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입맛 따라 뒤집히는 '나라살림 지표'
"글로벌 스탠더드" 1년여 만에..기재부 "엄격 관리" 바꿔
장기 재정운용 차질 우려 속 "정부 정책 신뢰도 흠집" 지적
정부가 재정수지를 나타내는 기준지표를 ‘통합재정수지’에서 ‘관리재정수지’로 변경하기로 했다. 나라살림을 보여주는 대표 지표가 불과 1년여 만에 다시 바뀐 것이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3월 ‘글로벌 스탠더드’라며 재정관리 지표를 통합재정수지로 정한 바 있다. 정부가 필요에 따라 재정관리 기준마저 수시로 바꾼다는 지적이 나온다.
7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관리재정수지를 재정관리 지표로 정한 것이다.
관리재정수지는 통합재정수지(총수입에서 총지출을 뺀 값)에서 국민연금과 고용보험 등 4대 사회보장성 기금 수지를 뺀 수치다. 사회보장성 기금 수지는 매년 대규모 흑자를 기록해왔다. 사회보장성 기금에 돈을 내는 사람은 많지만, 돈을 찾아가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적어서다.
이 때문에 기재부는 전체 재정 현황을 파악하는 데 왜곡이 생길 수 있다며 국내에서만 통용되는 관리재정수지를 만들어 써왔다. 지난해 통합재정수지 적자는 30조5000억원,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90조6000억원으로 60조원 이상 차이가 났다. 최상대 기재부 2차관은 재정준칙 법제화 방침을 밝히면서 “통합재정수지보다 엄격한 관리재정수지를 기준으로 준칙을 설정할 것”이라고 했다.
문제는 정권이 바뀌자 재정수지 기준에 대한 정부 판단이 뒤바뀌었다는 점이다. 지난해 기재부는 ‘국제 기준’에 맞춰 재정수지를 더 엄격하게 관리해야 한다는 이유로 재정수지 기준을 통합재정수지로 변경한 바 있다. 국제 비교 때는 통합재정수지가 쓰인다.
지난해 3월 안도걸 기재부 예산실장은 추가경정예산(추경) 브리핑에서 “과거에는 국민연금 등이 계속 흑자를 내서 관리할 필요가 없었지만, 지금은 고용보험 같은 경우 보험료보다 급여가 더 급속히 늘고 있어 정부가 가장 먼저 관리해야 할 기금으로 변경됐다”며 “이에 따라 재정수지 기준을 (통합재정수지로) 변경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게 통합재정수지”라며 “(재정수지) 기준을 바꿀 때가 됐다”고 강조했다.
당시 기재부가 재정수지 기준을 변경하려 하자 일각에서는 정부가 추경을 하기 위해 꼼수를 쓰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통합재정수지는 관리재정수지보다 40조~60조원가량 수입이 더 많아 관리재정수지에서 통합재정수지로 기준을 바꾸면 재정수지 적자 규모가 그만큼 줄어든다.
1년여 만에 나라살림 대표 지표를 바꾼 이유에 대해 최 차관은 “그 당시에는 통합재정수지가 국제 기준에 맞는 지표라는 차원에서 통합재정수지 기준을 메인 지표로 설정했다”며 “지금은 재정건전성이 많이 악화된 상태에서 재정건전성을 좀 더 엄격하게 관리해야 되는 차원에서는 관리재정수지를 기준으로 해서 준칙을 설정해 운용하는 것이 맞다”고 설명했다.
이를 두고 재정적자 상황을 정권 입맛대로 늘리거나 축소하기 위해 기준이 되는 지표를 바꾼다는 지적이 나온다. 재정운용 기조는 경제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기준까지 손대면 장기 재정운용 계획을 세우는 데 차질을 빚을 수 있다.
우석진 명지대 교수(경제학)는 “(재정을 엄격하게 관리하려 한다면) 관리재정수지가 방향성에서 맞지만 손바닥 뒤집듯 입장을 바꾼 것에 대해서는 정부가 해명할 필요가 있다”며 “결과적으로 정부의 정책 신뢰도에 흠집이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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