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선] 러브버그의 원죄

윤지로 2022. 7. 7.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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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3일.

러브버그가 애벌레 시절 낙엽이나 동물 똥을 분해하는 생태계 환경미화원으로서의 공을 인정한다 치더라도 성충이 되면 다를지 모른다.

'죽은 러브버그가 햇빛을 받으면 산(酸) 성분이 강해진다. 변색·부식을 방지하려면 가급적 빨리 세차하는 것이 좋다.' 탈탈 털어 나온 죄목은 그러니까 '사후 재물손괴죄'쯤 되려나? 농작물에도, 반려동물에도 해를 끼친다는 정보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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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3일. 목 타게 기다린 장맛비와 함께 힘겹게 성충이 된 A는 고혹적인 날개를 가진 B와 사랑에 빠졌습니다. 신혼의 단꿈에 빠져들던 그 순간, 온몸에 서늘한 기분이 들어 고개를 돌리니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축축한 무언가가 A의 가슴에 안개처럼 내려앉았습니다. 손써 볼 틈도 없이 굳기 시작하는 다리, 가빠지는 호흡…. A는 넘어가는 숨을 부여잡고 치익 소리를 낸 사내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도대체 나, 왜 죽이는 거요? 이유나 좀 압시다.”

지난 주말 사이 이름도 생소한 ‘러브버그’가 서울 주택가에 떼 지어 나타났다. 집 안까지 수십 마리가 들어온다는 그 지역이 아니었음에도 기자의 집에도 한 쌍의 러브버그가 날아들었다. 애틋한 둘의 사랑을 파리약으로 응징한 이는, 처자식의 호들갑에 등 떠밀린 기자의 남편이었음을 고백한다. 생전 처음 본 벌레에 놀라 즉각 처단하였으나 해충이라기보단 익충에 가깝다는 기사가 영 마음에 걸렸다. ‘그렇게 이로우면 기자 네가 다 가져가라’ ‘자연한테 익충일지 몰라도 나한텐 해충이다’ ‘안 당해 봤으면 입 다물어라’란 댓글을 위안으로 삼자니 그래도 명색이 환경 기자인데 보다 그럴듯한 ‘청부살충’의 명분이 필요했다. 감염병처럼 점점 번지고 있는 건 아닐까? 러브버그가 기승을 부리는 북한산 일대가 아닌데도 모습을 드러냈으니 의심할 만하다.
윤지로 환경팀장
“글쎄요. 그럴 가능성은 별로 없을 것 같아요. 얘네들이 비행능력(거리)이 그렇게 뛰어나지 않거든요. 근처 산에서 왔을 거예요.” (국립생물자원관 관계자)

러브버그가 애벌레 시절 낙엽이나 동물 똥을 분해하는 생태계 환경미화원으로서의 공을 인정한다 치더라도 성충이 되면 다를지 모른다. 미국에선 플로리다나 텍사스 등 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이미 수십 년 전부터 러브버그가 출몰하곤 해 관련 정보가 제법 많았다.

어른이 된 러브버그는 어찌 된 영문인지 새롭게 페인트칠 된 건물이나 자동차, 주차한 지 얼마 안 돼 따뜻한 보닛, 자동차 매연과 아스팔트를 좋아해 고속도로 주변에 있다가 달리는 차의 그릴 속이나 유리창 위에서 생을 마감하는 경우가 많았다. 여기에 뒤따라 나오는 공통적인 설명. ‘죽은 러브버그가 햇빛을 받으면 산(酸) 성분이 강해진다. 변색·부식을 방지하려면 가급적 빨리 세차하는 것이 좋다.’ 탈탈 털어 나온 죄목은 그러니까 ‘사후 재물손괴죄’쯤 되려나? 농작물에도, 반려동물에도 해를 끼친다는 정보는 없었다.

“러브버그가 3∼5일, 길어야 일주일 사는데 이거 보기 싫다고 살충제를 뿌리면 그게 더 사람한테 해롭지 않겠어요?” (이강운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장)

이쯤 되면 인정해야겠다. 러브버그의 원죄는 벌레라는 것. 같은 곤충이라도 나비처럼 예쁘고 꿀벌처럼 귀여우면 곤충 대접을 받지만, 러브버그처럼 낯설고 기분 나쁘게 생긴 곤충은 ‘벌레’일 뿐이다.

A는 넘어가는 숨을 부여잡고 치익 소리를 낸 사내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도대체 나, 왜 죽이는 거요? 이유나 좀 압시다.” 사내가 말했습니다. “넌 너무 징그럽게 생겼거든.”

그뿐이었습니다.

윤지로 환경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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