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똥' 누면 월수입 150만원, '이식용 대변' 알약 250만원..누가 감히 똥값이라 부르는가[전문가의 세계 - 김응빈의 미생물 '수다']

김응빈 교수 2022. 7. 7.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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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미생물이 사람을 만든다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미국 비영리기관 오픈바이옴, 대장에 ‘좋은 똥’ 이식 위한 연구 진행
헌혈보다 까다로운 ‘헌분’…‘변’ 기부자는 회당 50달러 수고비 받아
‘헌분’ 통해 만든 치료제, 난치성 시디프 감염증 환자에 80~90% 효과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의 2012년 8월12일자 표지(사진)는 이채롭다 못해 낯설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천재 예술가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가 그린 소묘 ‘인체 비례도(Vitruvian Man)’를 패러디해서 주인공 남성을 각종 미생물의 집합체로 표현했다.

1843년 영국 런던에서 창간한 이 잡지는 이름 그대로 경제나 이와 관련된 정치 이슈를 주로 다루는데, 어떤 연유에서 10년 전 그 책뚜껑은 미생물로 장식했을까?

그 무렵 우리 몸에 사는 미생물을 총칭하는 ‘휴먼 마이크로바이옴(Human Microbiome)’, 그 가운데에서도 특히 장내 미생물이 인체 건강에 미치는 영향력이 과학적으로 제대로 밝혀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마이크로바이옴’, 경향신문 2022년 1월21일자 14면 참조). 이를 방증하듯 그해가 다 가기 전에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똥은행’이 문을 열면서 장내 미생물 연구가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다.

‘똥은행’ 설립 이유

‘시디프(C. diff)’는 클로스트리디오이데스 디피실리(Clostridioides difficile)라는 세균의 공식 이름, 곧 학명을 줄여서 부르는 말이다. 자연환경과 인간을 비롯한 동물 분변에서 흔히 발견되는 시디프는 세포를 파괴하고 염증을 일으키는 독소를 생산한다. 발병하면 복통 및 메스꺼움과 함께 작은 설사를 유발한다. 더 악화하면 대장 염증과 설사가 극심해지면서 경련과 발열 등이 나타난다. 인구의 10% 정도가 시디프를 장 속에 지니고 있다고 추정하는데, 다행히 건강한 사람에게는 시디프가 별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건강한 장내 미생물 생태계에서 시디프는 그저 그런 구성원이다. 하지만 생태계가 교란되면 이 세균의 태도가 돌변한다. 예를 들어 경구용 항생제를 장기간 먹으면 표적 병원균뿐 아니라 정상 구성원도 피해를 보게 되는데, 세균에 따라 그 정도가 다르다. 얄궂게도 시디프는 다른 구성원들에 비해 항생제 내성이 강하다. 따라서 장내 미생물 생태계가 항생제에 노출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시디프는 세를 더욱 불려 나간다. 경쟁자가 줄어들면서 수적 우위를 점하게 되면 시디프가 생산하는 독소의 양도 그만큼 많아지므로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비유컨대 시디프는 평소에는 다른 여러 유익균의 눈치를 보는 기회주의자처럼 행동하다가 어느 순간 그 수가 많아지면 조직폭력배 행세를 한다. 이런 지경에 이르면 항생제는 치료는커녕 오히려 상황을 더 악화시킨다. 그나마 남아 있는 유익균들만 치명타를 입게 되고, 그럴수록 시디프의 위세는 커지기 때문이다. 사태 해결을 위해서는 정상 음식물 섭취가 어려운 환자에게 영양주사를 놓는 것처럼, 좋은 미생물을 대장에 직접 넣어주어야 한다. 그런데 아쉽게도 현재 기술로 배양할 수 있는 미생물은 자연계에 존재하는 것의 1% 남짓이고, 배양한다고 하더라도 좋은 미생물을 선별해낼 수 없다. 그래서 생각해낸 기발한 대안이 ‘분변 미생물군 이식(Fecal Microbiota Transplantation·FMT)’, 쉽게 말해서 ‘똥 이식’이다. 그러려면 치료용 ‘좋은 똥’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세워진 게 바로 ‘똥은행’이다.

