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해석 권한 놓고 대법-헌재 수십년째 다툼..소송 당사자만 피해
800억원대 세금 사건 헌재 계류..재판취소 가능성 유력
(서울=뉴스1) 류석우 기자 = 헌법재판소가 사상 두 번째로 법원의 판결취소를 결정하면서 '한정위헌' 효력을 놓고 대법원과의 갈등이 재점화됐다. 이후 대법원이 이례적으로 입장을 내고 허용할 수 없다고 밝히면서 정면으로 충돌한 모양새다.
대법원과 헌재의 이번 충돌 배경에는 수십년간 이어져 온 법령의 해석 권한 다툼이 있다. 특히 반복되는 갈등에 소송 당사자만 피해를 입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8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은 지난 6일 헌재의 재판 취소 결정에 대해 "헌법상 최고법원인 대법원의 판단에 대하여 법원 외부의 기관이 그 재판의 당부를 다시 심사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법령의 해석·적용 권한은 사법권의 본질적 내용을 이루는 것이고, 합헌적 법률해석을 포함하는 법령의 해석·적용 권한은 대법원을 최고법원으로 하는 법원에 전속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앞서 헌재는 출범 이후 사상 두 번째로 법원의 재판을 취소하는 결정을 내렸다. '한정위헌' 결정을 내린 사건에 대해 법원의 재심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은 판결을 한 것은 헌법에 어긋난다는 이유에서다.
◇특정 해석 기준 제시하는 '한정위헌'…대법, 한 번도 기속력 인정 안해
민주주의와 기본권 보장에 대한 국민의 의지를 바탕으로 출범한 헌재는 기본적으로 법령이 헌법에 어긋나는지를 심판하기 위해 설치된 재판소다. 조직은 법원에 비해 작지만, 위헌 판단 외에도 탄핵심판이나 정당해산 등도 담당하고 있어 대법원과 함께 사법부의 양대 최고 법원으로 분류된다.
이들의 갈등은 헌재가 1991년 '한정 위헌'이라는 결정 방식을 내놓으면서 시작됐다. 한정위헌이란 어떤 법률에 대해 법 자체의 효력은 없애지 않으면서 특정해석 기준을 제시하는 결정을 말한다. 이를테면 특정 법령을 어떠한 방식으로 해석을 하면 위헌이라고 판단하는 식이다.
대법원은 일관되게 헌재의 한정위헌 결정의 기속력을 부인해왔다. 이를 받아들이면 재판 당사자가 대법원 확정판결 이후에도 헌법소원을 통해 재심을 청구할 수 있게 돼 사실상 4심제를 인정하는 모양새가 되기 때문이다.
한정위헌을 놓고 대법원과 본격적인 갈등이 시작된 것은 1990년대 중반이다.
헌재는 1995년 소득세법 일부 조항에 대해 한정위헌 결정을 내렸는데, 이듬해 대법원이 이길범 전 의원의 양도소득세 부과처분 취소소송에서 헌재 한정위헌 결정의 기속력을 부정하고 정반대의 판결을 내린 것이다.
이는 대법원이 최초로 헌재의 한정위헌 결정 기속력을 부정한 사례였다. 헌재도 이에 맞서 사상 처음으로 재판취소 결정을 내렸다. 이후에도 헌재의 한정 위헌 결정은 이어졌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고, 이번에 역대 두 번째 재판취소 결정까지 이르게 됐다.
◇'법원 고유 권한 침해' vs '헌법에서 부여 받은 위헌심사권 행사'
양 기관의 다툼이 길어지는 이유는 어느 기관도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고 입장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원에선 헌재의 결정이 법원 고유의 권한을 침해한 것이라고 본다. 법을 해석해 유무죄 판단을 내리는 것은 법원의 역할인데, 헌재가 주장하는 것은 법령은 살려두면서 해석을 통한 유무죄 판결을 다시 내리겠다고 나서는 것과 다름이 없다는 것이다.
결국 법원이 하도록 되어있는 역할을 헌재가 하겠다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에 무작정 대법원으로서도 다툼을 멈추고 한정위헌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주장이다.
특히 법원 일각에선 헌재가 정말 법이 잘못됐다고 판단하면 단순 위헌 결정을 내리면 되는데, 입법을 하는 국회의 눈치를 보느라 이런 변형적인 형태로 법원의 권한을 빼앗으려 하는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한정위헌 자체가 위헌이라는 시선도 존재한다.
반면 헌재는 법률의 위헌성 심사를 하면서 이뤄지는 한정위헌 결정도 일부위헌 결정으로서, 헌법에서 부여받은 위헌심사권을 행사한 것이기 때문에 정당하다고 본다.
또 그간 헌법에 근거해 한정위헌 결정을 내려온 역사가 있고 연속선상에 있는 만큼 하루아침에 한정위헌 결정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심지어 헌재는 이번 사건에서 한 발 더 나아갔다. 헌법소원을 청구할 수 있는 재판에 대해 '법률에 대한 위헌결정의 기속력에 반하는 재판'을 더하면서 헌재의 한정위헌 결정 기속력을 인정하지 않은 재판은 모두 헌법소원을 낼 수 있도록 범위를 넓힌 것이다.
