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테크 기업의 해고 칼바람, 일반 기업들의 IT 인력난엔 '숨통'

성유진 기자 2022. 7. 7.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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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BIZ] 채용 시장 소용돌이

미국의 대형 식료품 소매업체 크로거는 최근 IT 인력을 채용하면서 1년 전보다 더 많은 지원서를 받았다. 이 회사는 그동안 디지털 전환에 필요한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해왔지만, 빅테크 기업과의 채용 경쟁에서 밀리며 어려움을 겪어 왔다. 하지만 올 들어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메타(페이스북) 같은 테크 기업들이 채용 규모를 축소하면서 인력난에 숨통이 트이기 시작한 것이다. 크로거의 최고정보책임자인 야엘 코셋은 월스트리트저널에 “아직도 인재는 부족하지만 채용에서 분명 좋은 진전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 침체 우려와 업황 부진으로 테크 기업들이 잇달아 채용을 축소하고 나선 가운데, 그동안 IT 인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어온 업체들은 이번 감원 바람을 ‘인재를 영입할 수 있는 기회’라며 내심 반기고 있다. 테크 기업에서 일자리를 찾지 못한 구직자들이 일반 기업으로 옮겨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IT 인력을 찾는 수요는 여전히 견고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미 경제 매체 CNBC는 “일부 기업들의 감원 바람에도 불구하고 IT 인력 채용이 둔화됐다는 신호는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며 “IT 분야 근로자들은 고용 시장에서 여전히 주도권을 쥐고 있다”고 전했다.

일러스트=김영석

◇채용 줄이는 테크 기업들

넷플릭스, 코인베이스, 레드핀,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모두 올해 들어 인력을 감축했거나 신규 채용 연기·축소를 발표한 기업이다. 코로나가 불러온 비대면 바람과 디지털 전환 등으로 승승장구하다 올 들어 업황 자체가 부진에 빠진 곳이 많다.

세계 최대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업체 넷플릭스는 지난 1분기 유료 가입자 수가 11년 만에 감소하자 지난 5월 150명을 정리해고한 데 이어 지난달 300명을 추가로 해고했다. 온라인 부동산 플랫폼 레드핀은 최근 전체 인력의 6%인 470명을 떠나보냈다. 금리 인상 등 여파로 부동산 거래량이 급감한 영향이다. 미국 최대 가상화페 거래소 코인베이스는 지난달 전체 직원의 5분의 1인 1100명을 해고했다. 터키의 퀵커머스 업체이자 전 세계적으로 6000명 넘는 직원을 둔 게티르는 직원수를 14% 줄일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스타트어 정보 플랫폼 크런치베이스에 따르면 올 들어 미국 테크 업계에서만 2만4000명 이상이 해고됐다.

국내에서도 지난해 인건비가 급증한 기업을 중심으로 긴축 경영에 돌입하는 모양새다. 최수연 네이버 대표는 지난 4월 실적 발표 콘퍼런스콜에서 “올해부터는 인건비 등의 비용을 효율화하는 데 집중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네이버는 지난해 회사 설립 이래 최대 규모인 1100여 명을 채용했지만 올해는 예년 수준인 500~700명으로 돌아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모바일게임 ‘킹스레이드’로 유명한 게임회사 베스파는 지난달 말 직원 105명 전원에게 권고사직을 통보했다. 신작 게임 흥행에 실패하며 직원 월급조차 지급할 수 없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작년 3월 게임업계에서 연봉 인상 경쟁이 벌어지자 전 직원 연봉을 1200만원 인상했던 곳이다. 작년 ‘개발자 모시기’ 전쟁에 불을 붙였던 스타트업 업계에서도 인력 감축에 나서는 곳이 늘고 있다.

◇IT 인력은 여전히 ‘귀한 몸’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고 있지만 실력 있는 IT 전문 인력은 여전히 ‘귀한 몸’이다. 산업 대부분 영역에서 디지털 전환이 거스를 수 없는 흐름으로 자리 잡으며 관련 수요가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채용 플랫폼 사람인이 최근 1년간 구직·구인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채용 공고수 대비 지원자 수가 가장 부족한 직무가 IT개발·데이터 분야였다. 특히 올해 4월과 5월에는 공고수 대비 지원자 비율이 40% 밑으로 떨어져 인력난이 더 심해졌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컴퓨팅기술산업협회(CompTIA)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미국의 IT 인력 채용 공고는 220만건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52% 늘었다. 실적이 악화한 테크 기업 일부가 정리해고에 나서거나 채용 규모를 줄였지만 IT 인력을 찾는 회사는 여전히 넘친다는 의미다. 미국 IT 부문 일자리의 실업률은 3월 1.4%, 4월 1.7%, 5월 2.1%로 점차 오르고 있지만 여전히 전체 실업률(3.6%)보다는 낮다.

빅테크 기업의 해고 바람은 일반 기업의 IT 인력난에 숨통을 틔워 주고 있다. 테크 기업이 채용 규모를 줄이면서 의류나 유통업체 같은 일반 기업이 IT 인력을 찾기 좀 더 수월해진 것이다. 미국 의류 브랜드 칼하트의 카트리나 아구스티 최고정보책임자(CIO)는 “3월에만 해도 IT 인력을 찾기가 어려웠지만 5월부터 채용 시장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IT 인력에 대한 수요가 여전히 팬데믹 이전보다 훨씬 높다고 보고 있다.

국내에선 스타트업 업계가 투자금 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대기업이 IT 인력 이동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온다. 지난해만 해도 대기업 임직원까지 거액의 스톡옵션을 약속받고 스타트업으로 이직하는 사례가 많았으나, 최근 기업가치가 떨어지고 기업공개(IPO)가 줄줄이 연기되면서 상황이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한 IT업계 관계자는 “잘나가던 스타트업들도 신규 투자 유치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잭팟을 터트릴 수 있다는 기대감이 줄어든 상황”이라며 “개발자들도 경기침체 상황에 대비해 좀 더 안정적인 기업에 머무르려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내년엔 IT 채용도 침체 가능성

다만 지금과 같은 경기 둔화가 계속되면 IT 인력 몸값도 낮아질 가능성이 있다. 미국 컨설팅 회사 얀코 어소시에이츠는 지난달 발표한 보고서에서 “IT 채용 시장이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지만 그 속도는 느려지고 있다”며 “지난 1년간 적임자를 구하지 못해 채워지지 않은 IT 일자리가 평균 20만개 정도였다면 앞으로 3~6개월 동안은 그 숫자가 10만개로 감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인플레이션 등으로 인한 경기 침체가 가속화되면서 6~12개월 후에는 IT 고용 시장이 어두워질 수 있다고 예측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상황에 대비해 빠르게 일자리를 찾는 게 좋다고 조언한다. 경기가 본격적인 침체기에 들어서기 시작하면 기존 인력이 제자리에 머물 가능성이 커지고, 그만큼 새로운 일자리가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컨설팅 업체 제이골드 어소시에이츠의 잭 골드 대표 애널리스트는 “IT 고용 시장은 여전히 좋은 상태지만 몇 달 안에 상황은 완전히 변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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