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이 끌고 감사원이 밀고..文 정부 겨냥 전방위 사정 질주
서해 사건 넘어 文 정부 전반 겨냥할 수도
5년 전과 판박이 사정.. 정치적 중립 우려
검찰, 감사원 등 가세해 전방위 사정 나서
윤석열 정부가 '사정(司正)' 작업에 부쩍 속도를 내고 있다. 대상은 문재인 정부 권력기관이다. 총대를 멘 국가정보원은 6일 박지원·서훈 전 원장을 고발하면서 전면에 나섰다.
5년 전 국정원은 적폐청산의 최우선 표적으로 꼽혔다. 새 정부 출범 초기 정보기관이 정치적 논란의 중심에 선 것은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감사원도 서슬 퍼런 칼날을 휘두르며 가세하고 있다.
2020년 9월 해수부 공무원 이대준씨를 '월북'으로 몰아간 해경과 국방부가 지난달 16일 입장을 번복한 것이 빌미가 됐다. 정부 소식통은 7일 "두 기관이 입장을 뒤집은 시점과 맞물려 국정원 태스크 포스(TF)를 꾸려 내부 진상조사를 해왔다"라고 전했다.
그 결과 국정원은 전직 원장 두 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이와 관련 대통령실 관계자는 '혐의가 사실일 경우'를 전제로 “공무원 피격 사건에서 자진 월북이라는 프레임을 국가가 씌우려 했다면, 그리고 귀순 어민이 대한민국 국민임에도 불구하고 만약 북한의 입장을 먼저 고려해 대한민국으로 넘어온 분의 인권이 침해받았다면 중대한 범죄”라며 “검찰 수사를 예의주시하겠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이외에 국정원 TF의 추가 활동 계획이 있는지, 북한과 연관된 다른 사건을 조사하고 있는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다만 정부 안팎에선 "두 전직 국정원장 고발로 이번 국면이 마무리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적지 않다.
지난달 국정원이 1급 부서장 27명 전원을 대기발령 조치한 것이 대표적이다. 국정원은 동시에 고강도 내부 감찰을 준비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2018년 이후 남북·북미 정상회담이 연달아 성사되는 과정 전반에 대한 조사가 이뤄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 전체를 쥐고 흔들 수도 있는 셈이다. 이와 관련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수석부대표는 "문(재인) 정권이 국정원 적폐청산을 내세워 40여 명을 사법처리했다"면서 "당시 적폐청산 과정에 사법적으로 문제가 있었다고 알고 있다"며 국정원을 압박했다.
돌이켜보면 2017년 문재인 정부가 시작될 때도 '피바람'이 불었다. 당시 국정원은 1호 국정과제인 적폐청산의 핵심 대상이었다. 이에 참여정부 청와대에서 문 전 대통령과 호흡을 맞춘 신현수 변호사가 기조실장으로 부임해 사정 작업을 진두지휘했다.
이와 함께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와 개혁위 산하 적폐청산TF를 만들었다. 팀장에는 역시 참여정부 청와대 파견 근무 경험이 있는 조남관 검사(전 대검 차장검사)를 임명했다. 윤석열 대통령 측근으로 꼽히는 조상준 전 서울고검 차장검사가 지난달 국정원 기조실장에 기용된 것과 겹치는 대목이다. 5년 전 국정원 적폐청산TF의 수사 의뢰를 받아 검찰 수사를 이끈 것이 윤석열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었다는 점도 공교롭다.
정치적 중립이 생명인 정보기관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사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것을 놓고 우려가 적지 않다. 특히 국정원이 전직 원장을 동시다발로 겨냥해 검찰에 고발하는 건 전례가 없다. 전직 외교안보 당국 관계자는 "정권 교체에 따른 국정원 간부 물갈이는 늘 있었지만, 내부적으로 전방위 고발까지 하는 것을 보고는 놀랐다"며 "실무진 입장에선 앞으로 어떤 일도 하기 부담스러워질 것이란 걱정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정원뿐만 아니다. 고발 사건을 처리할 검찰은 물론, 해경과 국방부를 상대로 고강도 감사를 벌이는 감사원도 마찬가지다. 감사 시작에 맞춰 2년 전 이대준씨의 월북 판단을 내렸던 해경 수사책임 간부 4명이 일괄 대기발령됐다.
특히 감사원은 유병호 사무총장 주도로 강도 높은 내부 감찰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공공기관 경영 평가와 관련 당시 실무진의 판단이 적절치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이 또한 권력기관의 과거 정부 흔적을 지우려는 시도로 해석되는 부분이다. 다만 감사원은 "'사정 감사'에 나선 것은 아니다"라며 정치적 중립 논란에 선을 그었다.
정준기 기자 j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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