오픈바이옴

2012년 미국 보스턴에 설립된 ‘오픈바이옴(OpenBiome)’은 시디프 감염으로 인한 만성 염증성 장질환 환자를 도우려는 친지의 열망에 과학적 호기심이 합쳐져 세워진 비영리기관이다. 오픈바이옴의 핵심 자산인 인분은 오로지 기부에 의존한다. 기부 자격이 아주 깐깐해서 헌혈보다 ‘헌분(獻糞)’이 훨씬 어렵다. 일단 18세 이상 49세 이하의 건강한 사람만이 지원할 수 있고, 이후 오픈바이옴에서 시행하는 별도 검사를 통과해야 비로소 헌분을 할 수 있다. 헌분자는 회당 50달러의 수고비를 받는다. 따지고 보면 말이 수고지 그냥 남의 화장실에서 큰일을 보면 되는 건데, 매일 하면 한 달 수입이 150만원을 훌쩍 넘어간다. 세상에서 이만큼 보람되고 수지맞는 부업이 또 있을까 싶다.

헌분은 시작에 불과하다. 모인 똥은 각종 검사를 거치며 까다로운 선별 기준을 충족해야만 살아남는다. 2019년까지 오픈바이옴이 처리한 인분 누적량만 해도 4t이 넘는데, 이 가운데 불과 3% 정도만이 검사를 통과해 치료제로 거듭났다. 이처럼 이식용 대변을 마련하는 데에는 큰 노력과 비용이 들어간다. 이에 필요한 자금은 제품 판매금으로 충당한다. 현재 오픈바이옴에서는 크게 두 부류, 내시경을 통한 직접 이식용과 경구용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2022년 7월 기준으로 직접 이식용 1회분과 30알들이 경구용 한 병 가격이 각각 1695달러(약 200만원)와 2050달러(약 250만원)씩이나 한다. 좋은 미생물이 ‘똥값’의 의미를 바꾸어놓은 셈이다.

현재 오픈바이옴은 미국 내 1300여개 의료기관과 협력하고 있고, 그동안 공급한 FMT 시술용 치료제 수만 해도 6만개가 넘는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이를 이용한 환자 열에 여덟아홉은 난치성 시디프 감염증에서 벗어났다고 하니 ‘좋은 똥’은 정말로 명약인가 보다.

아직 그 작용원리를 정확히는 잘 모르지만, FMT가 장내 미생물 생태계를 복원하여 자연스럽게 시디프를 수그러지게 하는 건 분명해 보인다.

차세대 미생물 치료제

이제 장내 미생물을 비롯한 휴먼 마이크로바이옴의 정체는 상당히 파악했고, 이를 바탕으로 그들의 정확한 기능을 규명하는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아커만시아 뮤시니필라(Akkermansia muciniphila)’라는 세균이 차세대 미생물 치료제 후보로 급부상하고 있다. 이름대로 이 세균은 뮤신(mucin)을 아주 좋아해서(phila), 장 점막에 보금자리를 틀고 있다.

입에서 항문까지 이어지는 소화관 내벽은 부드럽고 끈끈한 조직, ‘점막’으로 덮여 있다. 점막 세포는 끈끈한 액체(점액)를 분비하는데, 그 주요 활성 성분이 뮤신이다. 점막은 조직 표면이 마르지 않게 할 뿐만 아니라, 미생물을 가두어 감염을 예방하고 다양한 항균제를 분비한다. 한마디로 복합 방어기지다. 그리고 바로 뮤신이 점막 기능의 핵심이다.

점막 미생물 무리의 다수를 차지하는 ‘뮤시니필라’는 여느 미생물보다 뮤신 분해 능력이 뛰어나다. 다시 말해 뮤신을 먹고 여러 가지 ‘짧은사슬지방산’(2~6개의 탄소 원자로 이루어진 지방산)을 내놓는데, 이게 장 건강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선 장내 pH를 적절하게 유지해서 유익균은 번성하게 하고 병원균 성장은 억제할 뿐만 아니라, 창자 내면을 덮고 있는 ‘장관상피’의 치유와 재생, 그리고 점액 생성을 촉진한다.

