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이 직접 말하는 '우리는 왜 실패했나'

이은기 기자 2022. 7. 8. 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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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은 참패 후 정의당은 이은주 의원을 비대위원장으로 하여 비대위를 꾸렸다. 노동·지역·청년을 대표하는 인물들이 비대위에 합류했다. 9월 새 지도부 선출 전까지 '혁신과제'를 도출해야 한다.
6월23일 국회에서 열린 정의당 비상대책위원회 회의. 이혁재 비대위 집행위원장, 한석호 비대위원, 이은주 비대위원장, 김희서 비대위원, 문정은 비대위원이 참석했다(왼쪽부터). ⓒ국회사진취재단

“다시는 실패하지 않을 정의당을 만들겠다.” 이은주 정의당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가 6월20일 열린 1차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6·1 지방선거 참패로 여영국 전 대표를 비롯한 정의당 대표단이 총사퇴한 이후 처음 열린 당 지도부 회의였다.

올해 두 차례 치러진 선거에서 정의당이 받아든 결과는 명백한 ‘실패’다. 제20대 대선에서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2.37%(80만3358표)를 득표했다. 5년 전 치러진 제19대 대선에서 심 후보가 얻은 6.17%(201만7458표)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번 6·1 지방선거에서 정의당은 약 4%(광역의원 정당 득표율·91만6428표)를 얻었다. 기초의원 7명, 광역의원 2명(총 191명 출마)을 배출하는 데 그쳤다.

연이은 참패 후 ‘비대위 3개월-이후 혁신 지도부 선출안’이 가까스로 통과됐다. 6월12일 전국위원회에 재석한 57명 중 29명이 찬성해 과반을 겨우 맞췄다. 새로 출범한 비대위에 주어진 시간은 약 3개월. 비대위는 이 기간에 대선과 지방선거 결과를 평가하고 ‘혁신과제’를 도출해야 한다.

비대위 인선은 ‘노동·지역·청년’을 가리켰다. 이은주 비대위원장은 비대위 공식 출범을 알리며 비대위원을 이렇게 소개했다. “노동 현장 한가운데서 진보 정치와 노동 정치를 담금질한 한석호 전태일재단 사무총장, 진보 정치와 생활 정치를 주민과 만들어온 김희서 서울 구로구의원, 정의당 청년 정치를 열고 지역 정치를 일궈온 문정은 정의당 광주시당 정책위원장을 선임했다.”

세 비대위원 모두 비대위 합류를 몇 차례 고사했다. “당의 상황은 어느 때보다 엄중한데 비대위 임기 안에 혁신과제를 만들기엔 한계가 뚜렷(한석호)”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비대위원직을 수락한 건 “그 과정에서 길을 만들어야 하는 것도 나와 정의당의 책임(문정은)”이라고 생각해서다. 고심 끝에 합류한 세 비대위원은 정의당의 위기를 어떻게 진단하고, 이후 어떤 계획을 세울까? 김희서·문정은·한석호 비대위원에게 집중적으로 물었다.

“정의당의 청사진이 안 보이고, 정의당을 상징하는 계급·계층이 안 보이는 게 근본적인 문제다.” 한석호 위원은 정의당의 지향과 정책이 모호하다고 지적하며 2000년대 초반 민주노동당 사례를 들었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은 부유세 신설, 무상교육·무상의료 도입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당시로선 파격적인 주장이었다. 그해 민주노동당은 국회의원 10명을 배출했다.

한 위원은 정의당과 구분되는 당시 민주노동당의 특징을 이렇게 짚었다. “민주노동당은 노동자, 농민, 빈민을 대변한다는 색깔이 분명했다. 지금 정의당에 관해 물어보면 아무도 대답하지 못한다. ‘민주당 2중대냐 아니냐’ ‘페미니즘 정당이냐 아니냐’가 정의당의 색깔이 되어버렸다.”

‘검수완박’이 선거 결과에 영향 끼쳐

김희서 위원은 정의당의 정당 시스템을 지적한다. 김 위원은 지역 현장에서 주민들의 목소리를 듣고 정책화하는 정당 시스템이 고장 났다고 말했다. “지역은 민생과 관련된 요구가 나오는 곳이다. 지금 정의당은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정책적으로 반영하는 루트와 조직이 없다.”

문정은 위원은 당이 불평등 해결을 위해 역량을 총동원해 끈질기게 대응하지 못한 점을 꺼내 들었다. “중앙 정치인 몇몇이 선거운동을 하거나 통과되지도 않는 법안 몇 개를 발의하고 명분 삼는 정치가 정의당에 기대를 걸었던 시민들을 지치게 했다.”

6·1 지방선거를 앞두고는 비대위원 모두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국면이 선거 결과에 영향을 끼쳤다고 본다. 4월15일 더불어민주당(민주당)은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는 ‘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발의하고 법안 통과를 밀어붙였다. 국회 본회의에서 정의당 국회의원 6명은 전원이 같은 표를 던졌다. ‘검찰청법 개정안 찬성(4월30일), 형사소송법 개정안 기권(5월3일).’

6·1 지방선거에서 서울 마포구청장 선거에 출마한 조성주 정의당 후보는 정의당이 개정안에 동의한 다음 날부터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느꼈다. 당시 조성주 후보는 해당 지역구에서 민주당을 심판해야 한다는 선거 캠페인을 벌이고 있었다. “법안 통과 이후, ‘너희는 왜 나왔어?’ ‘민주당이랑 같이 하면 되잖아’라는 식의 분위기가 형성됐다. 유권자들에게 정의당이 따로 존재해야 할 이유를 설득하기 어려웠다.” 조성주 후보는 4.48%(7760표)를 얻고 낙선했다.

