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여름, 다시 여행을 떠나기 전 [삶과 문화]

2022. 7. 7.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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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어느 카페에서 찍은 인증샷이 가장 멀리 물 건너온 소식이던 시절이었는데, 하나둘 친구들이 먼 나라의 풍경을 전하기 시작했다.

다시 '특가'라고 외치는 단체여행 광고문자가 하나둘 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긴 2년을 보내고 난 우리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지금 당장은 아니라고 눈감으며 예전과 똑같은 욕망을 불태울 준비를 하고 있진 않을까? 어쩌면 인류는 '코로나19'라는 아프지만 배울 게 많은 여행을 함께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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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 마추픽추 ⓒ게티이미지뱅크

제주도 어느 카페에서 찍은 인증샷이 가장 멀리 물 건너온 소식이던 시절이었는데, 하나둘 친구들이 먼 나라의 풍경을 전하기 시작했다. 지난 주말 걸었던 홍대 거리에도 부쩍 외국인 손님들이 늘어 있었다. 라오스 방비엔에서 술집을 하는 주인장도 2년 만에 찾아온 한국인 여행자라며 반가운 사진을 SNS에 올렸다.

지난 2년 문득문득 떠오르며 궁금했던 사람도 많았다. 시가를 물고 멋진 자세를 잡으며 팁을 받던 쿠바 아바나 광장의 할머니는 아직 살아계신지, 한국인 입맛에 맞게 고춧가루를 솔솔 뿌려 주던 튀르키예 이스탄불의 고등어 샌드위치 아저씨는 여전히 성업 중일지 내내 궁금했다. 레바논에서 일어난 대폭발도, 브라질을 덮친 모래폭풍 소식도, 이탈리아 거리를 울리던 응원의 노래도 인터넷으로만 보았다. 직접 가지 못하니 옛날보다 더 자주 국제뉴스 사이트를 들락거렸던 시절이었다.

아차 하면 마추픽추가 불길에 휩싸일 뻔했다는 소식도 그래서 알게 됐다. 경작지를 넓히려고 놓은 불이 산불로 번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하나가 사라질 뻔했다. 세상에서 가장 압도적인 유적으로 손꼽히며 그 존재만으로도 마음을 사로잡는 잉카의 계획도시 마추픽추. 잉카인들이 쓰던 케추아어로 '늙은 봉우리'라는 뜻인데, 산꼭대기의 도시가 산 아래에서는 잘 보이지 않아 일명 '공중 도시'라고도 불린다.

잉카인들이 왜 마추픽추를 만들었고 어떻게 버려졌는지 확실히 밝혀지진 않았지만, 커다란 돌을 철제 도구도 없이 모래로 연마해서 다듬고 면도날 하나 들어가지 않도록 이어 붙이는 잉카의 석조 건축 기술만큼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 할 만하다. 그러니 거대한 돌계단을 따라 140여 개의 건축물과 계단식 농경지가 이어지는 마추픽추를 둘러보고 나면 "이런 기술을 선보인 사람들이 어쩌다 사라진 걸까" 의문도 생긴다.

잉카제국이 참으로 어이없게 허물어진 결정적인 이유는 스페인 침략자 168명의 군대가 옮겨 온 천연두 때문이었다. 마추픽추 건설을 명했다는 잉카 최고의 군주 '빠차꾸띠(Pachakutiq)'는 케추아어로 '세상을 뒤엎는 자'라는 뜻이다. 16세기 잉카사람들에게는 면역력이 없던 천연두가 잉카제국을 뒤엎고, 지난 2년간의 인류에게는 코로나가 '빠차꾸띠' 뜻처럼 세상을 뒤엎은 건 아닌가 싶다.

우리의 시간과 공간을 뒤흔들던 코로나'19'의 숫자가 아득하게 느껴지는 2022년 여름. 다시 '특가'라고 외치는 단체여행 광고문자가 하나둘 오기 시작했다. 치솟는 유가 때문에 예전만큼 싸진 않지만, 조금씩 항로가 늘어나기 무섭게 빈자리가 속속 채워지고 있다. 유럽의 공항과 열차는 일손이 모자라서 연착과 취소가 쏟아진다는 소식도 들린다.

다시 꿈틀거리는 여행의 기운이, 반가우면서도 불안하다. 코로나가 한창일 땐 지구가 마지막으로 보내는 경고라고 생각하던 이들이 많았다. 사람이 멈추니 회복되는 자연을 보면서 친환경적 삶으로의 전환을 전망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 긴 2년을 보내고 난 우리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지금 당장은 아니라고 눈감으며 예전과 똑같은 욕망을 불태울 준비를 하고 있진 않을까? 어쩌면 인류는 '코로나19'라는 아프지만 배울 게 많은 여행을 함께 다녀왔다. 긴 여행 끝에 달라진 게 없다면 그저 버린 2년 세월. 잉카인들은 미처 갖지 못한, 미래에도 생존해갈 삶의 면역력 하나는 배워 왔어야 할 텐데 말이다.

전혜진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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