2004년 건강한 사람의 분변에서 처음 분리된 뮤시니필라는 장 건강은 물론이고, 비만에서 제2형 당뇨병과 아토피에 이르기까지 여러 대사성 및 면역성 질환 개선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건강한 사람과 해당 질환자의 장내 미생물 분석 결과 뮤시니필라 풍부도와 병세는 반비례하는 것으로 드러났고, 동물 실험은 치료 효과를 일관되게 입증하고 있다. 아울러 실험 쥐를 대상으로 한 뮤시니필라 투여 실험 과정에서 온전한 생균보다 저온살균 처리한 사균이 더 효과적이라는 흥미로운 사실이 발견되었다.

미생물학의 토대를 놓은 프랑스 미생물학자 루이 파스퇴르(Louis Pasteur·1822~1895)가 개발해 ‘파스퇴르법(pasteurization)’이라고도 부르는 저온살균법은 시료를 섭씨 65도 정도까지 가열해서 30분 정도 유지하는 것이다. 이 정도 열처리는 식품의 풍미와 영양소는 거의 파괴하지 않지만, 상당수 미생물에게는 치명적이다. 파스퇴르가 이를 개발하게 된 동기는 프랑스의 특산품인 포도주 보관이었다.

아무튼, 저온살균이 뮤시니필라의 치료 효과를 증진한다는 사실은 세균 자체보다 세균에서 유래하는 특정 물질이 더 중요함을 암시한다. 이 발견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뮤시니필라 세균을 둘러싸고 있는 바깥쪽 막에서 유력한 후보 물질이 확인되었다. 이 막단백질은 열에 안정해서 저온살균 처리에 영향을 받지 않으면서 장관상피 세포에 존재하는 수용체 단백질과 소통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올 초에는 국내 연구진이 한국인에게서 분리한 뮤시니필라의 유전체 분석을 통해 한국인의 장에는 서양인과는 다른 아커만시아 뮤시니필라가 살고 있음을 밝혀냈다. 특히 이 세균은 뮤신 분해 효소의 활성을 조절하는 유전자를 추가로 가지고 있어서, 더욱 효과적으로 뮤신 발효를 수행한다. 연구진은 인종이나 민족에 따라 지닌 뮤시니필라가 다르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이번 연구 결과가 맞춤형 차세대 미생물 치료제 개발에 활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글머리에서 소개한 ‘이코노미스트’ 표지 그림에는 “미생물이 사람을 만든다(Microbes maketh man)”라는 문구가 붙어 있다. 이 말을 듣고 영화 <킹스맨(The King’s Man)> 속 명대사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Manners maketh man)”를 떠올리는 이가 많을 듯하다. 이 격언의 원조는 중세시대 영국 이튼 스쿨(Eton school) 교장을 지낸 윌리엄 호먼(William Horman·1440~1535)으로 알려져 있다.

매너는 예절을 지키는 ‘방식’을 말한다. 종종 대중매체에 등장하는 ‘매너 손’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인사가 예절이라면 매너는 상황에 맞는 인사법이다. 같은 예절이라도 갖추는 방법이 때에 따라 달라진다는 얘기다. 생물학적 인간은 미생물이 완성한다. 그런데 그 방식 역시 사람에 따라 다르다.

▶김응빈 교수



1998년부터 연세대학교에서 미생물을 연구하며 학생을 가르치고 있다. 연세대 입학처장과 생명시스템대학장 등을 역임했고, 지은 책으로 <술, 질병, 전쟁: 미생물이 만든 역사> <온통 미생물 세상입니다> <생명과학, 바이오테크로 날개 달다> <미생물에게 어울려 사는 법을 배운다> <나는 미생물과 산다> <미생물이 플라톤을 만났을 때>(공저) 등이 있다. 또한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 파트너 채널 ‘김응빈의 생물 수다’를 연재 중이다. ‘수다’는 말이 많음과 수가 많음, 비잔틴 백과사전(Suda) 세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네이버 채널 링크: https://contents.premium.naver.com/biotalkkim/knowledge

김응빈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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