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엽의고전나들이] 예언보다 무서운 것

2022. 7. 7.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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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어떤 마을에 참언이 떠돌았다.

어느 도승이 말하기를, 마을 돌부처의 눈에서 피가 나면 온 마을이 침몰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마을 사람들이 돌부처 눈에 짐승의 피를 발랐고, 노인이 그것을 확인했다.

석상에서 피눈물이 날 리도 없거니와 설령 그렇더라도 마을의 멸망과 무슨 연관이 될 것 같지는 않은데, 이런 이야기가 널리 퍼진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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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어떤 마을에 참언이 떠돌았다. 어느 도승이 말하기를, 마을 돌부처의 눈에서 피가 나면 온 마을이 침몰한다는 것이다. 한 노인은 걱정이 되어 매일 돌부처 앞에 가서 피눈물이 나는지 살폈다. 그런데 마을 사람들이 돌부처 눈에 짐승의 피를 발랐고, 노인이 그것을 확인했다. 노인은 마을 사람들에게 대피하라고 일렀지만 사람들은 말을 듣지 않았고, 노인은 가족들을 이끌고 마을을 떠났다. 그 후 온 마을이 물에 잠기고 사람들이 몰살하였다.

‘돌부처 눈 붉어지면 침몰하는 마을’로 알려진 이야기인데, 요즘 시각에서는 선뜻 받아들이기 어렵다. 지금도 부처나 예수를 조각한 석상에 땀이나 눈물이 난다는 소문이 돌기도 하지만 방송국에서 찾아가 조사해 보니 평이한 자연현상이더라는 식의 후일담이 전해지곤 한다. 석상에서 피눈물이 날 리도 없거니와 설령 그렇더라도 마을의 멸망과 무슨 연관이 될 것 같지는 않은데, 이런 이야기가 널리 퍼진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겠다.

이야기의 시작 부분에서 도승 같은 신통한 인물이 나타나는데 그가 다짜고짜 마을이 멸망할 것이라고 예언하지는 않는다. 일의 발단은 도승이 시주를 원했지만 마을 사람들이 한결같이 외면했다는 데 있다. 주인공인 노인만이 시주를 하였을 뿐이며, 시주한 덕에 얻은 예언이 바로 마을의 멸망에 관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마을의 형편이 넉넉지 않아서 그러했는가 생각해 볼 수 있지만, 이야기에서 힘주어 강조하는 것은 살기 어렵기는커녕 사치가 성행할 정도라는 점이다. 이야기에 따라서는 심지어 마을에 놓은 다리를 청동으로 만들 정도로 호화판이었다고 지적할 정도다.

결국, 예언 때문에 망한 것 같지만 이미 망해 가는 상황을 펼쳐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돈이 넘쳐 사치를 하면서도 쓰고 남는 재물 한 푼을 베풀 줄 모르는 사람들이 사는 집단이라면 오래가기는 어렵다. 더구나 노인이 그 위험을 알리며 피하라고 했지만 사람들은 그 말을 귀담아듣긴커녕 불상에 피를 찍어 발라 시험해 볼 정도로 고약한 심보를 내보였다. 이렇게 보면 미래의 운명을 알기 위해 도승의 입이나 불상의 눈을 살필 필요까지도 없을 것 같다. 모든 조짐은 그렇게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을 것이며, 다 알고는 있지만 또 아무 대책 없이 살아간다. 생각해 보면 문득 두려운 마음이 인다.

이강엽 대구교대 교수·고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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