구의원 3선에 도전한 김희서 위원도 어려움을 겪었다. “2010년부터 진보정당 소속으로 출마했는데 당이 발목을 잡는다는 느낌은 없었다. 이번에는 확실히 정의당이어서 찍지 않겠다는 흐름이 있었다.” 김 위원은 양당 구도가 격화되면서 정의당을 향한 거부감이 쌓이고, 비호감도가 높아졌다고 분석한다. 정의당의 결정은 ‘국민의힘 2중대(대선 완주)’ 혹은 ‘더불어민주당 2중대(검찰청법 개정안 찬성)’로 취급됐다. “거기에 맞서 우리의 논리를 전파하고 때로는 싸우기도 해야 하는데 역부족이었다.” 김 위원은 18.53%(8367표)를 득표하고 서울 구로구의원 선거에서 떨어졌다.

‘검수완박’ 국면에서 짧은 기간 정의당의 한계가 여과 없이 드러났다면, 정파 간 갈등은 정의당의 오랜 문제다. 정의당 내에는 새로운진보, 인천연합, 전환 등 ‘의견 그룹’이라 불리는 여러 정파가 있다. 김희서 위원은 정파의 영향력이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대중 활동이 필요할 때는 발휘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가 보기에, 의견 그룹의 위력이 드러나는 건 당대표 선거나 비례대표 공천 때 등이다.

한석호 위원은 의견 그룹 사이에서 토론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정파 사이에) 이견이 있으면 논쟁을 벌이거나 의견을 관철하기 위해 실천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는다.” 이견을 조율하고 해결책을 모색하기보다, 의견 그룹이 각자의 입장을 공중에 쏘는 데 그쳤다는 얘기다. 그 결과 비판과 반대만 남았다. 문정은 위원은 “적대적인 정파 관계 안에서 서로의 잘잘못만 따지는 과정이 반복되면 정의당의 재기는 불가능하다”라고 말했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정파 구조로 권한과 책임의 문제가 왜곡돼 있다고 주장했다. “당 대표단을 뽑아놓고 수많은 의사결정이 전국위를 거치게 되어 있다.” 정의당 전국위원회는 당대회가 개최되기 전까지 정의당의 최고 의결기구로 작동한다. 전국위원 77명(2022년 6월 기준)은 당의 중요 사안을 일상적으로 협의하고 의결한다.

장 의원이 보기에, 정파를 안배한 전국위 구조상, 전국위에서 내린 결정은 치열한 토론의 결과물이라기보다 정파 타협의 산물이다. 당의 주요 결정이 정파 간 합의 이상이 되기 어렵다. 그 결과 책임이 분산되고, 당 대표단의 권한은 형해화된다. 장 의원은 “당대표를 선출했으면 그 사람에게 권한과 책임을 동시에 주고, 권한을 행사한 책임을 명확하게 물을 수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비대위원들은 대선·지방선거 평가를 마치고 나면 ‘혁신과제 도출’에 돌입해야 한다. 정의당의 정체성을 어떻게 설정할지, 권력 획득을 위해 전략적으로 핵심 지지층을 어떻게 형성할지는 비대위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한석호 위원은 “다수의 유권자 모두에게 받는 표는 없다. 핵심 지지자들이 동의하는 자기 정체성을 세워야 한다”라고 말했다. 한 위원에게 정의당이 집중해야 할 최우선 과제는 불평등 해소다. “(당내에서) 노동을 놓쳤다는 것에 대해선 아무도 부정하지 않는다. 불평등 타파와 노동자 계급을 기반으로 출발해야 한다.”

배진교 상임선대위원장(맨 왼쪽)을 비롯한 정의당 지도부가 중앙당사에서 6·1 지방선거 개표방송을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비대위 “실패를 제대로 규정하는 작업”

김희서 위원은 정의당이 끌고 가야 할 핵심 지지 기반이나 핵심 의제가 고정돼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중요한 건 시대가 요구하는 게 무엇인지를 듣는 일이다. 어떤 특정 의제가 있는 게 아니라, 주민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고 현장에서 주민과 소통하는 체계가 필요하다. “이정미 전 의원이나 심상정 의원 등이 국회의원 했던 사람이라고 해서 중앙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다. 아래에서부터 다 같이 집중하고 시작하는 게 진짜 혁신 아니겠나.”

다양한 의견을 모아 기간 내 혁신과제를 만들 수 있을까? 장혜영 의원은 비대위의 역할을 ‘명확하게 쟁점을 정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비대위가 멋진 혁신안을 도출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것이 비대위에 맡겨진 일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크고 다른 견해들이 어떤 쟁점을 통해서 토론되어야 하는지 맥을 짚어주는 게 비대위의 가장 큰 역할이라고 본다.”

비대위원들에게 목표를 물었다. “아래로부터 시작하는 정의당이 어떤 형태로 가능한지 매우 적극적이고 명확하게 제시하겠다(김희서).” “실패를 제대로 규정하는 작업에 몰두해볼 생각이다(문정은).” “지난 정의당의 10년, 대선, 지방선거 평가를 위한 쟁점을 띄우고 종합하는 게 비대위의 핵심이다(한석호).” 3개월 임기의 비대위는 8월 임시 당대회에서 혁신과제를 의결하고, 9월27일 ‘혁신 지도부’가 선출되면 해산한다.

이은기 기자 yieu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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