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재세 논란①]법인세 낮춰 기업 부담 던다더니..초과 이익 환수?
기사내용 요약
올 들어 6배 뛴 마진…정유 4사, 1분기 영업익 4.7조
코로나발 수급 불안·우크라 사태 장기화 등 영향
여야, '횡재세' 도입 한목소리…"물가 부담 줄여야"
영국·스페인·미국 등 주요국 논의…신중론도 고개
"법인세에 더하면 이중과세…조세 형평성 따져야"
[세종=뉴시스] 이승재 기자 = 국제유가가 급등하면서 서민들의 고통은 커지고 있지만 정유업계는 때 아닌 호황을 누리고 있다. 이에 정치권에서는 정유사들의 초과 이익에 세금을 물려 이를 환수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예상치 못한 기업의 이윤을 이른바 '횡재세' 명목으로 거둬들여 국민에게 다시 분배하는 식으로 물가 상승 부담을 줄이자는 취지다.
이는 법인세 감면 등 기업에 다양한 세제 혜택을 약속해 온 새 정부의 '친기업 기조'와는 반대되는 행보다. 횡재세를 따로 물리는 것은 이중과세가 될 수 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유례없는 정제마진에 정유사 1분기 호실적
정유사는 원유보다 휘발유·경유 등 석유제품을 비싸게 팔아 이익을 남긴다. 이를 정제마진이라고 하는데 최근 들어 정유사들이 사들인 원료에 비해 팔아치운 제품 가격이 지난해 말과 비교해 6배가량 뛰었다는 뜻이다.
실제로 GS칼텍스, SK이노베이션,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등 국내 정유 4사는 지난해 4분기 약 2조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고, 올해 1분기에는 역대 최고인 4조7668억원의 이익을 냈다.
개별로는 SK이노베이션(1조6491억원), 에쓰오일(1조3320억원), GS칼텍스(1조812억원), 현대오일뱅크(7045억원) 순이다. 정제마진은 계속해서 올라가고 있기 때문에 올해 2분기에도 호실적을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통상 유가가 오르면 제품 가격도 상승한다. 하지만 지금처럼 마진 폭이 함께 확대되는 것이 일반적인 상황은 아니다. 통상 업계에서는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에 근접해도 정제마진이 15달러를 넘기기는 어렵다고 본다.
박한샘 SK증권 연구원은 "유가 상승과 별도로 그간 누적된 정유사의 설비투자 부족과 코로나19로 인한 수급 불안정성, 러시아·우크라이나 분쟁으로 촉발된 공급 차질이 주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은 예기치 못한 여러 요인이 겹치면서 당초 예상보다 정유사들의 이익이 불어났기 때문에 이를 환원해 소비자들의 물가 부담을 줄여야 한다고 말한다.
더군다나 최근 물가를 끌어올린 주요 원인 중 하나가 기름값 상승이기도 하다. 이에 정부는 유류세 인하 폭을 37%로 확대하기로 했지만, 이 조치만으로는 서민들이 체감하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많다.
용 의원은 "유류세 추가 인하보다는 정유사의 일시적 초과이익에 과세하는 횡재세를 거두고 유류세 세수에 더해 국민들에게 배당해 물가 상승 부담을 완화하는 편이 낫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취약계층 에너지 바우처 지원과 운수노동자들의 안전운임제 확대, 유가보조금 합리화에 유류세를 활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성환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지난달 21일 "서민들은 리터(ℓ)당 2000원 기름값을 감당하지 못해 고통 받는 사이에 대기업인 경유사는 최대 호황을 누리고 있었던 것"이라며 "정유사들이 기금으로 내든지 아니면 마진을 줄이라고 요청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당에서도 비슷한 의견을 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같은 달 23일 "정부는 세수 부족 우려에도 유류세 인하 폭을 최대한 늘렸다"며 "정유사들도 고유가 상황에서 혼자만 배 불리려 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횡재세 논의 활발하지만…조세 형평성·이중과세 문제 따져봐야
영국의 경우 석유와 가스업체에 25%의 초과이윤세를 부과하고, 이를 통해 150억 파운드(약 24조원)의 재원을 마련해 가계를 지원하기로 했다. 스페인은 지난해 9월부터 올해 3월까지 발전소로부터 초과이윤세를 받기도 했다.
미국은 이윤율이 10%를 넘어서는 석유기업에 추가로 21%의 연방세를 물리는 법안을 추진 중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최근 연설에서 "엑손모빌(석유회사)은 지난해 하느님보다 더 많은 돈을 벌었다"고 발언했다.
정유업계와 일부 전문가들은 외국의 사례로만 횡재세 도입 여부를 판단하기에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또한 국내 업계 특성상 저유가 국면에서는 적자가 커질 수 있기 때문에 조세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정부는 지난 2020년 코로나19 여파로 정유업계의 대규모 적자가 예상되자 석유수입·판매부과금 징수를 유예한 바 있다. 아울러 한국석유공사의 여유 비축시설 임대, 전략비축유 추가 구매 등 지원책을 마련하기도 했다.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는 "이번에 이익이 많이 나면 과거에 입은 손실을 만회하고, 이월결손금 공제 이후 남은 차익에 대해서는 법인세를 내게 된다"며 "이미 법인세를 내고 있는데 부가가치세 형식으로 더 걷는다는 것은 이론상 가능해도 현실적으로는 이중과세 문제에 부딪힐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간 자유로운 시장 경제 기반 조성을 목표로 '친 기업 정책'이 이어졌기 때문에 정책 연속성 측면에서 '횡재세' 도입은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앞서 윤석열 정부는 출범 직후 법인세 최고세율(25%)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22%로 내린 바 있다. 이는 이명박 정부에 이어 14년 만에 단행되는 법인세 감면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에너지 가격과 금리가 높아질 수 밖에 없는 환경이기 때문에 기업 비용 부담을 상쇄할 수 있는 지원이 필요하다"며 "대표적으로 세금 부담을 줄여줄 수 있는 정책이 있어야 하고, 규제 완화 방안도 논의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russa@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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