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왕설래] 고구려 목제 쟁기

박완규 2022. 7. 7.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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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최초의 농부들은 끝이 뾰족한 나무 막대로 땅을 갈았다.

중국 신화에 소의 머리를 한 반인반수로 등장하는 신농씨가 쟁기를 만들어 인간에게 농사를 가르쳤다는 것이다.

영국 자연지리학자 앤드루 가우디는 "약 5000년 전에 쟁기가 발명돼 메소포타미아, 아시리아, 이집트 등지에서 사용됐다"('휴먼 임팩트')고 했다.

초창기에는 사람이 쟁기를 끌었지만 곧 소나 말 등 가축의 힘을 이용하는 방법이 정착해 인류의 식량 생산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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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최초의 농부들은 끝이 뾰족한 나무 막대로 땅을 갈았다. 땅 표면을 긁는 정도였지만 이런 도구가 괭이, 삽 등으로 발전했다. 유학 경전인 ‘주역’에는 “신농씨가 나무를 깎아 쟁기를 만들고 나무를 휘어 쟁기 자루를 만들어서 쟁기와 호미의 이로움으로 천하를 가르쳤다”는 구절이 있다. 중국 신화에 소의 머리를 한 반인반수로 등장하는 신농씨가 쟁기를 만들어 인간에게 농사를 가르쳤다는 것이다. 영국 자연지리학자 앤드루 가우디는 “약 5000년 전에 쟁기가 발명돼 메소포타미아, 아시리아, 이집트 등지에서 사용됐다”(‘휴먼 임팩트’)고 했다.

쟁기는 빈 땅을 농경지로 바꾸거나, 오랫동안 농사를 반복해 단단해진 땅을 갈아엎어서 비옥하게 만드는 데 쓰였다. 초창기에는 사람이 쟁기를 끌었지만 곧 소나 말 등 가축의 힘을 이용하는 방법이 정착해 인류의 식량 생산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인류가 발명한 가장 중요한 농기구다.

한성백제 유적인 몽촌토성 내 집수지(集水池)에서 삼국시대 목제(木製) 쟁기가 국내 최초로 출토됐다. 술·날·손잡이로 이뤄진 일반적인 쟁기 구조에 비녀와 분살이 더해진 형태로, 우리나라 고유의 구조다. 자연과학적 연대 분석 결과, 집수지가 5∼6세기 고구려에 의해 축조·사용된 것임을 고려하면 고구려 쟁기로 추정된다. 고구려 장수왕의 공격으로 한성이 무너진 뒤 이 일대에 거주하던 고구려인이 쓰던 것으로 보인다. 고대 농경사회를 유추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우리나라는 쟁기의 역할이 주변국들보다 컸다. 농사환경에 맞춰 수많은 종류의 쟁기를 개발했고 쟁기를 부리는 기술도 뛰어났다. 일제강점기에 일본 농학자 다카하시 노보루가 “조선의 농업문화는 쟁기문화이며, 이것이 없으면 한국의 농업은 없다”고 단언했을 정도다. 우리 선조들은 하루갈이·이틀갈이처럼 일정 시간 내 쟁기로 갈 수 있는 것을 기준으로 농토의 넓이를 나타내기도 했다. 그만큼 친숙한 농기구였다. 다만 소가 없을 때는 사람이 쟁기를 끌었다. 한 사람은 앞에서 쟁기에 연결한 밧줄을 어깨에 걸어 온몸으로 잡아당기고 다른 사람은 뒤에서 방향을 조절했다. 농기구가 발전하더라도 농사는 힘든 일이었다.

박완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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