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 구조 못본 연세대생 '청소노동자 소송'..역풍 기류
재학생들은 대자보 붙이고 연대와 지지 기자회견
졸업생들은 소·경비노동자들의 무료 변론 나서
임금 문제 등 산적한 문제 해결엔 학교가 나서야
연세대학교 일부 재학생이 교내 청소·경비 노동자들을 상대로 민·형사소송을 제기해 논란인 가운데 노동자를 지지하고, 연대를 표하는 이들이 늘어나며 역풍이 부는 모양새다. 연세대 재학생들은 대자보를 붙이며 노동자 측 지지 기자회견에 나섰고, 졸업생들은 청소·경비노동자들의 무료 변론을 맡기로 했다.
청소노동자 등은 처우개선을 요구하면서 지난 4월부터 매일 1시간가량 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이들은 시간당 임금을 청소노동자는 400원, 경비노동자는 440원씩 각각 인상하고, 정년퇴직에 따른 인원 보충과 샤워실 설치 등을 주장하고 있다.
이에 연세대생 이모(23)씨가 5월 청소노동자들의 집회 소음으로 학습권이 침해당했다며 집회를 주도한 김현옥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연세대분회장 등을 업무방해 혐의로 형사 고소하면서 논란이 시작됐다. 이어 이씨 등 재학생 3명은 지난달 수업료와 정신적 손해배상, 정신과 진료비 등 명목으로 약 640만원을 청구하는 민사 소송도 제기했다.
8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일부 학생들의 고소 사실이 알려지자 노동자 측에 연대하는 학생들의 지지가 이어지는 상황이다. 지난 6일에는 소송에 반대하고 노조의 투쟁을 지지하는 학생들이 모여 "노동자의 요구를 묵살하고 학생에게 정의를 가르치지 않는 연세대학교를 규탄한다"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 집회엔 재학생 3천여 명이 연대한다는 뜻을 밝혔다.
연세대를 졸업한 법조인들도 청소노동자들의 변론을 자원하고 나서는 상황이다. 이한열기념사업회 이사를 맡은 김남주 변호사 등 연세대 졸업생 4명은 7일 서울서부지법에 소송위임장을 제출해 청소·경비노동자들의 무료 변론을 맡기로 했다.
연세대 중앙도서관 등 학교 곳곳엔 청소노동자들에 지지를 표하는 대자보도 붙어있다. "분노가 향해야 할 곳은 학교 당국이다. 연세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한마음 가득 지지와 연대를 보낸다"며 학교측을 규탄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또 "학생이기에 본인의 공부가 우선이라고 생각하나. 그 특권에 기반해서 학습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같은 공동체원의 기본권을 짓밟았다"란 비판의 내용이 담긴 대자보도 붙었다.
연세대 나임윤경 문화인류학과 교수도 청소노동자들을 고소한 일부 학생을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사회문제와 공정' 수업계획서에서 "연세대 학생들의 수업권 보장 의무는 학교에 있지 청소 노동자들에게 있지 않음에도, 학교가 아니라 지금까지 불공정한 처우를 감내해온 노동자들을 향해 소송을 제기함으로써 그들의 '공정감각'이 무엇을 위한, 어떤 감각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썼다.
학생들의 소송에 청소노동자들은 착잡한 심정을 드러냈다. 연세대에서 12년째 일을 했다는 한 청소노동자는 "학생들이 고소고발한 일은 처음이라며 답답하고 속상하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학생들과 대립각을 세우기보단 학교가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는 입장이다. 학생들로부터 민·형사소송을 당한 당사자인 김현옥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연세대분회장은 "고소 건에 대해서 학생들을 미워하지 않는다. 학생인 만큼 공부를 해야하기 때문에 다 이해한다"며 "학교 측이 하루빨리 해결해주기를 부탁드린다"고 6일 기자회견에서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청소·경비노동자들의 임금 문제나 인원 충원 문제는 해결이 요원한 상황이다. 학교 측과 용역업체는 시간당 시급 200원 인상 방침을 유지하고 있다. 연세대 비정규 노동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측에 따르면 노동자들의 요구대로 시급이 440원으로 인상될 경우 학교 측 부담은 5억 5천만원 정도다. 연세대의 적립금은 5800억원에 달한다. 연세대학교 측은 적립금은 인건비로 쓸 수 있는 돈이 아니며 협상을 이어가고 있다는 입장이다.
7일 찾은 연세대 공학관의 한 청소노동자 휴게실은 지하 주차장 바로 옆에 있었다. 주차장 한쪽에 자리한 해당 휴게실은 매연 등에 노출되는 데다 환풍기 하나만 돌아가는 등 열악한 처우 문제가 불거진 곳이다. 김 분회장은 "논란이 불거지자 용역업체 측에서 휴게실을 건물 내 다른 공간으로 옮길 수 있을지 논의가 있었다"고 밝혔다. 이 밖에도 500여 명의 청소 경비노동자들 사용할 수 있는 샤워실이 학교 전체에 단 2곳뿐인 문제 등 풀어야 할 과제는 산적해 있다.
이런 답보 상태에서 학생들은 노동자들의 투쟁에 지지를 보내고 있다.
중앙도서관 앞 대자보를 쓴 토목공학과 4학년 임재경씨는 "학교 측이 노동권을 무시하는 행태를 보였던 게 가장 큰 문제"라며 "학생들이 생각하는 수업의 질이 저하된 주된 책임은 노동자가 아닌 학교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번 사태가 논란이 되면서 학생들의 연대와 지지가 많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며 "교육의 질을 방치하는 학교에 맞서 함께 싸울 수 있을 것 같다"고 답했다.
2학년 김모씨도 "청소노동자가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면 처우개선에 대한 정당한 요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지지 의사를 보였다.
연세대 재학생 1학년 유시연씨는 "파업 처음엔 청소가 안 되거나 생활에 어려움 겪었다"면서도 "시위가 계속될수록 학교라는 곳이 학생들에겐 교육의 공간이지만 노동자분들에게는 직업생활을 하는 공간이란 생각이 들었다. 여러 집단이 서로를 배려하는 모습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어 "학생들 사이에서는 '고소까지 해야 했느냐'는 인식이 많다"며 "학교 측이 소통 기회를 먼저 마련해야 한다. 이번 기회로 학생과 교직원 등 학교 구성원이 노동자 입장에서 어떻게 조화롭게 생활할 수 있을지 고민해봤으면 한다"고 답했다.
이번 사태의 원인이 노조와 노동자에 대해 배울 기회가 적은 세대란 데 있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3학년 정성오씨는 "학교 다닐 때 노조라든가 노동자에 대해 배운 적이 없다. 구체적으로 잘 알지 못해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나 한다"며 "교육이나 토론의 장을 통해서 의견을 교류하는 (노동권에 대한) 교육이 있었으면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을 것 같다"고 했다.
한편 노동자 측을 지지하는 학생과 단체들의 행동은 이어지고 있다. 서울지역 390여 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너머서울과 청년학생단체는 7일 오전 연세대학교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책임져야 할 학교는 뒷짐 지고 있다. 학습권과 노동권 갈라치기를 거부한다"고 호소했다.
한 발언자는 "우리는 서로에게 불편을 주지 않고 살아갈 수 없다. 오늘 도서관에서 공부할 수 있는 것도 누군가가 이 도서관과 교정을 청소하고 지켜줬기 때문"이라며 "내가 살아가는 일상이 나 혼자서 만들어낸 것이라 착각하고 그 일상을 아무도 방해하지 말란 일방적 주장을 반복한다면 수많은 사람의 노력과 희생을 배신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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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임민정 기자 forest@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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