로 ‘폭주’하는 현상이다. 배터리에서 열폭주가 일어나면 엄청난 양의 가연성 가스와 산소가 발생한다. 따라서 마치 부탄가스통에 토치를 연결한 것과 같은 강한 불길이 치솟는다.
폭발적으로 붙은 불은 금방 꺼지는 게 일반적이지만 전기차 화재는 다르다. 전기차 배터리는 셀(cell) 수백 개가 모여 한 팩(pack)을 이루기 때문이다. 이 중 한 셀에서 쇼트가 일어나 열폭주가 시작되면, 다른 셀로 불이 옮겨붙으며 계속 새로운 열폭주를 일으킨다. 전기차 화재를 진압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이유다. 겉으로 보기에는 불길이 없지만 내부에 살아 있는 불씨가 또 어떤 배터리 셀에 옮겨붙을지 알 수 없다. 진화된 차를 옮길 때에도 소방차가 따라붙어야 한다. 이동하는 중에 가해진 충격으로 다시 불이 붙을 경우에 대비해서다.
강한 불길만이 문제가 아니다. 2020년 12월 서울 용산구에서 발생한 전기차(테슬라 모델X) 화재 사건 당시 현장에 출동했던 용산소방서가 작성한 ‘인명구조 검토회의 결과보고서’에서는 뜻밖의 문제점을 찾을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 문진석 의원이 공개한 해당 보고서에는 전기차 구조상의 문제점 중 하나로 ‘차량 내 전력이 차단되어 작업 공간(시트 눕히기, 시트 공간 확보 등) 확보가 불가능한 상태’가 언급된다. 전기차는 전기신호로 움직이는데 배터리가 손상되면 시트를 움직이는 등의 기본 작동조차 먹통이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당시 용산구에서 발생한 사고에서는 자동차 문조차 열리지 않았다. 사고 자동차인 테슬라 모델X는 평소 손잡이가 차체 안에 숨겨져 있고 문을 열어야 하는 상황에서만 밖으로 튀어나오는 히든 도어(hidden door) 시스템이 적용되어 있었다. 소비자들 사이에서 ‘전기차에서 불이 나면 갇혀서 대피할 수가 없다’는 공포심이 커진 이유다.
국산 전기차는 사고가 발생할 경우 자동으로 손잡이가 튀어나오도록 설계되어 있다. 안전 검사 기준이 해외보다 높기 때문이다. 서부산 톨게이트에서 사고가 난 아이오닉5도 에어백이 터지면 손잡이가 튀어나오도록 되어 있다. 사고 당시 탑승자가 문을 열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빠져나올 가능성도 있었던 셈이다.
신고할 때 전기차임을 알려주면 큰 도움
전기차 화재는 폭발적으로 불이 붙고 쉽게 꺼지지 않는 탓에 위험한 사고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소방청에서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2년 5월 말까지 발생한 전기차 화재 사건은 전국에서 59건이었고, 화재로 인한 사망자는 0명, 부상자는 4명이었다. 소방청 대변인은 “지난 5월까지 충돌로 인한 충격 등으로 사망한 경우는 있었지만 화상이나 매연 등 직접적으로 화재 때문에 사망에 이른 경우는 없었다”라고 말했다. 소방청 통계에 따르면 2019년 한 해 전체 전기차 보급 대수 대비 화재사고율 역시 0.02%로, 전체 자동차 화재사고율인 0.02%와 다르지 않았다.
사고 발생 건수 자체가 적고, 화재로 인한 사망자는 없는데 왜 ‘전기차 화재’에 대한 공포감은 클까? 전문가들은 거센 불길이 휩싸인 차량의 이미지가 크게 작용한다고 말한다. 국립소방연구원에서 전기차를 연구하고 있는 나용운 연구사는 “마치 화염방사기에서 나오는 것 같은 형태의 강한 불길이기 때문에 진압이 쉽지 않은 건 맞다. 하지만 전기차에 불이 났다고 해서 모두 순식간에 타버리는 건 아니다. 적절한 전략으로 화재를 진압한다면 짧은 시간 안에 불길을 잡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2021년 7월 세종시에서 발생한 전기차(현대 코나) 화재는 신고가 접수된 지 1시간 만에 완전히 진화됐다. 당시 연기가 난다며 소방서에 신고한 주민이 ‘전기차’라는 정보를 미리 알려주었기 때문에 소방서에서도 필요한 장비를 챙겨 가는 등 발 빠른 대응을 할 수 있었다. 한 소방대원은 “전기차 화재가 발생했을 때 절대 불을 끄려고 하지 말고, 일단 대피한 뒤 소방서에 신고할 때 전기차라는 사실을 알려주면 큰 도움이 된다”라고 말했다.
전기차든 내연기관 자동차든 사고가 안 날 수는 없다. 다만 전기차 화재가 발생했을 때 탑승자와 소방대원을 보호할 수 있도록 안전기준을 더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나용운 연구사는 대표적으로 충돌 검사 시 기준속도를 현재보다 더 올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사고가 발생한 뒤 철저한 원인 분석을 거쳐 그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지금은 전기차 기술이 발전해가고 있는 시기다. 화재 위험이 없는 전고체 배터리(이온이 움직이는 매개체가 용액이 아닌 고체인 배터리로 안정성이 뛰어남)가 개발되기까지는 앞으로도 수년이 걸릴 텐데, 이런 과도기에 발생한 사건을 적당히 뭉개고 간다면 국민들이 필요 이상의 우려를 느낄 수도 있다.”
국토교통부(국토부)가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2022년 1분기 기준 전기차 등록 대수는 전년 동기 대비 74.9%가 늘어났다. 국토부는 앞으로 전기차 시장 성장세가 더욱 가파를 것으로 전망했다. 다가오는 ‘전기차 시대’는 피할 수 없다. 막연한 공포감보다는 높은 안전기준과 안전 소재 개발, 적절한 화재 대응 전략에 관심을 보여야 하는 이유다.
나경희 기자 did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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