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초·중·고 예산 떼어내 대학에 3조원 쓴다
정부가 유치원과 초·중·고교 예산 일부를 떼어내 대학에 투자하기로 했다. 유·초·중등 예산인 지방교육재정교부금에서 3조원 이상을 빼 대학 지원에 쓰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위해선 법을 바꿔야 하고 유·초·중등 교육계는 거세게 반발하고 있어 난관이 예상된다.
정부는 7일 ‘2022년 국가재정전략회의’를 통해 “학생 수가 줄어드는 교육 환경을 고려해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제도를 개편하겠다”고 밝혔다. 이 교부금은 시·도교육청들이 유·초·중·고 교육에 사용하는 예산으로, 내국세의 20.79%와 교육세 일부로 마련된다. 정부는 교부금에서 교육세 일부(올해 3조6000억원)를 떼어내 ‘고등교육특별회계’를 만들고, 이를 대학에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교육부가 대학에 지원하는 연간 예산(12조2000억원)이 30%가량 늘어나는 셈이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을 손질해야 한다는 지적은 10여 년 전부터 나왔다. 원래 이 교부금은 유·초·중등 예산을 안정적으로 확보하자는 취지에서 법으로 내국세 20.79%를 자동으로 할당하도록 했다. 세수가 늘면 전체 교부금 규모가 늘어나는 구조다. 2000년 14조9000억원이던 교부금은 올해 65조1000억원으로 4배 늘었다. 여기에 올해 초과 세수로 교부금이 더 들어와 최종적으로는 작년보다 21조 늘어난 81조원에 달한다. 그런데 이 기간에 유·초·중·고 학생 수는 811만명에서 539만명으로 34% 줄었다. 교육감들은 갑자기 늘어난 교부금을 선심성 복지 정책에 많이 쓰고 있다. 예컨대, 재작년과 작년 11개 교육청은 학부모에게 재난지원금을 4700억원 지급했다. 중·고교 입학 준비금을 1인당 30만원씩(서울) 주고, 교복비나 스마트 기기를 지급한 교육청도 여럿이다.
반면 대학은 14년째 등록금이 동결되면서 불만이 쌓였다. 반도체 등 첨단기술을 연구하고 가르치려면 장비가 중요한데, 수십 년 된 장비를 쓰는 대학이 수두룩하다. 수도권 한 대학총장은 “실력 있는 교수를 모셔오려고 해도 연봉을 많이 못 주니 모두 기업으로 간다”면서 “이대로 가면 대학은 연구와 교육 둘 다 제대로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국제적으로 봐도 우리나라 학생 1인당 초·중등 공교육비는 OECD 평균의 132%에 달하는 반면, 대학생 1인당 공교육비는 66%에 그쳐 불균형이 심각한 상황이다. 김병규 교육부 교육복지정책국장은 “교부금 축소 주장은 십수 년 전부터 있었지만 (받아들이지 않았었는데), 이젠 고등교육 재정이 너무 열악해 기반이 무너지고 있기 때문에 (교부금 축소를) 손가락을 자르는 심정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만 내국세에 연동하는 교부금 제도 자체는 당장 건드리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갑자기 너무 급격히 바꾸면 교육계가 크게 반발할 수 있다”면서 “내국세 연동 문제는 공감하고 있으며, 앞으로 검토·협의해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대학 재정에 숨통을 틔워주기 위해 일반 국고도 추가로 투입해 2027년까지 현재 국내총생산(GDP) 대비 0.6%인 고등교육 재정을 OECD 평균인 1.1%까지 끌어올린다는 목표다.
고등교육특별회계 예산을 어떤 방식으로 배분할지, 어디에 사용하게 할지 등 구체적 내용은 법이 통과되고 예산 규모가 확정되면 내년 상반기 발표할 예정이다. 송기창 숙명여대 교육학부 교수는 “기존처럼 목적을 한정시켜 놓고 대학들이 해당 사업에만 쓰도록 하면 안 되고, 운영비로 두루 쓸 수 있게 해야 고사 직전 대학들의 숨통이 트일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법을 개정하려면 국회 야당 협조가 필수적인데, 쉽지 않다는 전망이 나온다. 최근 민주당 의원 8명은 시도교육감들과 함께 교부금 축소에 반대하는 토론회를 열기로 했다.
이날 한국교총은 입장문에서 “초·중·고 건물 40%가 30년 이상 됐고, 학생이 28명 이상인 과밀 학급이 4만개가 넘는데, 남는 재정은 이런 열악한 교육 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데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초·중등 교육을 관장하는 시도교육감들도 이날 성명을 내고 “올해 경기침체로 내년 예산이 줄어들 게 뻔한데 (유·초·중등 교육) 재정을 줄이면 안 된다”고 반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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