헌법재판소법 제68조는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받은 자는 '법원의 재판'을 제외하고는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헌재는 지난 2016년 '법원의 재판' 중 헌재가 위헌으로 결정한 법령을 적용함으로써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재판' 부분에 대해서만 위헌을 결정한 바 있다.
◇두 기관 힘겨루기에 사이에 낀 소송 당사자만 피해
수십년간 지속된 양 기관의 법령 해석 권한 다툼의 가장 큰 문제는 사이에 낀 소송 당사자만 피해를 본다는 점이다.
이번 사건의 경우도 청구인이 헌재의 재판취소 결정에 다시 법원에 재심청구를 하거나 기일을 다시 지정해달라고 신청을 할 수 있지만, 법원이 이를 인용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물론 하급심에서 개별 법관이 헌재의 취지가 맞다고 보고 독립된 결정을 내릴 수 있지만 그뿐이다. 사건이 다시 대법원에 올라가게 되면 대법원은 헌재의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대법원은 일선 법원에 가이드라인을 주는 모양새를 감수하면서도 "법원의 권한에 대해 다른 국가기관이 법률의 해석기준을 제시해 간섭을 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고 분명히 밝히기도 했다.
결국 이론적으로는 대법원의 재심 청구 기각 → 헌재의 재판취소 결정 → 대법원의 재심 청구 재차 기각 →헌재의 재판취소 결정이 무한정 반복될 수 있게 된다.
이미 법원과 헌재에서 모두 재판을 받고 다시 재심과 재판소원을 여러 번 거치게 된다면 소송 장기화로 인한 비용 등은 소송 당자사가 모두 부담하게 된다.
◇이번 결정은 예고편…더 큰 사건 남았다
이번에 헌재가 재판취소 결정을 내린 사건과 구조가 똑같은 사건이 아직 헌재에 남아있다. 구조는 같지만 수백억원대 세금이 걸려있어 규모가 훨씬 크다. 이에 이번 결정은 '본편' 결정을 앞둔 '예고편'이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재 헌재에는 GS칼텍스와 AK리테일, KSS해운 등 세금소송과 관련한 재판취소 사건이 계류 중이다. 이 사건은 구 조세감면규제법에 의해 도합 800억원대의 세금을 물게 된 GS칼텍스 등이 대법원 판결을 취소해 달라며 헌재에 낸 재판소원 사건이다.
앞서 헌재는 GS칼텍스 등이 조세감면규제법 부칙 23조가 기본권 침해의 소지가 있다며 제기한 헌법소원 사건에서 한정 위헌 결정을 내렸다. 이에 GS칼텍스 등 기업들은 재심을 청구했지반 대법원은 한정 위헌은 법적인 근거가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조세감면규제법 부칙 23조에 따라 이들 기업에 부과된 세금은 GS칼텍스가 707억원, AK리테일이 104억원, KSS해운이 65억원 등이다. 적은 금액이 아닌 만큼 헌재가 이번에 재판취소 결정을 내릴 경우 이들은 다시 소송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현재의 갈등 상황에선 대법원이 재판취소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지난 1997년 이길범 전 의원에 대한 재판취소 결정의 경우 대법원이 헌재의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과세관청이 헌재 결정 취지에 따라 세금부과를 취소하면서 사건이 일단락됐다.
그러나 GS칼텍스 등 사건의 경우 액수가 커 이같은 방식으로 사건이 종결되지 않고 양 기관 사이에서 재판이 무기한 반복될 수 있다. 이 사건의 선고기일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헌재는 조만간 이 사건도 결론내릴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건과 같이 재판취소 결정을 내릴 것이 유력히 점쳐진다.
sewryu@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 암벽 타며 "돌림X으로" "형수 올라가자"…원주 클라이밍 성지 코스명 논란
- "아이 예쁜 것 나만 보다니, 메롱"…황정음, 전남편 이영돈 공개 저격
- "교육 잘한다"…경적 울리는데도 어린 딸 앞세워 무단횡단 [영상]
- 아내 1명·여친 4명 동시 교제도 놀라운데…모두 한 아파트 주민
- 율희 "'최민환 업소' 밝히고 싶지 않았다…지치고 괴로워 합의이혼 후회"
- "유부남 페티시" 글 올리자…"만날까?" 1시간 만에 기혼 남성 쪽지 190개
- '여성 군무원 살해' 중령, 시신 차에 싣고 "주차 가능하냐" 태연히 질문
- 제니, 브라톱에 가터벨트 스타킹…파격 패션 속 과감 노출 [N샷]
- 알몸 그대로 비친 세탁기 판매글 올린 중고거래男…"100% 고의"
- "시동 끌 줄 몰라! 사람 쳤어! 어떡해"…강남 8중 추돌 여성, 엄마와 통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