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살림 허리띠 죄기 50%대 중반 채무관리
2027년까지.. 2021년 목표보다 더 엄격히
尹 "재정만능주의 환상 벗어나야" 강조
새 재정준칙 마련.. 지출구조조정 예고
재정준칙, 단순·엄격하게 개정
관리재정수지 GDP -3%내 관리 원칙
사업 구조 조정·공무원 보수 억제 등
정부, 총지출 대폭 줄여 효율화 나서
고물가 등 복합위기 장기화 예고 속
기업지원 확대·부자 감세 추진 공언
재정 운영 제한에 취약층 부담 커질 듯
7일 정부는 윤석열 대통령 주재로 ‘2022년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열고 이같이 밝혔다. 국가재정전략회의는 새 정부 5년간의 나라 살림을 논의하는 회의로, 이날 내용을 바탕으로 오는 9월 초 2023년 예산안과 ‘2022∼2026년 국가재정운용계획’을 확정·발표하게 된다.
윤 대통령은 이날 모두발언에서 “지난 5년간 재정 상황이 크게 악화되면서 2017년 600조원이었던 국가채무가 400조원이 증가해 올해 말이면 1000조원을 훌쩍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며 “당면한 민생 현안과 재정 위기 극복을 위해 정부부터 솔선해서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이어 “예산만 투입하면 저절로 경제가 성장하고 민생이 나아질 것이라는 그런 재정만능주의의 환상에서 이제 벗어나야 한다”며 “재정이 민간과 시장의 영역을 침범하고 성장을 제약하지 않았는지, 이른바 ‘구축효과’가 작동하지 않았는지도 면밀하게 살펴볼 때가 됐다”고 말했다.
이날 회의에서 정부는 ‘민간 주도의 한국경제 재도약 뒷받침’과 ‘재정의 지속가능성 제고’를 재정 운용 방향의 목표로 잡았다. 이를 위해 △국정과제 적극 뒷받침 △건전 재정 기조 확립 △강력한 재정 혁신 △재정비전 2050 수립·추진을 4대 정책 방향으로 삼는다.
문재인정부의 확장적 재정 기조는 건전 재정으로 전환된다. 이를 위해 정부는 연말 기준 -5.1%로 예상되는 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수준을 -3.0% 이내로 감축하기로 했다. 재정수지는 세입과 세출의 격차로 나라 살림 현황을 나타내는 가장 중요한 지표 중 하나다.
문재인정부에서 추진했던 재정준칙은 단순하고 엄격해진다. 재정수지 기준을 관리재정수지로 바꾸고, 재정적자는 -3% 이내에서 통제한다는 방침이다. 법적 근거도 기존 시행령에서 법률로 격상시키고, 매년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할 때 재정준칙 준수 여부를 따지기로 했다.
강력한 지출구조조정도 예고했다. 재량지출뿐 아니라 의무지출, 계약에 따른 경직성 지출까지 구조조정 대상에 포함시켰다. 공무원 정원·보수도 엄격하게 관리하고, 인구 감소 등 구조적 문제 해결을 위한 ‘재정비전 2050’도 연내 수립한다.
尹대통령 모두발언 윤석열 대통령이 7일 충북 청주시 충북대학교에서 열린 2022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당면한 민생 현안과 재정위기 극복을 위해 정부부터 솔선해서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며 확장재정 기조에서 벗어나 긴축재정으로 전환하겠다고 강조했다. 청주=대통령실사진기자단 |
정부가 관리재정수지를 매년 국내총생산(GDP)의 ?3.0% 이하 수준으로 관리하고, 국가채무비율도 2027년까지 GDP 대비 50% 중반 수준으로 관리하겠다고 밝힌 건 더 이상 재정을 중심으로 경제를 운용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최근 5년간 국가채무가 400조원 이상 증가하면서 국가신인도에 대한 우려가 커졌는데 이를 불식시킬 필요가 생긴 점도 ‘확장재정’에서 ‘건전재정’으로 정책 기조를 180도 전환한 배경으로 꼽힌다.
◆단순하고 엄격해진 재정준칙… ‘관리재정수지 GDP 대비 -3.0%↓’
7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새롭게 마련된 재정준칙은 문재인정부 당시 설계된 안과 비교해 ‘단순하고 엄격하다’는 특징을 지닌다.
2020년 10월에 발표된 재정준칙의 경우 국가채무비율을 60%로 나누고 통합재정수지(총수입-총지출)를 -3.0%로 나눈 각각의 수치를 곱한 숫자가 1.0 이하가 되게 하는 복잡한 계산식이 제시됐지만 이번에는 관리재정수지를 GDP 대비 -3.0% 이내로 관리하는 요건만 뒀다. 관리재정수지가 통합재정수지보다 통상 40조~45조원(올해 기준)가량 적자폭이 큰 것을 감안하면 준칙 기준이 더 엄격해진 셈이다. 정부는 이런 내용을 담은 국가재정법이 개정되기 전이라도 내년 예산안부터 새 재정준칙안을 적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관리재정수지는 통합재정수지에서 국민연금 등 사회보장성 기금을 제외한 수치로, 나라의 실질적인 재정 상태를 나타내는 데 쓰인다. 지난 5월 편성된 2차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을 기준으로 보면 올해 관리재정수지는 110조8000억원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2차 추경 기준 관리재정수지는 GDP 대비 -5.1%였는데 정부가 당장 내년부터 -3.0% 이하로 관리하겠다는 것은 총지출을 대폭 줄이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문제는 정부의 지출 효율화 작업이 불러올 파장이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정부는 252개에 달하는 민간 보조사업을 폐지하거나 감축하는 등 역대 최고 수준의 강력한 구조조정을 실시하고, 의무·경직성 지출도 살펴보겠다고 밝혔다. 이 밖에 공무원 정원과 보수를 억제하고, 공공기관·국유재산 자산 매각과 민간투자 등을 적극 활용하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고물가 등 복합위기가 장기화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정부 지출마저 줄어들 경우 취약계층의 부담이 더 커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높은 복지수준, 낮은 조세부담률, 낮은 국가채무’는 동시에 달성할 수 없다는 이른바 ‘재정의 트릴레마’에 비춰보면 내년부터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 등 각종 조세 감면이 예고된 만큼 향후 복지 분야가 소외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올해 기준 정부 예산 중 사회·복지 분야는 전체의 32.1%로 가장 많다. 아울러 정부가 병사 월급 인상 등 209조원에 달하는 국정과제를 약속대로 이행하겠다고 밝혀 재정 운용의 폭도 제한적인 상황이다.
강병구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는 “재정건전성을 확보한다면서도 정부가 감세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상호 충돌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경민 참여연대 사회경제2팀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새 정부는 기업에 대한 지원은 확대하고, 부자에 대한 감세를 추진하겠다고 공언한 상황에서 지출구조의 통제는 결국 시민들의 삶과 직결되는 복지 축소 등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일자리 정책의 패러다임도 대거 전환한다. 그간 재정 지원 중심이던 일자리사업을 대폭 구조조정해 고용 창출의 무게추를 ‘공공’에서 ‘민간’으로 옮긴다는 계획이다. ‘단기 알바’를 양산한다는 지적을 받았던 노인일자리 사업도 시장지향형 일자리로 개편키로 했다. 복지 분야에서는 지출 구조를 개선한다. 향후 재정 여력이 축소되면 돌보기 어려운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 있어 이에 선제 대응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사회보장 통합 관리 체계를 구축하고 사회적 합의를 통한 연금 개혁과 건강보험 재정 관리 강화 등을 추진한다.
세종=안용성,이희경 기자, 이현미·이진경·안병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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